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2016-0125.....성바오로사도의 회심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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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1-24 ㅣ No.1967

성 바오로사도의 회심축일 [0125]

사도 22,3-16     마르코 16,15-18

2016. 1. 25. . 이태원

사람이 갑작스레 변하면, 생명의 끝에 도달한 것이라는 무서운 소리가 있습니다. 이런 말을 만든 사람이 실제로 다른 사람의 삶을 끝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소리를 다른 말로 이전의 삶은 그에게서 흔적이 없이 사라지고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부정적인 뜻보다는 긍정적인 자세로 삶을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바오로사도의 회심축일입니다. 예전에는 개종축일이라고 불렀는데, 회심이라는 말이 좀 더 부드러울까요? 뜻은 다양해질 수 있지만, 바오로가 복음선포자가 되기 이전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판단입니다. 개종이라면 종교와 신앙이 바뀌는 것을 먼저 생각할 일인데,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어떤 차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교신앙인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둘 수 있는 놀라운 권한(!)을 갖고, 예루살렘에서 다마스쿠스로 가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을 개인적으로 만난 후 삶이 변화합니다. 바오로가 겪은 이 놀라운 일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빛은 보았지만, 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전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하느님이 한 개인을 불렀을 때, 그 개인이 응답을 하는 과정이 있어야 참된 삶의 시작이 된다는 뜻이라면, 우리가 새롭게 행동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바오로를 불렀지만, 실제로 그의 삶이 변화한 것은 하나니아스가 그의 삶에 다가왔을 때였습니다. 개인의 열성만으로 하느님의 일은 내 삶에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면, 우리가 신앙인으로 올바른 삶의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바오로가 박해자에서 사도로 바뀌어, 사람들에게 말한 내용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이 복음이라는 글자를 해석해야 할 것은 아니지만,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라고 믿고 받아들이고 그렇게 하는 삶에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도 복음을 향한 삶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모였던 11명의 제자들에게 복음선포를 명하셨고, 그들이 그 일을 자신감이 있게 전하게 하시려고 그에 따르는 놀라운 일을 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이런 일을 대하면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질까요? 복음을 드러내고 전하는 일보다는 세상의 사람들이 놀랄 수도 있는 기적을 행할 힘을 먼저 청하지는 않을까요? 이런 경우에는 모로(옆으로)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하는 이론이 통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오로사도가 삶의 자세를 바꾼 날, 개인의 노력만으로 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의 삶에도 하느님의 이러한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면 욕심이 될까요? 욕심이라고 한다면 조심해야 할 것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입장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따를 것은 무엇인지 잠시 묵상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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