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주일학교ㅣ청소년 주일학교 청소년 관련 통합자료실 입니다.

청소년 사목: 문화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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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1-06 ㅣ No.54

청소년 사목 - 문화의 자리

 

 

청소년 사목의 중요성은 몇 차례에 걸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들어 왔다. 그러나 청소년 사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심각성이나 위기감을 함께 공감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 사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 시작하는 것이다. - 그것이 무엇이 됐건 말이다. 그리고 그 사목의 대상이 바로 내 자식이라는 점이 중요시 되어야 한다. 내 자식은 남의 자식과는 다르다는 생각에서는 올바른 청소년 사목이 뿌리를 내릴 수 없다. 그리고 우리들 모두의 자식들이 올바르게 양육되는 풍토, 건전한 문화의 자리에서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지금 세대는 어느 누구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없고 더불어 사는 세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청소년 사목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그들이 올바르게 양육되고 건전하게 어울리고 나름대로의 꿈을 가꿀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러한 자리는 사실 학교에서 찾아 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물론 학교 교육이 하루속히 정상화되어 우리들의 걱정이 사라져야 하겠지만 현행의 입시 중심의 학교 교육하에서는 그러기가 참 어렵다. 따라서 교회나 지역 사회 문화 센타, 그리고 각급 단체의 장소가 학생들의 건전한 문화 육성의 자리로 자리 잡혀져야 되겠으며, 그중에서도 교회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청소년 사목의 중요성은 다양한 자리에서 다양한 계층에 의해 논의되어야 할 것이며, 이러한 전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때 비로소 올바른 청소년 사목이라는 환경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청소년 사목이 입으로만 중요하다고 갑론 올박 되어질 때 지금의 청소년은 점점 빛을 잃어가고 꿈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 청소년 사목의 자리에서 보는 청소년 문화 육성의 중요성과 관계를 찾아보도록 하자.

 

 

1. 청소년 문화의 현실

 

청소년 문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성인들이 청소년을 장사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른들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려고 하고 있으며, 돈벌이가 된다면 청소년이야 어떻게 되든 전혀 개의치않고, 무슨 일이든지 벌이는 것이 바로 기성 세대이다. 사실 어른들에게 있어서는 청소년은 아주 쉬는 돈벌이의 대상으로 여기게 마련이며, 어른들의 그러한 돈벌이 때문에 희생되는 청소년이 무척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청소년의 입장에서 본다면 마땅히 가야 할 곳이 없다. 이렇게 말하는 청소년에게 가장 손쉬운, 어른들의 대답은 ‘학생이 공부해야지 가긴 어딜 간단 말이냐’이다. 그렇다면 공부를 마친 어른들은 무엇을 해도, 어디를 가도 괜찮고 청소년은 집에서 학교에서 공부만 하라는 이상한 논리가 성립된다., 사실 우리나라 중고생들의 경우 이러한 논리가 만연해 있기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나면, 아니 대학교 입시를 포기하고 나면 그야말로 고삐풀린 망아지 모양 자기 하고 싶은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인생 전체를 망친 것으로 여기게 된다. 오늘날 이러한 현실에 비추어 본다면 청소년들이 학교 생활 이외에도 무언가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 - 그것도 해서 보람된 일,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곳 - 그것도 모여서 즐겁고 유익한 자리의 마련이 아주 시급하다고 여겨진다.

 

사회 곳곳에 ‘미성년자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미성년자가 출입해서는 별로 유익하지 않은 곳이라고 여겨지는 곳에 그런 팻말이 붙어있게 마련이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본다면 그러면 그곳은 어른들이 출입해서 아주 유익한 곳이냐 하는 점이다. 그런 곳은 어른들도 출입해서는 곤란한 곳이다. 그렇다면 누구는 가서는 안되고, 누구는 갈 수 있고 하는 모순이 생기게 된다. 청소년 회관을 몇 개 짓고 행정조직에 청소년부를 만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사회가 건전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회가 건전해지고 청소년들이 어른들과 더불어 살 수 있을 때 올바른 청소년 문화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올바른 청소년 문화 육성을 위한 다음 문제는 공간의 해결이다.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지금 우리 청소년들은 갈곳이 마땅치 않다. 이것은 학생이 공부나 하지 어디를 가느냐 하는 식의 의견이 팽배해 있는 가운데서는 아무런 해결점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정부에서도 이런 문제가 나오니까 여기 저기 몇 개의 청소년 시설을 세우고서는 할 일을 다 했다는 식의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사회 기관도 청소년 시설이나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기는 하지만 재정적 뒷받침이나 인적 자원의 미비 등으로 제 구실을 다하기가 무척 어렵다. 따라서 오늘을 사는 청소년들이 잠깐이라도 쉬거나 몇몇이 모일라고 하면 적절한 장소가 없기 때문에 어른들의 눈을 피해서 모이게 되고, 그렇게 모이다 보면 자연히 일탈 행위가 생기게 된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의 일탈 행위만을 보게 되며, 이러한 일탈 행위로 말미암아 청소년들이 모이면 별로 유익한 것이 없다고 단정지어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악순환은 반드시 끊어져야 한다. 이것을 끊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어른들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교회에서도 어른들이 청소년 문화의 중요성과 그들이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 환경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 충분히 공감될 때 교회는 그 기능의 극대화를 꾀할 수 있는 것이다.

