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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생태신학으로 성경 읽기: 갑오년 새해에는 흙을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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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4 ㅣ No.1534

[생태신학으로 성경 읽기] 갑오년 새해에는 흙을 가까이!

 

 

신학교 운동장에는 엄동설한에도 파란 잔디가 돋아 있다. 2014년 새해를 푸름으로 맞이하는 것은 눈으로 볼 때 상쾌한 일이지만, 그 파란 잔디는 사실 인조 잔디다. 작년 여름에 축구장을 건설하면서 인조 잔디가 과연 신학교에 적합한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잔디 사이에 깔리는 폐타이어 가루 같은 발암 물질이 건강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자, 업자들은 그것은 과거지사일 뿐 지금은 규소로 만든 소재를 사용하기에 인체에 해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굵은 마사토로 된 울퉁불퉁한 땅에서 축구를 하다 넘어지면 심하게 다치는 일이 생기므로, 인조 잔디를 깔아 학생들을 보호하고 운동장의 먼지 발생을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거친 토양이라도 학생들이 흙을 밟고 사는 것이 바람직하고, 흙먼지 또한 나쁠 것이 없다는 자연주의 논리가 힘을 잃었다. 그래서 신학교에 인조 잔디 축구장이 생겨났다.

 

과거에 ‘아스팔트 킨트’(아스팔트 거리에서 사는 아이)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된 적이 있다. 흙을 밟지 못하고 평생 아스팔트 위에서 살아야 하는 도시인의 처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인조 잔디 킨트’도 아스팔트 킨트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흙에 대한 이야기는 창세 2,2에 처음 나온다. 이 흙(adamah) 가운데 부식토가 있다. 숲 속에 떨어지는 나뭇잎은 땅에 사는 벌레들(1㎡당 1000마리)과 모든 종류의 곤충과 기생충과 박테리아와 원생동물에 의해 분해되어 부식토가 된다. 부식토 1g에는 십억 마리 이상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이 미생물이 없다면 나뭇잎이나 죽은 식물이 분해되지 않고 점점 쌓여 숲을 짓누르고 말 것이다. 부식토가 1cm 형성되는 시간은 환경에 따라 50년에서 400년이 걸린다.

 

현대 토양학은 입자 크기를 기준으로 흙을 모래(0.05-2mm), 미사(0.002-0.05mm), 점토(0.002mm 이하)로 구분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점토다. 흙이 점토 상태에서 수분을 머금어야, 뿌리를 통해 수분과 양분을 흡수하는 식물이 등장할 수 있게 된다.

 

창세 2,5의 “들풀 한 포기도 돋아나지 않았다”라는 말은 흙이 점토 상태에 이르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땅에는 아직 들의 덤불이 하나도 없고, 들풀 한 포기 돋아나지 않았다. 여기서 들풀은 곡식을 의미할 것이다. 3,18에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들의 풀을 먹으리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들에서 농사를 지은 곡식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들풀 한 포기 나지 않은 이유는 흙을 일굴 사람이 없어서다. 덤불이 없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아직 비를 내리게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강조된 점은 흙을 일구는 데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라는 책을 쓰셨다. 교황은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에서 사람을 빚으셨다는 창세 2,7이 인간의 지위에 대한 겸손과 위로를 가르친다고 설명한다. 사람은 암흑의 세력으로 구성된 악마적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좋은 흙으로 빚으신 존재다. 모든 사람이 흙의 먼지에서 왔다는 사실은 인종주의나 엘리트주의와 같은 차별주의를 근본적으로 거부하고 인간의 근원적 평등을 일러 준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넬슨 만델라(1918-2013년)의 고난에 찬 삶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주의 철벽을 허문 평등사상의 위대한 증언이었다.

 

사람이 흙에서 왔다는 사실은 사람과 땅의 깊은 관계를 드러낸다. 사람이 진흙에서 빚어졌다는 것은 고대 문명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바빌론의 창조 설화는 마르둑이 티아맛이라는 신을 죽여 그 신의 살과 피를 진흙과 섞어 인간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집트 신화에서도 신(숫양)이 도기용 가마에서 사람을 빚어 냈다고 말한다. 아프리카에서는 하부의 신 겔라(Guéla)가 그의 입에서 나온 진흙으로 사람을 창조했다고 한다. 여신 여와가 흙으로 사람을 빚어 낸다는 중국 신화도, 프로메테우스가 강물에 흙을 반죽해 사람을 만들었다는 그리스 신화도 사람의 기원을 흙과 관련시킨다.

 

집회 39,26은 사람이 사는 데 꼭 필요한 것 중에 철을 지적한다. 여기서 철은 철기구를 만드는 재료이기도 하지만, 철분은 요오드, 아연, 구리, 망간, 칼슘과 함께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다. 흙은 이러한 기본 요소를 사람에게 제공하고, 사람의 인분은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비료가 된다.

 

사람과 동물의 공동 기반이 바로 흙과 삼림이다. 오늘날 생태계의 위기는 육지 면적의 20%에 해당하는 지역이 사막화된다는 사실에서 더욱 고조된다. 1억 5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막화로 인해 땅을 버리고 이주한다. 가장 피해가 큰 아프리카에서는 대륙의 73%가 황무지가 되었고, 중국에서 사막화된 지역의 넓이는 한반도의 20배가 넘는다.

 

토양의 유실과 사막화 문제는 인구 증가와 함께 식량 문제로 연결된다. 지금 세계 인구가 70억 명을 넘어섰고, 2050년에는 93억 명이 될 것이라 전망한다. 식량 자급을 위해서는 토양을 보존하고 삼림을 육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960년부터 1990년까지 열대우림의 20%가 벌목되고,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 삼림의 33%가 개간되어 사라졌다. 그 결과 공기를 정화하는 능력이 현저히 감소하고 부식토를 배양할 수 있는 조건이 열악해졌다.

 

갑오년 새해에는 흙을 가까이하고 싶다. 나무를 심고 가꾸며 정성껏 보살펴 주고 싶다. 한평생 흙 속에, 바람 속에 살다 가신 법정 스님의 ‘흙 가까이’라는 아름다운 시 몇 소절을 읽으며 흙을 가까이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흙을 가까이 하라.

흙에서 생명의 싹이 움튼다.

흙을 가까이 하라.

나약하고 관념적인 도시의 사막에서 벗어날 수 있다.

흙을 가까이 해야

삶의 뿌리를 든든한 대지에 내릴 수 있다.

 

시멘트와 철근과 아스팔트에서는

생명이 움틀 수 없다.

비가 내리는 자연의 소리마저

도시는 거부한다.

그러나 흙은 비를, 그 소리를 받아들인다.

흙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인간의 마음은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정결해지고 평온해진다.

 

어디 그뿐인가

구두와 양말을 벗어 버리고

일구어 놓은 밭흙을 맨발로 접촉해 보라.

그리고 흙냄새를 맡아 보라.

그것은 순수한 생의 기쁨이 될 것이다.

(법정, ‘흙 가까이’ 중에서)

 

* 백운철 신부는 1985년에 사제품을 받고 대방동 성당 보좌를 역임한 뒤 파리 가톨릭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97년부터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1월호(통권 454호), 백운철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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