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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41: 성녀 소화 데레사의 생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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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3-07 ㅣ No.775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41) 성녀 소화 데레사의 생애 ①


“저는 아기 예수님의 ‘작은 장난감’이에요”

 

 

언니 셀리니와 함께 여덟 살 때 찍은 사진. 오른쪽이 소화 데레사다.

 

 

아기 예수와 성면(聖面)의 데레사

 

아마도 가르멜 수도회 출신 성인 중에서 신자들 사이에 가장 많이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랑을 받는 분이라면, 단연 성녀 소화 데레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구한말부터 파견되어 한국 교회에 많은 도움을 주신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님들이 이 성녀에 대한 신심을 많이 전하신 덕에 이분은 오래전부터 비교적 많은 사랑을 받아온 게 사실입니다. 여성 신자 분들 가운데 ‘마리아’ 다음으로 가장 많은 세례명이 ‘데레사’일 정도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세례명의 주인공이 바로 소화 데레사입니다. 

 

소화 데레사의 정식 수도명(修道名)은 ‘아기 예수와 성면의 데레사 수녀’입니다. 데레사 앞에 붙은 ‘아기 예수’ 그리고 ‘성면’(聖面)은 성녀가 일생 동안 살고자 했던 정신이 담겨 있는 ‘현의’(玄義)입니다. 가르멜 수도회의 전통에 따르면, 현의는 ‘종교적인 성씨’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자기가 일생의 모토로 삼고 싶은 대의명분(大義名分)이 ‘현의’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성녀는 아기 예수님과 예수님의 거룩하신 얼굴에 대한 신심이 남달랐습니다. 자기 자신을 마치 아기 예수님께서 편하게 갖고 놀 수 있는 작은 장난감에 비유했는가 하면, 수난받는 예수님의 고통을 덜어드리고 그 수난에 함께하고픈 원의도 남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성녀는 자신을 아기 예수님의 작은 장난감에 비유하며 언니 수녀에게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가난한 제 영혼은 아무 가치도 없는 작은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 아이들은 만질 엄두도 안 나는 아주 값진 다른 장난감보다는 손에 쥐든, 내려놓든, 망가뜨리든, 입을 맞추든 맘대로 다룰 수 있는 작은 장난감을 더 좋아해요. 그러자 저는 가난하게 되는 것을 기뻐했고, 매일 가난하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예수님이 저를 데리고 놀기를 더 좋아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편지 176). 얼핏 보면, 아주 단순하고 평범한 말을 사용하지만, 내용만큼은 그 어느 성인의 가르침보다 더 밀도 있게 예수님과의 깊은 관계를 표현하고 있는 게 참 매력적입니다.

 

 

평이함 속에 진주를 품고 있는 성녀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같은 경우는 기도를 통해서 깊이 있는 하느님에 대한 내적 체험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계십니다. 그분은 많은 신비 체험들을 하시고 또 여장부로서 스케일도 큽니다. 반면, 십자가의 성 요한은 영성 생활 전반에 대한 내용을 학적인 면에서 보다 체계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이 두 분의 영성을 특징짓는 것 가운데 하나는 하느님에 대한 신비 체험, 특히 신비적인 현상들에 대한 체험이 강하다는 것이고 이것을 작품으로 깊이 있게 다뤘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어떤 면에서 그런 신비적인 현상과는 동떨어진 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나 십자가의 성 요한의 가르침이 좀 어려운 면도 없잖아 있습니다. 

 

그러나 소화 데레사가 쓴 「자서전」을 보면 신비적인 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게 드문 데도 성녀가 됐고 교회박사까지 되셨다 하면서 의아해 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가까이하기에 스스럼없고 편한 성녀가 소화 데레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도 신자치고 소화 데레사의 「자서전」을 한 번쯤 읽어보지 않은 분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분의 「자서전」을 읽고 나서도 그분이 누구인지 또 그분의 영성이 뭔지 제대로 이해하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너무 평이한 말로 자신의 영성을 풀어내다 보니 사람들이 그 평이함 속에 숨겨진 진주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 성녀 소화 데레사는 어떤 분일까요?

 

 

소화 데레사의 유년 시절

 

성녀 소화 데레사는 1873년 1월 2일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해변가 근처에 있는 알랑송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시계 제조업을 하던 아버지 루이 마르탱과 레이스 제조업을 하던 어머니 젤리 게렝 사이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막내여서 데레사는 부모님과 언니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섯 살 전까지 소화 데레사의 삶은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다섯 살 때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신 다음,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성녀는, 그 이전과는 정반대로 수줍고 내성적인 아이로 변했다고 합니다. 자주 눈물을 흘리곤 했고 말수도 많이 적어지고, 한 마디로 내성적이고 의기소침한 아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부터 돌아가신 엄마 대신 둘째 언니 폴리나가 엄마 역할을 하며 어린 데레사를 돌봐주게 됩니다. 그런데 열 살이 될 무렵, 폴리나마저 리지외의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자, 둘째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성녀는 심리적 충격을 받아 “이상한 병”을 앓게 됩니다. 

 

그러나 1883년 5월 13일 성모님의 발현을 체험한 성녀는 그 이상한 병으로부터 기적적으로 낫게 됩니다. 당시 성녀는 집에 모셔둔 ‘미소의 성모상’이 움직이면서 자기에게 다가오신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열한 살이 되면서 성녀는 첫 영성체를 하게 됩니다. 이날 성녀는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면서 동시에 예수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봉헌을 훗날 가르멜 수녀원에서 꽃피웠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3월 6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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