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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응급피임약은 낙태약: 지금 이 시간 무엇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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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7-07 ㅣ No.955

[커버스토리] 응급피임약은 낙태약 - 지금 이 시간 무엇을 해야 하나?

가장 약한 생명 죽이는 문제에 침묵해서는 안된다


“낙태를 하는 것보다 응급피임약을 먹는 것이 죄를 덜 짓는 게 아닌가요?”

신자들조차 그릇되게 품고 있는 의식이다. 많은 이들이 흔히 낙태라는 ‘더 큰 악’을 피하기 위해 응급피임약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덜 크다’고 생각하는 악을 선택하는 것 또한 죄다. 더 어린 생명을 죽인다고 해서 죄가 덜해지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피임을 목적으로 하거나, 그러한 방법을 강구하는 것도 안 된다고 가르친다. 응급피임약과 관련해서는 의·약학의 발전으로 연구가 시작될 때부터 “이는 낙태의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인간 생명 자체의 출산과 그 존엄성과 관련된 근본적인 가치들을 거스르고, 성의 본래 가치를 상실하게 하며, 무절제한 성문화를 조장하거나 방조할 것”이라고 심각하게 우려를 표명해왔다.

‘낙태’는 어떤 수단으로 이뤄지든 임신에서 출생에 이르는 인간 존재를 죽이는 행위이다. 이에 따라 보편교회는 세계 각국에서 시판되는 응급피임약에 대해 ‘화학적 낙태약’ 혹은 ‘조기 낙태약’이라고 명확히 밝히고, 사용 중단을 촉구한다.

한국교회는 우리사회에 만연한 응급피임약 오·남용을 줄이기 위해 타종교 및 시민단체 등과 연대, 정책 수정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인간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인간 생명과 관련한 문제에 타협해서도 안 된다. 어느 누구의 생명권이라도 모두 행복추구권 위에 있다. 특히 가장 약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초기 인간생명을 수호하는 것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한 과제다.

청주교구 생명위원회가 6월 4~5일 펼친 ‘응급피임약 일반의약품 전환에 대한 반대 결의대회’ 모습. 식약청이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계획을 발표한 후 전국 각 교구 생명사목 관계자들은 교회 안팎에서 뜻을 같이 하는 각계 단체 등과 연대해 릴레이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응급피임약에 대한 보편교회의 가르침

교황청 생명학술원은 지난 2000년 ‘모닝필에 대한 성명서’를 통해 “이 약이 내는 반착상 효과는 화학적 인공유산과 다름없다”며 “따라서 이 약을 요구하거나 제공하는 사람들은 낙태의 경우에서처럼 이미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임신을 손쉽게 중절하려는 것이 분명하다”라고 밝혔다.

또한 “응급피임약 사용은 인간 배아처럼 가장 약하고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존재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교묘한 공격”이라고 비난, “이 약품을 사후피임약 혹은 응급피임약이라고 칭하는 것은 잘못이며, 조기 낙태약 혹은 화학적 낙태약이라고 부르는 것이 올바르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선 1986년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잉글랜드와 웨일즈 주교회의 생명윤리 공동위원회는 ‘강간의 경우 모닝필의 사용’을 제목으로 한 성명서를 발표, “강간으로 인한 임신이나 기형 임신 등은 나름대로 고통스러운 현실을 주지만, 낙태가 적극적인 해결책이거나 최선의 방법은 결코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또한 공동위는 “도덕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낙태와 피임은 전적으로 다르지만, 구체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며 “따라서 낙태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피임을 사회 안에서 대중적으로 실시하면 그만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라고 지적한다. 피임은 간접적인 양상으로도, 만약 피임을 하지 않았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낙태들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응급피임약 보급에 관한 한국교회의 대처

응급피임약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들썩인 것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 199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응급피임약 시판을 승인한 직후, 우리나라 보건복지부는 응급피임 시범사업으로 독일에서 약을 수입해 청소년들에게 보급하기로 한 바 있다.

이어 2001년 국내 응급피임약 시판이 허가되면서 먹는 약을 이용한 낙태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떠올랐다. 한국교회를 비롯한 사회 각계가 시판 반대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막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당시엔 보건복지부와 약사회가 “응급피임약을 전문의약품으로 분류, 엄격한 통제와 전문가의 감독 아래 사용을 제한한다는 조건으로 수입 판매를 허용한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이제 그 마지막 안전망조차도 무너질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섰다.

