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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103위 성인 탄생 30주년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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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25 ㅣ No.1452

[특별 연재] 이 시대, 순교신심에서 길을 찾다


103위 성인 탄생 30주년을 생각하며



삶의 푯대를 상실한 현대인들은 인문학, 심리학, 과학의 문을 서성이며 길을 찾고 있다. 여기, 한평생 순교신심을 연구해온 손골성지 윤민구 신부는 신앙의 유산이 담긴 순교신심에서 삶의 방향키를 찾아 우리에게 들려준다. 올해는 103위 성인이 탄생한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성인들의 삶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규범이 되고 기준이 된다.


2014년은 103위 성인이 탄생한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84년 5월 6일, 지금은 복자(福者)이시고 금년에 성인품에 오르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103위 우리나라 순교자들의 시성식을 거행하였다. 시성식에서 교황은 다음과 같이 시성선언을 하였다.

이미 심사숙고하고 오랫동안 하느님의 도우심을 간청하며 수많은 우리 형제들의 의견을 들었으므로, 갈림이 없으신 천주성삼께 영광을 드리고 가톨릭 신앙을 현양하며 그리스도 신자 생활의 증진을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복되신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권위로써, 또 내게 맡겨진 권한으로써 복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정하상 바오로 외 101위 한국 순교자들을 성인으로 판정하고 결정하여 성인들 명부에 올리는 바이며 세계 교회 안에서 이분들을 다른 성인들과 함께 정성되이 공경하기를 명하는 바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이렇게 시성식을 통해 교황은 우리나라 103위 순교자들을 성인명부에 올렸을 뿐 아니라 다른 성인들과 함께 정성되이 공경하라고 명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세계교회를 향한 명령이었지만 사실상 한국교회가 가장 직접적으로 명령을 받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명을 받은지 30년이나 흘렀는데 우리는 아직도 103위 성인이 어떤 분이신지도 잘 모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수원교구에서 발행하는 『외침』에 금년부터 〈이 시대, 순교신심에서 길을 찾다〉는 제하의 특별 연재를 기획한 것은 무척 다행스런 일이다.

가끔 하느님께서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 이 땅에서 천주교회가 스스로 태어나게 하시고도 왜 10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박해를 허락하시고, 또 그토록 많은 순교자들을 내셨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의 신자들을 정화시키기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심성(宗敎心性) 때문에 혹시라도 빠지기 쉬운 함정들을 미리 보시고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 같다는 답을 스스로 내리곤 한다. 우리 민족은 무속적인 종교심성을 가지고 있어 쉽게 기복(祈福)주의나 현세중심주의에 떨어지기 쉽다. 또한 개인주의적 성향도 강하다. 그래서 천주교회의 가르침을 깊이 받아들여 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103위 성인들을 비롯한 순교자들은 이러한 것들을 뛰어넘어 하느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 심지어 목숨까지도 봉헌한 분들이다. 그래서 한국교회 신자들이 특별히 우리나라 성인들을 잘 알고 본받아야 하는 것이다. 시성선언 때 ‘정성되이 공경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시성(諡聖)이라고 번역한 서양어들은 대부분 라틴어 까노니자씨오(canonizatio 혹은 canonisatio)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희랍어 카논(καν?ν)에서 비롯되었다. 본래 “막대기”라는 의미였던 “카논”은 차츰 “자(尺)”, “규범”, “기준”의 의미로 확대되었다. 그러니까 시성을 한다는 것은 규범화하고 기준화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성인들의 삶이 하느님을 믿는 신자들의 삶의 규범이 되고 기준이 된다고 선포하는 것이 시성인 것이다. 그렇게 선포하고 성인들을 ‘정성되이 공경하라’고 명하는 것이다.

성인을 공경한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성인들의 좋은 모범을 따르고 성인들의 삶을 본받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인들과 함께 기도하며 하느님께 전구(轉求)해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다. 성인들의 삶을 규범으로,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전자 즉 본받는다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다.