 

 

2. 청소년 문화 형성의 필요성

 

이제 우리 청소년 문화가 왜 필요한지를 한번 살펴 보도록 하자, 앞에서도 지적한 것과 같이 청소년은 청소년다울 권리를 가지고 있다. 만약 청소년, 아니 청소년뿐 아니라 어떤 계층이라도 그 계층의 고유 권리와 욕구를 억제시킨다면 언제가 폭발하거나 아니면 올바른 성장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학자나 교육학자 등이 각 계층의 올바른 성장과 발달을 위한 많은 연구는 하고 있으며, 사회 전체와 정부 차원에서 정책적 배려를 하고 있지만 청소년 계층에 대해서는 부모님들의 입김이 워낙 세기 때문인지 별다른 정책이 없이 ‘공부만이 최고’ 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만약 이대로 지속된다면 청소년들 전체가 거대한 정신질환자의 집단으로 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청소년들이 갖고 있는 욕구와 그에 대한 권리를 충분히 인지하여 그에 맞는 청소년 문화의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청소년 문화의 육성은 어느 개인이, 어느 시간에, 어떤 청소년 계층을 대상으로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 문화는 적어도 사회 전체가 공감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전체 청소년을 대상으로 10년 이상의 시간을 염두에 두고 계획되고 실시되어야 한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는 사회에는 많은 청소년 문화 프로그램이 세워졌었다. 그러나 어느 하나 자리를 잡은 것이 없는 실정이다. 이것은 청소년 문화를 너무 미시적으로 보고, 단시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높이려고 계획하고 실시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따라서 청소년 문화는 사회 전체의 공감대를 얻어가면서 차츰 차츰 준비되고 되어야 한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교회의 사목적 기능은 매우 중요하다. 교회가 어떤 면에서는 이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회 전체가 바로 가지 못하고 있을 때 교회는 그 잘못을 지적할 수 있고, 만약 시정되지 않는다면 어떤 희생을 무릅쓰더라도 투쟁해야 한다. 그런데 다른 방면에 있어서는 그런 자세가 되어있지만 유독 청소년과 관련된 문제에는 그렇지 못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이 청소년다웁게 성장할 수 있도록 교회 안에 청소년 문화의 자리를 만들고 사목이 그런 방향으로 계획되고 진행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 문화의 필요성은 이러한 면에서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건전화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 청소년은 어떤 면에 있어서 이 사회의 내일을 알 수 있는 미래 측정기이다. 청소년 문화가 올바로 건전하게 자라지 못하면 성인 문화, 나아가 한 사회 전체의 문화가 올바르게 자리할 수 없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적당한 통제와 절제를 배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간섭과 통제만을 배운 청소년들이 이제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정도는 상상을 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어려서부터, 특히 사회 생활과 공동체 생활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배워야 하는 시기에 올바르고 건전한 문화가 육성되어야 한다는 그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청소년을 객체로 보게 되면 문화가 형성될 수 없다. 청소년 문화가 형성되지 못하면 문화의 단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린이 나름대로의 문화가 - 대개 이것은 어른들이 자기 취향에 맞게 만들어준 것이지만 - 바로 어른 문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청소년 계층의 문화는 국지화되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청소년 반체제적인 문화 - 소위 언더그라운드 컬춰라고 하는 것 - 가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기성 문화는 그것을 불건전하고 비원리적이고 반사회적인 문화로 보고 탄압을 가하게 마련이고, 청소년문화가 탄압을 받게 되며 자연히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면서 더욱더 자기들끼리만의 문화를 고집하게 되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된다. 따라서 청소년 문화는 그 문화가 올바르게 육성될 수 있도록 공개되어야 하며, 그것이 공개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것이다.