지난해 응급피임약 논란은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녹색소비자연대와 경제실천연합이 응급피임약을 일반의약품(이하 일반약)으로 전환하는 의약품 재분류를 신청, 논쟁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 결정은 오남용 가능성과 유익성 등에 대한 광범위한 의견 수렴 및 사회적 합의 필요성에 의해 잠정 보류됐다. 그러나 식약청은 지난달 응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 계획을 전격 발표하고, 현재 사회 각계의 의견을 모으는 중이다.

이에 따라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생명운동본부(본부장 이성효 주교)는 식약청에 한국교회의 입장을 전달했으며, 전국 각 교구 생명사목 관계자들은 교회 안팎에서 뜻을 같이 하는 각계 단체 등과 연대, 릴레이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생명운동본부는 이에 앞서 식약청의 의약품 재분류안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특히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위원장 염수정 대주교)와 평신도사도직협의회를 비롯한 교구 산하 수십 개 단체들과 전국 각 교구가 연대한 ‘생명운동연합회’(주관 청주교구 생명위원회)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 범국민적인 반대운동에 불을 지피고 있다. 


나아갈 방향

한국교회는 응급피임약의 무분별한 보급을 막기 위해 구체적으로는 식약청 계획 및 정부 정책을 변경하도록 관계자들을 직접 설득하고 있다. 특히 국민들의 의식을 개선하고 우리사회 전반에 생명의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도·교육·홍보·참여 등 4가지 방향에서 각각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활동 지원에 힘쓴다.

생명운동본부장 송열섭 신부는 “응급피임약은 사회적 합의 이전에 의·약학적 판단 만으로도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야 한다”며 “일반약으로 분류해 더욱 많은 여성들이 복용할 수밖에 없이 만드는 것은 도리어 여성 건강과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송 신부는 “우리 사회 공동선 수호를 위해 가장 약한 생명들이 죽어나가는 문제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된다”며 “지금 이 시간, 바로 우리 개개인이, 기도를 근간으로 폭넓은 생명수호의 목소리를 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생명운동연합회 결의문 · 서울대교구 기관단체 공동 성명서 요약
 
“경제 논리보다 생명 중시해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추진하는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계획 철회를 위해 교회 내 생명수호운동 관계자뿐 아니라 전국 각 교구와 수도회, 기관단체 등이 연이어 공동 입장을 표명하고 올바른 정책 실현을 촉구하고 나섰다.

다음에서는 응급피임약 문제 해결을 위해 연대한 ‘천주교 생명운동연합회’(주관 청주교구 생명위원회)가 5일 피켓 시위 및 생명 수호 행진 후 발표한 결의문과, 6일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를 비롯한 65개 기관단체가 공동으로 낸 성명서를 요약한다.

공동 결의문과 성명서 모두 지난달 6일 발표된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가 낸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지지하며 발표됐다.


■ 천주교 생명운동연합회 결의

- 식약청은 낙태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시키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명권을 침해하는 행동을 즉각 중단하라

- 식약청은 제약회사 영업이익을 우선하지 말고 여성들의 건강과 청소년들의 생명문화 정착을 가장 우선적으로 선택하라

- 식약청은 2001년 응급피임약 수입허가 여부를 논의했을 때, 의사 처방 없이는 판매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시판 승인 한 약속을 잊지 말고 존중하라

- 식약청은 국가 저출산 어려움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국민들의 의지를 저버리는 응급피임약 일반의약품 전환을 포기하라

- 식약청은 응급피임약으로 인한 죽음의 문화를 철회하고 생명의 문화를 위해 앞장서라


■ 서울대교구 65개 기관단체 공동 성명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를 비롯한 기관단체들은 식약청이 발표한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분류안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 보건복지부와 식약청의 응급피임약 일반의약품 전환 계획을 전면 중지할 것을 촉구합니다. 아울러 건전한 생명문화와 성문화를 위해 응급피임약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관리 감독의 책임과 의무를 다 해 줄 것을 당부합니다.

- 교육과학기술부 및 교육기관들은 청소년들에게 인성교육의 장을 확대하고, 올바른 생명가치관과 윤리도덕을 전달할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 모든 피임약을 생산, 제조, 처방 및 판매하는 취급자들은 경제적 이득에 앞서 먼저 생명의 존엄성과 장차 이 나라의 주인이 될 청소년들의 건전한 성윤리와 건강을 걱정해 주길 바랍니다.

[가톨릭신문, 2012년 7월 8일, 주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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