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선교ㅣ복음화

어려운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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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 [kyungju46] 쪽지 캡슐

2015-06-02 ㅣ No.370

"내가 세상을 이겼습니다" (요한16,33)


어려운 숙제

점심시간 동료들과 함께 식당을 향해가고 있는데 할머니가 배고프다고 손을 내밀었다.

M은 가던 길을 돌아서서 주머니에 있는 돈을 털어 할머니 손에 쥐어주며 식당을 안내해 

드렸다.

그때 동료들이 "저 할머니 상습범이야, 너도 참 딱하다"며 핀잔을 주었다.

순간  M은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거꾸로 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며 혼자 미소 

지었다고 한다.

 

포클라레 모임은 세상을 거꾸로 사는 사람들이 모여서 세상으로부터 바보 취급당한 

것을 나누며 바보의 의미를 함께 공유할 수 있어 세상으로부터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다





이런 의미에서 함께한다는 것은 거리상으로 가깝고, 같은 시간과 공간 안에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것 같다.

직장에서 하루를 함께 보내는 동료와의 관계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함께 있어도 공허하고 군중 속에 있어도 고독하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에 하느님이 현존하시며 공허와 고독은 

물러간다.


직장에 상대를 위협적으로 꼼짝 못하게 하는 나름 카리스마 넘치는 사나이가 있다.

어느 날 카리스마 사나이가 장난감 낚시를 해서 건져낸 것이라며 껌, 인형 등을 내 

책상위에 두고 갔다.

나는 그가 다시 가지러 올 줄 알고 며칠이고 그것을 그 자리에 손 한번 안대고 그냥 두었다.




      

그 후 그는 나를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지나가는 말을 흘리곤 한다.

"나는 주식이 술이고, 간식이 밥이야, 아침에 눈뜨면 먼저 술을 먹어야 해. 나는 살기 

위해 술을 먹거든"

나는 이 말을 들으며 이 사람이 뭔가 도움을 바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허근신부가 세상에 쏟아내는 고해성사, 알콜중독 문제점, 알콜중독 치료'에 

대한 자료를 그에게 갖다 주었다.

깜짝 놀란 눈으로 허신부의 글을 잠깐 보던 그가 

"어떻게 알콜 중독자가 다른 사람을 선도할 수 있습니까"라고 반박을했다.

"현재가 중요해, 과거의 질곡에서 빠져나와  남을 돕는 큰일을 하고 있잖아"






그는 며칠 휴가를 내고 결근을 했다.

나는 내심 기도하며 그가 신부님을 찾아가 도움을 받기를 바랬다.

그래서 그가 출근하던 날 너무 반가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나 기도했어, 건강하니까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잖아"

그의 표정에 만감이 교차하며 수줍은 듯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는다.


그는 점심시간에 내 앞좌석의 단골이 되어 짧게 자신에 대한 정보를

하나씩 던져주었다. 마치 나에게 숙제를 주는 것같이....

 

'부모는 이북사람인데 월남해서 내가 어릴 때 모두 돌아가셨다..

나는 어릴 때 너무 많이 맞으며 자랐다.' 이게 하루에 한 마디씩 던진 말이다.

흘려들은 말이 왠지 내 마음에 와 꽂히고 긴장이 된다.

그의 어릴 적 상처들이 고스란히 내 마음속에 담겨져 마음이 시리고 아파오기 때문이다.


보호받고 사랑받아야할 어린나이에 세상에 홀로 방치되고

무력한 그에게 폭력까지 휘둘러 몸과 마음을 멍들게 한 원망스런 세상,  

그 어린 아이가 세상과 화해하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모르겠노라고 흐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바늘구멍만큼 열려있는 그 마음에 예수님의 레이저 광선을 조준해서

정확하게 맞추어야 할 텐데 나에게는 그런 지혜가 없다.

그래서 고민 고민하며 기도했다.

"빛이신 주님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이 형제를 위해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지혜를 주십시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성령께서 우리를 비추시어 나로하여금 그에게 말하게 하셨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꼬리가 12개가 달려야 하고, 카멜리온 처럼 자기보호 색을 가지고

상황에 맞춰 잘 변신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기질적으로 안 되는 사람이 있어, 

그게 나쁘다거나 잘못되고,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냥 좀 다른 기질일 뿐인데 우리는 그것을 사회에 적응력이 부족하고

별난 성격이고, 그래서 스스로도 고립감에 시달리는 오해를 하기 쉽지. 

나도 그런 종류의 사람이야

그래서 많이 힘들었지, 그래서 같은 종류의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기쁘고 그래,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타고난 기질을 인정하고 종교에 귀의해 하느님 사랑에 잠겨야해 "

   

         




그의 눈이 나를 집어삼킬 듯이 진지하게 집중하고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가 찾고, 갈망하며 듣고 싶었던 말인 것처럼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단 한마디 그러나 진실이 담긴 단호한 목소리로 " 그래요" 로 응답한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렇게 짧은 대화로 얼룩져 지나온 수많은 시간과 상처와 갈망의 언어를 압축해서 소통한다.

 

그 후로 점심시간에도 소주 한 병을 먹어야 하던 그가 술을 안 먹고 건강관리에 

신경을 쓴다.  

머리도 단정하게 깎고 새신랑처럼 그에게서 활력이 넘쳐난다.  

분노로 이글거리며 혼란스럽게 마치 수많은 거미줄이 얽혀 있는듯한 눈빛이

촛점이 분명하고 생명력 있는 눈으로, 

거칠던 말씨가 정중하고 부드럽게 변해가는 그를 훔쳐보면서 나는 속으로 박수를 친다.

 




    


바늘구멍만한 마음의 문을 통과하려면 상대에게 집중해야 하고  

내가 그만큼 작아져야 한다.

작아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내 안의 그림자와 화해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 자비와 사랑의 체험이며 그 체험에 비례해 나는 그만큼  작아질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의 삶은 현실적으로 생존의 위협이 달린 모험이 될 

때가 있다.

이런 현실이지만 그리스도인이 사랑의 삶을 통해 세상을 거꾸로 살아야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예수님께서 사랑의 힘으로 세상의 질서와 가치를 번쩍 들어 올리셨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을 이겼습니다" (요한16,33)


허근신부님의 세상을 향해 쏟아낸 고해성사는 알콜중독의 한 청년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지금 어디서 무얼하며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 때 그 청년을 위해 생각 

날 때면 기도를 드립니다.

 

신부님의 세상을 향한 고해성사, 그 용기에 감격, 존경, 감사, 등등 몽땅 드립니다.

자신의 치부를 세상에 고한다는 것은 가장 진실하고 가장 겸손한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명강의 보다 설득력 있고 감동적입니다. 


자신을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놓으신 그 가난한 자세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난한 사람의 행복"을 몸으로 실현하신 행위입니다. 그러니 신부님은 하늘나라를 차지한 지상의 가장 행복하신 분이십니다.




http://cafe.daum.net/starofsea

편집 : 불광동성당 미디어팀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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