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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교부들의 명언: 언제까지 돈의 종노릇을 할 작정입니까?(요한 크리소스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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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7-01 ㅣ No.336

[교부들의 명언] 언제까지 돈의 종노릇을 할 작정입니까?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349-407년)은 우리에게 ‘요한 금구(金口)’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황금의 입’은 6세기부터 그를 가리키는 호칭으로 쓰였는데, 그의 삶을 살펴보면 그의 ‘황금의 입’ 뒤편에 ‘황금의 삶’이 있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참된 말씀은 삶에서 비롯되는 까
닭이다.

349년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난 그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밑에서 양육되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세속 학문을 마친 그는 안티오키아의 주교였던 멜레티우스의 눈에 띄어 독서직을 받고 이듬해부터 수도승의 삶에 뛰어든다. 그러나 엄격한 수행생활로 병을 얻게 되어 안티오키아로 돌아와야 했다. 6년간의 수행생활은 이후 그의 사목적 삶에 굳건한 바탕이 되어주었다.

386년 사제품을 받은 이후 요한은, 멜레티우스의 후계자였던 플라비아누스 주교를 도와 주교의 “눈이자 손, 입”(플라비아누스의 표현)으로 헌신하면서 뛰어난 강론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397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가 되면서 그의 삶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사치를 일삼던 부유층과 황후 에우독시아를 비판하며 가난한 이들을 옹호하다가 황실의 미움을 사게 된 것이다.


맘몬에게 영혼을 내주는 사람들

“… 돈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재물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탓에 가치가 완전히 뒤집어집니다. 누가 행복하다는 말은 그가 돈이 있다는 뜻이요 누구를 동정하는 것은 그가 가진 게 없다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누가 재물을 모으려고 어떻게 했다거나, 다른 누구는 어찌하다 파산에 이르렀다거나 하는 것들뿐입니다. 누가 군인이 되거나 결혼을 하거나 무슨 직업을 가지려 할 때는, 그것이 빠른 시일 안에 부자로 만들어주는 일인지 분명할 때만 움직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모인 우리는 이러한 악을 어떻게 쫓아버릴지 고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여러분을 종으로 삼고 있는 맘몬을 언제까지 재갈을 물리지 않은 채 방치할 작정입니까? 여러분은 언제까지 돈의 종노릇을 할 작정입니까?(Imo potius quosque servi eritis pecuniarum?) 언제가 되어야 여러분은 욕망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자유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까?

만일 사람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자유를 얻으려고 온갖 수를 다 쓰겠지만, 돈의 감옥에 갇혀있으면서도 여러분은 이 무서운 종노릇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조차 하지를 않습니다. 돈이라는 폭군에 잡힌 삶은 사람의 종노릇보다도 더 무서운 것입니다”(「마태오 복음 강해」, PG58,790).

물신에 사로잡힌 당대 사람들에 대한 꾸짖음이다. 1620년이 더 지난 이야기가 놀랍게도 우리의 현실과 정확하게 겹친다. 우리나라가 세계 십몇 위를 다투는 경제대국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맘몬에게 영혼을 내주고 얻은 결과가 아닐까?

신문이나 방송에서 어떤 일의 타당성을 따지면서 그 일로 얻는 경제유발 효과가 몇억 원, 몇조 원이라고 보도하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우리의 주요한(어쩌면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이 돈임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가난이 악이 아니라 가난을 원치 않는 것이 악이라고 말한다(「마태오 복음 강해」, PG58,791).

“…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마르 6,18)라고 했고, 엘리야는 아합 임금에게 ‘내가 이스라엘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임금님과 임금님 조상의 집안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1열왕 18,18)라고 말했습니다. 자유롭게 말하게 하는 것이 가난임을 보십시오.

그러나 부자는 항상 종으로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 반면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벌도 몰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가난이 말할 자유를 빼앗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가난하게 파견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들의 사명은 완전한 자유로 말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는 강합니다. 아무도 그에게 손해나 손상을 입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자는 온갖 어려움을 겪습니다. 종들, 황금, 재산, 일, 끝없는 욕심, 사회적 야심, 끝없는 필요 등 모든 것이 그를 억누르고 사로잡습니다”(「히브리서 강해」, 18, PG 63,137).


참으로 가난한 사람

그가 말하는 가난은 온전히 하느님께 속하려고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의 전제조건이었다. 세상이란 예나 지금이나 본래 그런 모습이라 치자.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교회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요한 크리소스토모를 공격한 무리는 황실과 부유층만이 아니었으며, 권력에 야심이 있던 교회 인사들 또한 거기에 합류했다.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테오필로스는 403년 보스포러스 해협 근처에서 교회회의(이른바 참나무 교회회의)를 열고 자기편 사람들을 모아 요한 크리소스토모를 면직하고 유배형에 처한다.

우여곡절 끝에 첫째 유배에서 돌아왔으나 이듬해 두 번째 유배길에 오른 요한은 결국 이들의 계교에 의해 탈진한 상태로 길 위에서 세상을 떠난다. 호송하는 군인들에게 요한이 도중에 죽게 하면 승진시키겠다는 약속을 해두었던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모든 일을 통해 하느님은 영광 받으소서!”였다. 자신에게 겨누어진 위협에조차 초연할 수 있었던 참으로 가난한 사람, 요한 크리소스토모다운 최후였다.

* 황인수 이냐시오 - 성바오로수도회 수도자. 수원가톨릭대학교와 교황청 라테라노대학교 아우구스티노 교부학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2008년에 사제품을 받았으며, 수도회에서 말씀의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6월호, 황인수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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