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1일 (토)
(백)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사회교리: 인간, 인격,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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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5-29 ㅣ No.1521

[행동하는 양심 – 사회교리] 인간, 인격, 인권?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는 인권(人權, human rights)은 인간이면 누구나 인격적(人格的)인 대우를 받을 권리(權利)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답게 살고 사람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사람답게 산다는 것, 사람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가자면 우리는 먼저, 사람답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사람대접에 대해서 좀 더 명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나 자신, 인간에 대한 질문에서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떠올리게 됩니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는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철학자였습니다. 사람답게 살려면, 사람대접을 서로 주고받으려면 먼저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에 대해서, 인간의 삶에 대해서 유언과 같이 이러한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성찰하지 않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인은 「영혼의 성」에서 ‘우리 자신을 모르고 있는 것, 우리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사실이야말로 크나큰 불행이요 부끄러움’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스스로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스스로 해답을 얻음으로써 자신의 인격을 형성해 갑니다. ‘인격’(人格, personality)은 그리스에서 연극배우들이 맡은 역할을 위해 썼던 가면(假面, persona)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묻고, 성찰하면서 인간관계를 통해 자신의 고유한 인격을 형성합니다. 인격을 쉽게 풀이하면 한 개인의 고유한 사고방식, 언어방식, 행동방식을 뜻합니다. 한 인간의 고유하면서도 유일무이한 인격이란 결국 자신이 묻고 답한 성찰의 결과이며 관계를 통해 표현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내면적 성찰과 관계를 통해 자유롭게 자신의 인격을 만드는 존재입니다.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교부는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을 생성하고, 자기 존재의 아버지가 된다.”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하는가에 따라서 인격과 인권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올바른 자기 정체성을 정립해야만 합니다. 인간을 단순히 물질로만 보는 유물론(唯物論)이나 반대로 인간의 물질적 측면을 경시하고 비물질적 정신만을 중시하는 유심론(唯心論)은 결국 공허한 허무주의에 빠지게 합니다. 창조주 하느님과의 관계없이 무신론적 관점에서 인간을 물질로만 보거나, 인간과 세계를 정신의 나타남으로만 보는 것은 인간과 인격과 인권의 근본토대가 될 수 없습니다. 「사목 헌장」 36항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이렇게 언급합니다. “창조주가 없다면 피조물은 허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가톨릭교회는 인간의 올바른 자기 정체성을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풀어줍니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계시하신 대로 존재 그 자체이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피조물인 인간에게 존재와 생명을 주시고 자유와 영원한 사랑의 은총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고 전선(全善)하신 사랑의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진정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고,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모상(Imago Dei, Imitation of God)으로 창조하십니다(창세 1,26 참조).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과 영적, 인격적 소통이 가능한 존재라는 것을 뜻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내면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신자들은 성체 곧 하느님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실 수 있습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성체를 영한다는 것은 전선하신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의 명백한 증거가 됩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숨기거나 아끼시는 것이 하나도 없이 당신의 전부를 주십니다. 그리고 덧붙여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는 자유로이 수용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동질의 것만이 동질의 것을 수용할 수 있는 법입니다. 성체를 받아 모시는 인간은 하느님의 전선하신 사랑을 받아 하느님을 영하는 하느님과 비슷한 존재이며, 하느님의 모습으로 다른 이들에게 성체가 되어야 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말은 ‘당신은 나에게 하느님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는 뜻입니다. 고마우신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아서 하느님과 비슷하게 된 인간은 다른 피조물들에게 고마운 모습으로 나타나야만 합니다.

 

 [외침, 2018년 5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조한영 신부(안양대리구 사무국장 · 복음화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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