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강론자료

2016-0127.....연중 제3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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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1-27 ㅣ No.1969

연중 제3주간 수요일 - 짝수 해

2사무엘 7,4-17        마르코 4,1-20

2016. 1. 27. 이태원. 안젤라성녀.

주제 : 하느님의 선언에 대한 나의 태도

미래를 말하는 사람의 선언이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미래에 관련된 말은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소리가 무서운 소리일까요? 정도에서 어긋난 현실의 모습을 보고서, 그 사람을 칭찬하거나 격려하는 소리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입장에 처한 사람들이 칭찬이나 격려를 요구하는 소리를 하는 때가 있습니다. 자신을 믿어주기만 하면 대단한 능력을 발휘할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 들은 얘기를 우리는 삶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잠시 묵상할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제가 말하는 시간이 돼서 여러분이 말하거나 듣고 싶은 내용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때때로는 제가 그 상황을 읽지 못하여 아쉽게 행동하는 때도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는 다윗이 임금으로서 자신의 뜻을 밝힌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만, 다윗이 했을 법한 이야기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을 전하는 것이 독서의 내용이고, 예언자의 선언입니다. 이야기의 주제를 짧게 말하면, 다윗은 하느님의 성전을 짓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적힌 다윗의 삶을 다 안다고 생각한다면 의문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벗어난 일을 한 때 했던 다윗이기는 했지만,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그 사람만큼 성실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법한데, 하느님은 같은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사람의 판단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야심찬 계획을 세웠던 것이 다윗이었고 그 말을 한 다음에, 예언자를 통해서 거부의 소리를 들은 다윗이 느낀 입장은 그때로부터 3000년 쯤 세월이 지난 우리가 이해하기가 쉬운 내용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다윗에게 축복을 주시는 것보다 후손을 더 낫게 볼 수 있는 말씀을 왜 하셨을까? 질문은 자유이지만, 대답을 듣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늘 읽은 사무엘역사서의 평가에도 그러한 내용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실에 대한 응답은 복음에서 찾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씨를 뿌리는 사람의 비유이야기입니다. 서른 배, 예순 배, 백배나 되는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씨를 뿌리는 사람이 부리는 재주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상황이 서로 협조한 결과입니다. 씨의 현실, 땅의 조건,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 씨앗이 변하는 모습을 보는 사람의 태도가 합쳐져서 나오는 결과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이런 것을 한꺼번에 관찰하거나 깨닫지 못하면서 나에게 생긴 결과와 하늘의 조화만 탓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한두 가지로서는 내 삶에 일어난 일을 한꺼번에 해석할 수 없는데도 말입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결실을 적게 갖게 되었다는 것은 서글픈 일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사람에게만 기적이 나타날 수 있는 놀라운 방법은 따로 없다는 것이 또한 서글픈 일입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의 삶에 대해서 말씀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현실의 삶을 통하여 어떤 결실을 맺겠습니까? 그리고 나는 그 결실을 누구에게 드러낼 것인지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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