시성식에서 교황이 시성선언을 하기에 앞서 김수환(金壽煥, 1922-2009) 추기경은 한국교회를 대표해 103위 순교자들을 성인품에 올려주십사 청원하면서 순교자들의 약전(略傳)을 간략하게 소개하였는데 그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기까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기꺼이 죽음을 당하신 스승, 그리스도를 닮아 피를 흘린 제자들은”(교회헌장 42)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 중 11위의 성직자와 92위의 평신도, 모두 103위께서 오늘 시성되는 것입니다. 목자들과 함께, 남녀노소, 지식의 유무,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계층의 평신도들이 피를 흘렸으니, 하느님께서는 아무런 차별 없이 누구나 다 완덕(完德)의 길로 부르심을 이들 안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103위 성인 중에는 프랑스 선교사 10위가 있고 한국인 성직자 1위가 있다. 나머지 92위는 평신도이다. 그리고 성직자인 김대건 신부님을 포함한 한국인 93위를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1위가 더 많다. 그러니까 47위의 성녀(聖女)와 46위의 성인(聖人)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직업, 교육정도, 생활수준 등이 크게 다른 분들이 포함되어 있다. 다시말해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구별 없이 여러 부류의 분들이 모두 있다. 유대철(劉, 베드로, 1826-1839)처럼 어린 소년 순교자가 있는가 하면 79세의 할머니 유조이(柳召史, 체칠리아, 1761-1839) 순교자도 있고, 승지(承旨)였던 순교자가 있는가 하면 삯바느질하며 살았던 순교자도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성인들을 공경하는데 있어 신자들이 어떠한 처지에 있든 그 모범이 될 수 있는 성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교회 구성원에는 평신도들이 월등 많지만 천주교회의 성인 중에는 평신도가 많지 않다. 그런데 103위 성인 중에는 평신도들이 무려 92위나 된다. 그러니까 평신도들에게 규범이 되고 기준이 되는 성인들의 삶이 많이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신학적으로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데 누구나 완덕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아무런 차별 없이 누구나 다 완덕의 길로 부르심을 이들 안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는 김수환 추기경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천주교 안에 평신도 성인의 수가 적은 이유는 평신도들이 완덕에 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는 이런 생각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백성은 누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완덕에 나갈 수 있도록 불리움을 받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성인이 되도록 초대받은 것이다. 그러니까 신자들은 누구나 규범이 되고 기준이 되는 성인들의 삶을 본받아 성인이 되도록 살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교회 안에 시성이라는 제도가 생겨난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신자들이 공경하며 본받게 될 분들의 삶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심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성인들을 공경한다는 가장 순수하고, 경건하고, 엄숙하고, 거룩한 일에서조차 인간의 한계와 무지로 또는 욕심과 거짓 신심으로 인해 어둠과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교가 진위 여부를 가리게 되었고 조사 결과에 따라 그분들의 삶이 규범이 되고 기준이 되니 공적으로 그분들을 공경해도 좋다는 선언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근래에 한국 교회 안에 시복시성이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관심이 많은 것은 좋으나 너무 과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는 하느님께서 영복(永福)이라는 상을 주신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어떤 순교자를 꼭 시복이나 시성을 해야 그분에게 영광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시복이나 시성을 해야 순교자가 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무명 순교자도 많고 이름만 겨우 아는 순교자들도 많다. 이런 순교자들은 비록 성인은 아니더라도 하늘나라에 계신 것이 분명하다. 불필요한 욕심을 내기보다 이미 시성 되신 103위 성인들부터 제대로 잘 공경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 윤민구 도미니코 신부 - 1975년 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탈리아 로마에 유학하여 1983년 라떼란대학교에서 사목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3년까지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강의하였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차장으로 일하였고 안성 대천동, 성남 수진동, 이천, 분당 야탑동성당 주임신부를 지낸 후 현재 손골성지 전담신부를 맡고 있다.

[외침, 2014년 1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윤민구 도미니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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