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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생태신학으로 성경 읽기: 우주는 생명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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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4 ㅣ No.1529

[생태신학으로 성경 읽기] 우주는 생명을 지향한다

 

 

지난 현충일에 지인들과 함께 북한산에 올랐다. 여름이 시작되었는데 비봉 부근에서 라일락 향기가 흩날리고 있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라일락이 군락으로 펼쳐져 있지 않은가! 덕분에 우리는 여름의 초입에서 봄의 향기에 흠뻑 취하는 호사를 누렸다. 곳곳에 깔린 소나무에서는 초록의 옷을 입은 여리디여린 솔방울들이 우리의 시선을 놓아 주지 않았다. 초록빛의 잎사귀를 가만히 바라보면 초록색 안에 다양한 빛깔이 살포시 숨어 있었다. 일행 중의 한 사람이 시인처럼 중얼거렸다. “아, 하느님은 초록이라는 팔레트 안에 온갖 색깔을 섞어 놓았네.” 푸른 생명으로 뒤덮인 북한산 자락에서 우리는 생명의 신비에 감동하며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파란 지구의 출현은 우주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우리는 과학자들이 들려주는 우주 이야기를 통해 하느님의 창조 이야기를 더욱 맛깔나게 느낄 수 있다. 우주의 출현과 전개 과정에 아주 미세한 조정(fine tuning)이 있었는데, 이 미세 조정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지혜)에 의한 것이다.

 

빅뱅 우주론에 의하면 138억 년 전(플랑크 우주 망원경이 보내 준 자료에 의하면 우주의 시작이 종전의 137억 년보다 8천만-1억 년 더 오래되었다고 한다) 시간과 공간, 물질과 에너지 등 모든 것이 수조(數兆) 도에 이르는 뜨거운 점에서 시작하여 순식간에 분리되었다고 한다. 태초에 기본 입자인 쿼크와 렙톤이 생겨났고, 이 둘이 결합하여 양성자와 중성자가 형성되었다. 양성자와 중성자가 융합하여 원자핵이 만들어졌는데, 이 결합 과정에서 양성자와 중성자는 질량 일부를 포기해야 했고 이것이 빛이 되어 우주로 보내졌다. 양자 세계의 창조를 위해 본질적 희생이 필요했고 이 창조에 빛이 동반된 것이라고 브라이언 토머스 스윔은 아름답게 해석한다(《우주 속으로 걷다》, 24쪽 참조). 그리하여 수소와 헬륨 원자핵과 전자들은 태초의 빛의 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이 빛을 ‘우주 배경복사’라고 부른다. 우리는 월킨스 마이크로파 관측위성(WMAP)이나 플랑크 우주 망원경이 보내 주는 우주 배경복사에 대한 사진들을 통해 빅뱅 이론에 의한 우주 초기의 상황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우주는 초당 71킬로미터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고 한다. 이 속도는 팽창하는 에너지 곧 암흑 에너지와 끌어들이려는 중력 에너지의 기막힌 조절로 결정되었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우주 전체 에너지 가운데 별 · 은하 · 행성 · 가스 등 우리가 정체를 알고 있는 물질은 4%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암흑 물질(24%)과 암흑 에너지(72%)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주의 팽창 속도가 백만분의 일 퍼센트만 느렸으면 우주는 수축 과정을 거쳐 붕괴했을 것이고, 반대로 백만분의 일 퍼센트만 빨랐어도 우주는 단순한 먼지로 확산될 뿐 생명이 탄생할 지구를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우주 상수’라 불리는 이 놀라운 미세 조정으로 우주는 생명을 품는 생명 지향적 우주가 될 수 있었다.

 

여기서 생명 창조를 향한 중요한 과정이 발생한다. 전자와 양성자가 결합하여 전기적으로 중성인 원자가 만들어지고, 원자의 출현으로 별이라는 새로운 구조가 우주에 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별의 탄생은 수소와 헬륨의 구름이 중력에 의해 수축되면서 시작된다. 별은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초 재료를 만들어 내는 핵융합 용광로라고 할 수 있다. 생명체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무거운 원소들과 특히 비옥한 화학 성분을 갖는 탄소가 필요하다.

