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복자 124위 열전55: 신석복, 박대식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4-12 ㅣ No.1470

[복자 124위 열전] (55) 신석복 · 박대식


소금 행상 신석복, 밀양 관아서 혹독한 형 이기고 교수형... 박대식, 조카와 함께 체포돼 끝까지 배교 거부하다 참수



124위 중 1866년 병인박해 대구 순교자로 신석복(마르코, 1828∼1866)과 박대식(빅토리노, 1812∼1868)이 대표적 인물이다. 신석복은 1866년 3월 31일 대구 오리정에서, 박대식은 1868년 10월 12일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했다. 그런데 이 두 순교 복자는 마산교구에서 시복을 추진해 대구대교구의 복자 20위(울산병영 순교자 3위 포함)에 포함되지 않았다.

- 복자 신석복 마르코


아무튼, 경상도 밀양의 명례 출신 순교 복자 신석복은 소금 행상이었다. 누룩도 함께 팔았다고 한다. 소금이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해 자신을 녹이며 사라지듯이(마태 5,13), 누룩은 밀가루에 넣어야 부풀어 오르듯이(마태 13,33) 성체 또한 자신을 쪼개고 희생하며 녹아 사라진다는 점에서 그의 순교는 성체적 삶의 의미를 지닌다.

순교하기 10여 년 전에 입교해 신앙생활을 해온 신석복은 병인박해 때 창원 진해구의 웅천장(4ㆍ9일)에 장사를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오 야고보 등과 함께 대구에서 온 포졸들에게 체포됐다.

대구 포졸들은 이에 앞서 그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명례에 있던 그의 집에 들이닥쳐 재산을 탈취하고, 여러 날 수소문 끝에 그가 돌아오던 김해 가산 길목, 지금의 경남 김해시 한림면 한림로 일대에서 기다리다가 그를 체포해 밀양 관아로 압송했다.

밀양에서 하루를 머무르는 동안 신석복은 포졸들에게 무수한 형벌을 당해야 했고, 끌려가는 중에도 자주 능욕을 당해야 했다. 이 사실을 안 그의 동생들은 이를 막고자 포졸들에게 돈을 주려 했으나 복자는 “포졸들에게 한 푼도 주지 말라”고 당부하곤 했다.

대구에 도착해서도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 유혈이 낭자해지고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당했지만, 그는 결코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대구 관장은 “저를 놓아준다 해도 다시 천주교를 봉행하겠다”는 그의 말에 화가 나 혹독한 형벌을 가한 뒤 교수형을 집행했다. 그의 나이 38세였다.

- 복자 박대식 빅토리노


한편 경상도 김해 예동(경남 김해 진례로 일대) 출신인 순교 복자 박대식의 입교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주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던 인물로 전해진다. 그 역시 1868년 대구와 김해, 두 진영에서 온 포졸들이 함께 그의 집에 들이닥치면서 예비신자였던 조카 박수연과 함께 김해 관아로 압송됐다.

김해 관아의 옥중에서 그는 송 마태오와 박 요셉을 동료로 맞는다. 이후 이들 넷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신앙을 고백했고, 사흘 뒤 다시 대구로 압송된다. 이어 대구에서도 거듭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고 신앙을 증거했다.

대구 감사는 그와 동료들을 배교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들에게 사형을 선교했으며, 이에 따라 그는 조카와 동료 2명과 함께 형장으로 끌려가 참수형을 받았다. 그의 나이 56세였다. 참수를 집행한 뒤 대구 감사는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명목으로 이들의 머리를 높이 매달도록 했다.

두 순교자의 순교 행적은 모두 「병인치명사적」 제3ㆍ18ㆍ23권에 기록돼 있다. 병인치명사적은 1899년과 1921년 두 차례에 걸쳐 병인박해 순교자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시복 재판에서 나온 관련 문서와 증언, 자료를 한데 모아 종합한 총 25권의 자료집으로, 이들 자료가 없었다면 124위 중 병인박해 순교자의 시복도 어려움이 컸을 터다. 순교는 삶의 결정체이기에 순교자의 삶은 순교의 원천이 된다. 그 원천이 담긴 순교 사적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신앙을 되새겨보고, 실천하며, 새로운 삶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백수십 년 전의 순교 사적을 다시 되돌아보고 순례를 떠나는 이유다.

[평화신문, 2015년 4월 12일,
오세택 기자]



1,94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