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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25: 책임의 성교육도 철저한 체험 교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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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5-28 ㅣ No.1520

[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25) 책임의 성교육도 철저한 체험 교육으로!


피임에 편중된 성교육 벗어나 책임의 성교육 강화해야

 

 

책임! ‘가르쳤다’ VS ‘배우지 않았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에게 중고교 시절에 무슨 성교육 배웠느냐고 물어보면, 이구동성으로 ‘피임’이라고 답한다. 반면 성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보건교사들은 교과과정에 따라 생명 교육과 책임 교육을 분명히 했는데, 대학생들이 피임만 배웠다고 말하는 것이 서운하다고 답한다. 성기 모형에 직접 콘돔을 씌우는 실습으로 피임 교육을 진행하는 청소년 성 문화 센터의 관계자들도 “우리가 콘돔 교육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궁방 체험과 임산부 체험 등 생명 교육과 책임 교육을 청소년들에게 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생명과 책임의 성교육을 받았다고 말하는 한국의 청소년과 청년들은 극히 드물다. 

 

왜 이런 괴리가 생길까? 생명과 책임의 성 의식이 말 몇 마디와 자궁방에 5분 앉아 있거나 임부복 체험을 하는 간단한 방식으로는 생기지 않지만, 콘돔 교육은 콘돔 케이스를 찢어보고 만져보고 씌워보고 심지어 풍선처럼 불어보는 자극적인 체험으로 진행되기에 콘돔만 뇌리에 강하게 각인되기 때문이다. 콘돔산업은 이런 방식의 성교육이 한국에서 지속되기를 원하겠지만, 이제 한국 성교육은 바뀌어야 한다. 생명과 책임의 성교육도 철저한 체험 교육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외국에서 실시하는 책임의 성교육 수행평가

 

사례1. 내가 멕시코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 실제 아기와 매우 유사한 아기 인형을 하루 동안 돌보는 성교육을 받았다. 그 아기의 몸무게는 실제 아이와 비슷했고, 행동 또한 비슷했다. 배가 고프면 울기 시작했고, 밥을 다 먹으면 트림을 해야 했으며, 심지어 놀아주기까지 해야 했다. 새벽에 아이가 너무 많이 우는 바람에 화가 나서 그 아기를 밖으로 가지고 나가 아빠 차 트렁크에 집어넣어 버린 기억이 난다. 그로 인해 과제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웃긴 것은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이런 성교육이 없다. 성관계와 생명을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아기를 돌보려면 막대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라도 체험해 볼 기회가 전혀 없다. 나와 같은 젊은 세대 친구들에게 성관계를 전혀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성관계가 최소한의 책임감을 갖춘 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떤가? 많은 20대가 피임을 하지만 그것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에 낙태한다. 성관계는 근본적으로 생명과 관련된 행위다. 하지만 이 본질이 변질하여 성관계는 단지 쾌락을 즐기는 행위로만 전락했고, 여러 피임법으로 얼룩지고 있다. 우리는 이런 하나의 놀이로 변질한 성관계의 본래 뜻을 되찾고, 이것을 조금 더 진지하게 대해야 할 것이다.

 

멕시코의 한 학교에서는 두 시간마다 깨서 우는 아기 인형을 학교 교실에서는 물론 집에까지 가져가서 하룻밤 동안 돌보는 것이 성교육 수행평가다. 책임의 가치관을 체험 학습으로 교육하는 것이다. 대부분 청소년들이 아기 인형을 잘 돌보지 못해서 낮은 점수를 받지만, 책임 의식을 내면화해주는 교육 효과는 매우 크다.

 

사례2. 미국의 성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는 ‘성교육 인형 키우기 실습’이 있다. 학생들에게 신생아와 똑같은 아기 인형을 일주일 동안 직접 키우게 하는 것으로, 인형에 부착된 센서가 작동해 신생아처럼 한 시간에 몇 번씩 울며, 울 때마다 학생들은 그 원인을 찾아 놀아주기, 밥 주기, 트림시켜주기, 기저귀 갈아주기 카드 중 하나를 꽂아 울음을 멈추게 해야 한다. 또 학생들은 실습시간 내내 항상 아기인형과 육아일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꼬박꼬박 기록해야 하며 따라서 이를 경험한 학생들은 양육의 책임감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학생들에게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성욕은 억제돼야 하며, 성관계는 무조건 안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보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실질적이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책임 교육이 필요하다.

 

청소년 시절을 외국에서 보내고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선진국에서 실시하는 책임의 성교육을 정확히 알고 있고, 한국 성교육의 문제점을 명확하게 지적한다. 문제는 정작 교육자와 정책 입안자가 이런 진실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양육비 책임법과 연계된 책임의 성교육

 

외국의 학교 성교육에 이런 체험적 책임 교육이 정착된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히트 앤드 런 방지법’으로 우리나라에 알려진 양육비 책임법이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시행되고, 교육과도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알고 있는 대다수 나라는 양육비 책임법이 1950~60년대부터 법제화됐다. “국가가 양육비를 선지급한 뒤 구상권을 행사하는 나라는 노르웨이(1957년 제도 도입), 핀란드(1963년), 스웨덴(1964년), 덴마크(1969년), 이스라엘(1972년), 폴란드(1974년), 오스트리아(1976년), 독일(1979년) 등이다.”(한겨레 2017년 7월 4일자)

 

이처럼 선진국에서는 성 해방 운동이 확산하던 1960년대에 성적 자유에 대한 책임을 개인들에게 철저하게 묻는 방식으로 법이 제정되었고, 교육도 그 법을 따라갔다. 책임의 성교육은 법과 교육이 동행할 때 가능하며, 이 유럽형 책임 모델이 성교육의 정석이다.

 

 

책임의 성교육을 위해 필요한 공론의 장

 

지금까지 우리나라 성교육을 주도해왔던 일부 단체들은 유럽의 성교육을 예로 들며 “이 나라는 적나라하게 감추지 않고 성을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유럽의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콘돔을 무료로 얻을 수 있다.”, “여자의 거절은 진짜 거절이다.(No means no)” 등의 이야기만 할 뿐, 이들 나라에 양육비 책임법이 청소년들에게도 예외 없이 철저한 책임의 성교육을 체험적으로 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말해주지 않았다.

 

또한, 이 단체들은 남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양육비 책임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여성의 절박한 처지만을 내세우며 낙태죄 폐지에만 힘을 쏟았다. 고의인지 실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성의 커다란 진실은 감추고 파편적 사실만 교육한 것이다. 이 단체들과 피임산업이 한국의 성교육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므로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을 공교육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교육 책임자들이 성교육과 관련된 상반된 이야기를 들어보고, 학교에서 청소년들에게 어떤 성교육을 제공할 것인지 판단하게 하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 책임의 성교육이 아기 인형을 직접 돌보는 실습뿐만 아니라, 청소년들로 하여금 임신을 책임지는 또래 친구들을 보게 하는 체험 교육이 될 수 있도록 법을 정비해야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5월 27일, 이광호 베네딕토(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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