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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생태신학으로 성경 읽기: 창세기와 빅 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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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4 ㅣ No.1526

[생태신학으로 성경 읽기] 창세기와 빅 히스토리

 

 

최근에 빅 히스토리(Big history)에 관한 관심이 늘고 있다. 빅 히스토리는 인간과 사회와 자연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이야기 방식이다. ‘거대사(Big history)’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서적들은 우주의 기원에서 출발하여 생명의 출현과 인간의 진화, 그리고 문명의 탄생과 발전으로 이어지는 문명사를 기술한다.

 

거대사의 가장 전형적 사례는 바로 창세기이다. 창세기는 세상의 창조, 인간의 창조와 타락, 그리고 성조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인간의 보편적 역사와 이스라엘의 전(前) 역사를 함께 이야기한다. 오경의 첫째 권인 창세기는 따로 떼어서 이해할 수 없고 오경 전체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창세기와 탈출기 그리고 레위기에 이르기까지 예루살렘 성전의 사제들이 편집한 자료를 ‘사제계 문헌’이라고 부른다. 사제계 문헌의 시작은 창세 1-11장의 세상 창조다. 이는 창조주 하느님을 위해 성소를 짓는 이야기(탈출 25-40장 참조)에서 절정에 이르고 레위기의 성결법(레위 17-27장 참조)으로 종결된다. 사제계 문헌은 유배지 바빌론에서 본토로 귀환한 뒤에 최종 편집되었다. 이 문헌은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아래에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의 신원과 소명을 창조 질서의 관점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심오하게 제시한다.

 

창세 1,1은 하느님의 존재를 이미 전제하고 그분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고 소개한다. 하느님께서는 “보시니 좋았다”고 일곱 번이나 말씀하시며(창세 1,4.10.12.18.21.25.31 참조) 당신이 만드신 피조물을 강복하셨다. 창세 1장은 세상의 창조와 인간의 창조를 연속된 과정으로 제시한다. 창세 2,4은 창조 때 이루어진 하늘과 땅을 ‘생성(toledot)’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톨레도트’는 하늘과 땅의 생성뿐 아니라 아담과 노아 등 성조의 출생에도 적용된다. 이로써 사제계 학파는 창조를 하늘과 땅의 생성에 이어 인간의 지속적 탄생(toledot)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후손들의 족보를 소개한다(창세 2,4; 5,1; 6,9; 10,1; 11,10; 11,27; 25,12; 25,19; 36,1; 37,2 참조).

 

그러기에 사제들은 카오스(혼돈)에서 이루어지는 창조 과정에서 인간 구원의 역사를 읽는다. 그들은 카오스의 한복판에서 질서를 만들어 가시는 창조의 하느님이 역사의 질곡에서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신다고 고백한다. 하늘과 땅의 창조는 역사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느님만이 자연과 역사의 주인이시기에 그분의 창조 행위에서 자연과 역사는 엿새 동안의 창조와 이렛날의 안식을 통해 주기적으로 거듭난다. 원초적 혼돈과 결부된 역사의 질곡도 창조 질서를 제의적으로 갱신하는 제사를 통하여 극복된다. “보시니 좋았다”는 하느님의 원초적 강복이 이를 가능케 한다. 그리하여 창조는 원초적 창조(creatio originalis)에서 출발하여 주기적으로 갱신되는 새로운 창조(creatio nova)로 이어지고 시간상 쉼 없이 이루어지는 지속적 창조(creatio continua)로 나아간다.

 

한편 사람과 동물과 식물의 관계는 우선 먹을거리로 규정된다(창세 1,29-30 참조).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동물의 먹을거리로 풀과 나무와 열매만 허용하시어 동물에 대한 인간의 폭력을 금지시키시고, 인간에 대한 동물의 위협도 거부하신다. 그러나 세상이 폭력으로 가득 차자(창세 6,11-13 참조) 하느님께서는 노아의 방주에 탄 피조물만 제외하고 모든 살덩어리를 홍수로 멸망시키신다. 폭력이 인간과 하느님, 나아가 피조물과 하느님의 관계를 단절시켰다면, 홍수는 이에 대한 하느님의 응징이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아들들을 강복하시고 짐승의 피를 먹지 말라는 금령과 더불어 방주에 함께 있던 생물을 포함하여 노아와 계약을 세우셨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생물과 맺은 영원한 계약을 기억하겠다고 약속하시고 무지개를 계약의 표징으로 삼으셨다(창세 9,15-16 참조). 세상에 퍼져나간 노아의 자손들의 족보(toledot)는 만백성이 모두 노아의 후손이라는 사제계 학파의 보편주의를 드러낸다.