 

 

3. 청소년 문화의 자리 마련

 

이제 청소년 문화의 필요성을 알아 보았으니, 그 자리 마련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자, 청소년 문화가 바르게 자리하기 위해서는 자리 마련이 무척 중요하다. 여기서 자리 마련이라고 함은 단순히 그들이 모일 공간의 마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의미와 함께 그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어떤 것과 그것을 지도해줄 수 있는 지도력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소년 문화의 자리 마련은 우선 장소적인 면과 다음은 활동 프로그램,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소년 지도자의 기능과 역할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1) 청소년 문화의 장소

 

청소년들은 어떤 일이 있어서, 아니면 단순히 쉬기 위해서라도 모일만한 곳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을 사는 중고생들이 편안히 모일 수 있는 곳은 학교, 가정, 도서실 밖에는 없을 것이다. 교회도 어떻게 보면 그 기능을 상실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학생들이 모이고 싶어도 모일 곳이 없으며,  우선 모이는 것 자체를 바른 시선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더 모이기가 어렵다. 이러한 현실에서 청소년들은 모여서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를 억지로 눌러 버리거나 어른들의 눈을 피해 몰래 만나서 욕구를 충족시키는 두 가지 방법 중에 하나를 강요받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청소년 문화의 건전한 자리 마련을 위해서는 그들이 밝은 곳에서 떳떳하게 모이고, 떳떳하게 모여서 떳떳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청소년의 모임이 밝아지다 보면 그들의 심성도 밝아지고 그들의 심성이 밝아진다는 것은 결국 그들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그 위치를 가지게 된다는 것으로까지 확대해서 이해할 수 있겠다. 청소년들이 이 사회에서 다른 계층, 특히 어른들과 더불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청소년들이 이 사회에서 동지애와 형제애를 느끼게 될 것이며, 이것은 그들이 가야 할 길, 해야 할 일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어른도,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강요하는 어른도 없어지게 되며, 청소년 스스로 자기 할 일을 자기가 알아서 하게 될 것이다.

 

(2) 청소년 문화를 위한 프로그램 마련

 

청소년들이 혹 모인다고 해도 할 일이 거의 없는 것이 또 하나의 문제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 교육적인 차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의 마련이 있어야 할 것이다. 현행의 청소년 문화를 위한, 또는 청소년들을 위한 활동들을 보면 대개 형식적이거나 소수의 계층만이 참가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청소년들이 공통으로 쉽게 참가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청소년 문화 활동이 매스컴에 의해서 독점되어 있다. 무슨 청소년 잔치니 무슨 청소년 문화제니 하는 것들이나, 방학을 이용한 청소년 문화 행사들 - 스키 강습, 그것도 유명 연예인과 함께 하는 엄청 비싼 비용의 - 이 결코 지금 우리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문화의 행태일 수는 없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문화 형성이 대개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에 의해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수가 많다. 근자에 있었던 ‘뉴 키즈 ’소동이나 여의도에서 일어나는 연예인 신드롬 등이 그 단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문화의 형성은 당연히 쌍방적이어야 하며 일정한 논의의 틀이 있어야 건전해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청소년는 매스컴에 의해 일방적으로 단정지어지기 때문에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한가지 점은 라디오나 녹음기의 이어폰을 끼고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당장은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른들은 이러한 청소년 문화 형성이 나쁜 것만 일 수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전부라는 지금의 현실이다.

 

교회는 여태까지 청소년 문화 육성에 커다란 공헌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중고등부 주일학교나 각종 단체 활동 등을 통해서 다양한 청소년 사목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행의 추세로 간다면 머지않아 교회 내에서 청소년을 찾기가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 가서 학생들에게 왜 교회에 나오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학생들은 언제 우리를 교회에 나오게 했었느냐고 답할 것이다. 사실 지금 이 시간을 방황하고 있는 청소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일 수 있다는 아주 쉬는 진리를 우리는 외면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3) 청소년 문화와 지도자

 

