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테러리즘과 평화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1-02 ㅣ No.1279

[복음살이] 테러리즘과 평화



2015년 11월 13일 프랑스 파리의 주요 지역에서 총격과 폭탄 폭발을 동반하며 130여 명의 사망자와 350여 명의 부상자를 낸 연쇄 테러 사건은 2001년 미국의 911 테러 사건 이후 또 다시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슬람 국가 (IS)’는 이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서방 세계에서는 잇단 일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심각한 폭력 행위에 대해 분노와 경계의 분위기가 증폭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노르웨이에서는 길을 가던 20대 무슬림이 정체불명의 남자로부터 “파리를 기억하느냐”라는 질문과 함께 칼로 찔리는 보복성 공격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슬람 국가 시설에 당장 보복 공습을 개시하였고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로 IS 격퇴를 위해 국제사회가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결의하는 등 사태가 점점 더 확대되는 양상입니다.

11월 20일에는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서아프리카 말리의 고급 호텔에서 이슬람 단체로 추정되는 무장 괴한들이 난입해 총을 쏘고 인질극을 벌이다 2명이 사살되고 인질 20명이 사망하는 사건도 벌어졌습니다.

왜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까요? 소위 말하는 ‘문명의 충돌’ 때문일까요?

세계사적으로 그리스도교를 믿는 서방 국가들과 이슬람 국가들의 갈등의 역사는 뿌리가 깊습니다. 아랍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은 622년 무함마드가 메디나에서 이슬람 국가를 세운 이후 13세기까지 전성기를 누렸지만, 몽골 침략과 십자군 전쟁을 거치면서 몰락했습니다.

이후 영국, 프랑스 등에 의해 오랜 기간 서구 유럽의 식민통치하에서 경제적 수탈과 민족적 차별을 경험한 이슬람 세계는 19세기 말 혹은 20세기 초부터 이슬람 부흥운동을 벌였고, 그런 가운데 서구에 과격하게 대응하며 폭력을 신봉하는 과격주의자들이 생겨났습니다.

특히 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의 침탈과 경제적 예속이 심화되면서 분노한 급진주의자들이 세력을 키워나갔고, 1930년을 전후하여 이집트에서 악명 높은 ‘무슬림 형제단’이 조직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1948년 팔레스타인에서 서방국가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의 건국은 그 지역에서 쫓겨난 아랍인들과 범 이슬람 국가들의 저항심에 불을 질러버린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0년대 이후 서구의 비호를 받는 세속정권이 장악하고 있는 이집트, 이란, 알제리, 튀니지, 터키 등 이슬람 세계 도처에서 급진주의자들은 반정부운동을 벌여 일부는 정권을 잡기도 했습니다.

현재의 IS는 1999년 요르단 태생의 테러리스트가 만든 무장조직을 뿌리로 하여 생겨난 조직인데, 2003년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근거지를 이라크 수니파 지역으로 옮겨 세력을 키웠고 2011년에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자 시리아로도 세력을 넓힌 후 2014년 6월 29일 이슬람 황금기인 칼리프 시대(632-661년)의 부활을 선언하며 건국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슬람은 결코 폭력을 신봉하는 종교가 아냐

세계 12억이 신봉하는 종교로서의 이슬람은 결코 폭력을 신봉하는 종교가 아니고 합리적이고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라고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에서 급진적 원리주의자들이 탄생하고, 서구에 저항하는 소수의 무장단체들의 잇따른 테러에 의해 폭력적인 집단과 종교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편 유럽 내에서 증가하는 무슬림, 즉 이슬람 신자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도 갈등의 한 요소가 되어왔습니다. 유럽에서의 무슬림의 증가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재건을 위해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프랑스는 프랑스 제국주의 영향 아래 있었던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에서 이민자들이 들어왔고, 독일은 동맹국이었던 터키에서, 영국은 자메이카,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에서 이민자들이 들어왔습니다. 20세기 중반에 서유럽에는 무슬림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자 프랑스에 500만 명, 독일에 400만 명, 영국에 200만 명의 무슬림을 포함하여 서유럽에 1700만 명의 무슬림이 존재합니다.


가톨릭교회는 테러리즘을 엄중히 단죄해

가톨릭교회는 테러리즘을 엄중히 단죄합니다. 테러리즘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국제 공동체에 깊은 충격을 주는 가장 잔인한 형태의 폭력 가운데 하나”로서 “증오와 죽음의 씨를 뿌리고 복수와 보복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간추린 사회교리 515항).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11월15일 삼종기도 후 훈화에서 13일 밤의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에 대해 “신의 이름으로 폭력과 살인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신성모독”이라며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반인륜적 범행을 비난하고 “폭력과 증오로는 인류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요한바오로 2세 역시 2001년 한 연설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신을 테러범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모독이며 불경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는 “오히려 종교들이 테러리즘의 원인을 제거하고 민족들 간에 우애를 증진시키고 협력하라”고 촉구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515항)

가톨릭교회는 테러리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런 행위의 원인을 성찰하고 “테러리즘이 발전하거나 발전하지 못하게 할 조건들을 만들어 줄 도덕적 의무를 전제로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간추린 사회교리 513항) 같은 맥락에서 교회는 테러와 벌이는 싸움에서도 인권과 법치 국가의 규범을 준수하도록 촉구합니다. 즉 “범죄의 책임은 언제나 개인에게 있으므로 테러범들이 속해 있는 종교나 국가 또는 인종 집단으로 그 책임이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은 2002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오랜 기간 동안 권리가 짓밟히고 불의가 묵인되는 상황에서는 테러범들을 모집하기가 더욱 쉽다”고 지적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514항)

따라서 극단적 이슬람 단체의 테러리즘을 단호히 비판하면서 동시에 세계사 안에서 오랫동안 서방세계가 무슬림들에게 저지른 불의와 차별이 중요한 원인이 되었음을 성찰하고 그 요인들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세계 평화의 증진과 인류의 일치는 교회의 사명이라고 천명해 왔습니다. 특히 “종교의 차이가 분쟁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진정한 평화는 폭력이 아니라 “오로지 용서와 화해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쟁과 분쟁의 참혹한 결과를 마주할 때 그 고통을 겪으면서 공격한 이들을 용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 고통은 똑같은 폭력으로 사라지지 않으며, 당사자 모두의 “용기 있는 반성”과 “상호 용서”를 통해서만 없앨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상호 용서는 두 가지 요소, “정의에 대한 요구”와 “진실에 이르는 길”을 통해서 가능하기에 진정한 화해에 이르기 위해서는 정의와 진실이라는 조건을 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민족 간의 화해를 위해서는 서로에게 행한 범죄에 대한 처벌과 배상도 이뤄져야 하는 과정도 있음을 지적합니다. 지구촌 전체가 폭력과 미움을 극복하고 인류의 일치와 평화를 이루기 위한 진실한 기도와 냉철한 대책이 필요한 시기입니다.(간추린 사회교리 516항)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1월호, 박정우 후고 신부(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1,44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