 

그 뒤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과 영원한 계약을 맺으신다(창세 17장 참조). 그의 후손 가운데 야곱(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장차 하느님의 백성으로 선택될 것이다(탈출 6,2-8; 29,45-46 참조). 그들은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사제들의 나라를 세우고 거룩한 민족(탈출 19,6; 참조 레위 19,2)이 되어 하느님께 성막을 지어 바치게 될 것이다(탈출 25-40장 참조). 창세 1-11장에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엘로힘(Elohim)’으로 불리고 성조들에게는 ‘샤다이’(shadday, 전능한 하느님: 창세 17,1; 탈출 6,3 참조)로 나타난다. 하지만 성조들의 하느님이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야훼’라는 이름으로 계시되어(탈출 3,15 참조) 창조주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동일한 분이심이 드러난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이 세상의 창조주라는 것을 알고 고백하는 민족이요, 성소(聖所)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만나는 사제의 백성(탈출 19,6 참조)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소명은 홍수가 나기 전, 세상에 넘치던 폭력으로 무너져 버린 하느님과의 친교를 예배를 통해 복원하는 것이다. 사제계 문헌에 의하면 예루살렘과 다시 세워진 제2성전이야말로 세상 한복판에 자리한 예배의 중심지이다. 시온이 모든 민족들에게 예배의 중심지가 되리라는 기대가 유배 이후의 예언서(이사 2,3; 66,18.20 참조)에도 자주 등장하지만, 그것은 단지 종말론적 약속의 차원에서 언급될 뿐이다. 그러나 사제계 문헌은 시온 중심의 예배를 세상 창조 때부터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소명으로 묘사하여 예언자적 전망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사제계 문헌은 인간의 폭력으로 끊어진 창조주 하느님과의 소통을 민족의 소명으로 알고 비폭력주의를 지향한다.

 

이 비폭력주의가 초식(草食)을 이상향으로 삼고 차선책으로는 피의 섭취를 금기시하면서 동물과 평화롭게 공존하기를 지향하게 한다. 어쩌면 하느님과의 친교, 다른 피조물과의 소통을 소명으로 삼는 사제계 문헌의 보편주의적 전망은 아마도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하에 살아가던 이스라엘이 자신의 신원을 새로운 정치·종교 상황에서 이해한 결과였을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하느님 야훼는 다른 민족들도 하늘과 땅의 창조주로 숭배하는 한 분 하느님으로 동일시되었고, 제2성전에서 이스라엘이 드리는 제사는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서 보편적 차원을 지니게 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야훼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는 거룩한 민족, 사제의 백성으로 불린 이스라엘의 특수성과 만백성을 위한 보편성을 매개하는 탁월한 자리가 되었다.

 

우리가 사제계 문헌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문헌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근원적으로 창조 역사와 연계시키고 다른 피조물들, 특히 식물과 동물과 땅에 대한 인간의 책임과 소명을 강조하는 생태주의적 세계관과 윤리관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생태신학은 하느님과 인간과 자연의 삼중 관계를 창조부터 이스라엘의 역사 이야기에 이르는 성서적 빅 히스토리 안에서 논의해야 한다. 창조와 구원의 포괄적 이야기가 생태신학의 자리인 것이다. 다음 호부터는 창세 1-11장의 기원사를 필두로 사제계 문헌에 담긴 생태신학적 전망과 관점을 차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 백운철 신부는 1985년에 사제품을 받고 대방동 성당 보좌를 역임한 뒤 파리 가톨릭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97년부터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3년 5월호(통권 446호), 백운철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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