 

원자들이 수축하고 충돌하여 온도가 높아지면 핵융합이 일어나 수소 원자가 헬륨 원자로 변환한다. 별 내부에는 중력에 의한 붕괴와 핵융합에 의한 팽창으로 긴장이 조성되고 불안정한 방식으로 균형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별이 수소를 다 소모하여 핵융합이 중단되면 중력에 의한 붕괴가 일어난다. 수축된 별의 중심핵이 뜨거워지면 헬륨이 탄소로 융합되고, 탄소는 산소로 융합되기까지 폭발이 반복되면서 더 무거운 원소가 생성된다. 마침내 초신성이 폭발하는 과정에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원소의 핵이 창조된다. 마그네슘, 칼륨, 인, 탄소, 금 등의 원소가 생성되어 장차 지구 행성과 그 안에 사는 생명체를 구성하게 된다. 초신성의 폭발은 우주에서 파괴를 통해 창조를 보여 주는 가장 극적인 장면이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를 구성하는 탄소 원자는 이처럼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졌다. 폴킹혼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죽은 별의 재에서 만들어진 것이다(《쿼크, 카오스, 그리고 기독교》, 53쪽 참조). 우리 태양계에서 지구만이 생명의 요람이 되었다. 태양은 빛의 원천이다. 태양은 매초 4백만 톤의 질량을 에너지로 변환시킨다.

 

지구에 단순한 세포가 처음 나타난 때는 약 38억 년 전이다. 약 20억 년 전에 핵을 가진 더 복잡한 세포가 나타났고, 이 생명 나무의 끝자락에 인간이 출현했다. 생명의 출현이 가능한 이유를 일리야 프리고진은 ‘자기 조직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지구 생명체는 자기 조직화를 거듭하는 심오한 우주 패턴의 발현이라는 것이다. 자기 조직화는 상호 교류로 이루어진다. 생명의 상호 교류를 입증하는 가장 놀라운 현상이 바로 광합성이다. 광합성은 생명이 태양 빛을 이용하여 푸른 지구를 만들어 내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작용이다. 엽록소는 빛을 흡수해 초록색을 띠고 에너지를 만들어 생명의 원동력이 되게 한다. 광합성은 산소를 배출하여 대기와 물을 정화함으로써 하늘과 바다를 푸르게 하였다. 광합성이 없다면 산소도 오존도 없을 것이다. 오존층이 없으면 차단되지 않은 자외선이 지표면의 물을 산소와 수소로 분해할 것이고 그러면 바다도 형성될 수 없을 것이다(닉 레인, 《생명의 도약》, 109쪽 참조).

 

이렇게 지구에 푸른 생명이 나타날 수 있도록 모든 조건이 참으로 절묘하게 갖추어졌다. 지구가 태양에서 1억 5천만 킬로미터가 떨어져 있다는 적절한 거리 때문에 지구의 온도는 생명이 탄생하는 데 적합했고, 목성의 중력이 소행성들의 위협에서 지구를 보호해 주었다. 그리고 지구의 크기는 달처럼 작지 않아 적절한 중력으로 산소를 머금은 멋진 대기권을 만들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지구에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조건을 미세하게 조율한 결과였다. 마침내 지구에 생명이 넘쳐나게 되었다. 하느님께서 “번식하고 번성하여 바닷물을 가득 채우고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라”(창세 1,22 참조)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다양하고 풍요로운 생명의 바다에서 다른 생명과 함께 유영하는 존재다. 왜 생명이 이토록 강하고 아름다운가? 그것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생명 지향적으로 우주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우주의 목표는 생명의 출현과 풍요로운 번성이다. 왜 생명은 그토록 집요하게 자신의 유전자를 전해 주고자 하는가? 바로 하느님께서 바다와 땅을 채우라고 생명에게 복을 내려 주셨기 때문이다. 이 용솟음치는 생명의 향연에 참여하는 우리는 우주를 창조하신 생명의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더욱 애틋한 마음으로 뭇 생명을 돌봐야 하지 않겠는가!

 

* 백운철 신부는 1985년에 사제품을 받고 대방동 성당 보좌를 역임한 뒤 파리 가톨릭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97년부터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3년 8월호(통권 449호), 백운철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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