디다케는 주일학교 사목 때문에 많은 청소년 지도자를 만날 수 있지만, 그 지도자를 오랜 시간 청소년 사목의 자리에서 만나기는 힘들다. 더욱이 교회 청소년 지도자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이는 한마디로 청소년 지도자의 절대수 부족이라고 여겨진다. 어떤 사람이 청소년 지도를 하고 있다는 것은 머지않아 다른 직장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아도 그렇게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교회 내에서, 그리고 청소년 문화에 대한 일을 하고 있다면 거의 이 사실이 틀림없게 마련이다. 따라서 청소년 문화가 바르게 정착되기 위해서는 청소년 지도자가 육성되어야 한다. 학교에서는 다양한 교과의 많은 선생님들이 계시지만, 학생들이 학교만 벗어나면 선생님을 만날 수 있도록 우리는 청소년 프로그램 전문가를 많이 키워내고 곳곳에, 바로 청소년들이 필요로 느끼는 곳과 시간에 그분들이 계시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법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법 이전에 모두의 필요성에 의해서 존재되어야 되며, 청소년에, 그리고 청소년 문화에 관심을 가진 전문가가 많아 질 때 올바른 청소년 문화가 창조될 수 있을 것이다.

 

주일학교 교사는 이런 면에 있어서  훌륭한 청소년 지도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러한 중고등부 주일학교 교사가 학생들의 교리 지도는 물론이거니와 평소에 청소년들의 상담자가 되어줄 수 있고, 그들의 문화를 지도하고 이끌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과 함께 지도적 배려고 있었으면 한다. 교회는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아주 좋은 청소년 문화의 자리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4. 청소년 문화와 사목

 

교회가 훌륭한 청소년 문화의 자리로서 역할을 다할 때 교회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다고 볼 수 있다. 교회는 어느 특정 집단이나 계층을 위한 곳이 아니며, 인류의 구원이라고 하는 절대적 명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복음 선포의 사명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복음 선포는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을 담은 성서를 읽고 해석해 주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따라서 이 사회의 온갖 현상을 분석하고 적응하고 고민에 답을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병원이 필요한 곳에서는 의술을 베풀고 고아나 과부가 많은 때에는 그에 맞는 복지 사목을 펼치게 마련이다. 이러한 사목적기능으로 보아서 청소년 사목은 교회에 있어서, 적어도 요즈음은 무척 중요한 사목이라고 볼 수 있다. 교회가 청소년 문화를 앞장서서 선도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의식에 대폭적인 수술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어떻게 보면 서울에 있는 130여개의 성당이, 물론 그보다 더 엄청난 개신교회가 있지만, 청소년 문화의 창조를 위해서 앞장선다면 청소년 문화의 공간은 당장에 해결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어느 성당이건 간에 얼마간의 회합 공간과 휴식 공간, 그리고 놀이 공간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서 성당이 청소년들을 위해 문을 개방한다면 아주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 청소년들이 성당에 모인 이상 그들을 그대로 둘 것이 아니라 무인가 일 거리를 줄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든지, 독서 써클을 만들어 준다든지, 학습장으로 제공된다든지, 또는 아울러 함께 뛰놀 공간으로 제공될 수 있다면 청소년 문화의 프로그램까지 손쉽게 해결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신부님이나 수녀님, 또는 여력이 있다면 청소년 활동전문가 - 본당에서 급여를 주는 유급일 수도 있고, 본당 신자 중 봉사자일 수도 있다 - 까지 계실 수 있다면 그야말로 청소년 천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누구에게든지 문이 열려야 한다. 더욱이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더욱 좋다. 오늘날 청소년 문화 부재의 현실에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엄청나게 많다고 여겨진다. 만약 교회에서까지 그들을 외면한다면 우리의 청소년들은 갈곳도, 할 일도 없는 그야말로 정신적 방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입시 정책이 아무리 고쳐진다고 해도 현실은 현실이다. 따라서 입시가 그들의 목적이 아니라 오늘을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함께 깨닫도록 하자, 우리들의 이러한 깨달음이 모여질 때 올바른 청소년 문화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며, 교회는 청소년 사목의 차원에서 청소년 문화 육성에 앞장을 서야 할 것이다. 지금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해 추방 운동이나 생명 보호 운동도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청소년 사목도 그와 더불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지금부터 새로운 각오와 자세로 청소년 사목을 시작하도록 하자.

 

* 위의 문서는 소사본당 신영숙(마리아) 자매님의 도움으로 입력되었습니다.

 

[가톨릭 디다케, 1992년 7-8월호, pp.102-112 / 인천교구 시노드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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