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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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영화 너에게 가는 길 - 자모(慈母)신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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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5-08 ㅣ No.70

[영화칼럼] 영화 ‘너에게 가는 길 - 2021년 감독 변규리


자모(慈母)신 교회

 

 

지난 2021년 2월 22일,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동성 간 결합의 축복과 관련된 의문에 대한 답변>이라는 제목의 문헌을 통해 ‘가톨릭교회는 동성애자는 축복하더라도 그들의 결합은 축복할 수 없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답변문을 전했습니다. 교회가 동성애자를 비롯한 우리 시대의 성 소수자들을 존중하고 동정하며 그들을 향한 혐오와 배척 같은 부당한 시선에는 저항하지만, 교회 안팎에서 요구되는 동성 간의 혼인에 대한 축복을 해줄 권한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지닐 수도 없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편집자였던 오스트리아 빈 교구의 크리스토퍼 쇤보른 추기경은, 세상의 어떤 어머니가 자녀가 처한 상황에 따라 자녀가 바라는 축복을 거절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동성애를 느끼거나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교회를 어머니로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그들도 하느님의 자녀다. 그들은 교회를 어머니로 보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습니다[‘가톨릭 평론(2021년 여름호 제32호) 참조] 이 같은 쇤보른 추기경의 설명은 신앙교리성이 발표한 신학적 원칙을 사목적으로 적용할 때 사목 대상자들을 향한 더욱 섬세한 시선, 즉 ‘어머니의 시선’이 요구된다는 사목적 차원의 첨부라고 봄이 옳을 것입니다.

 

변규리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은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비비안’과 트랜스젠더 아들을 둔 어머니 ‘나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비비안과 나비는 ‘성 소수자 부모 모임’에서 사용하는 두 어머니의 활동명입니다.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성향의 자녀를 둔 두 어머니는 자녀를 부끄러워하거나 억지로 바꾸려 들지 않습니다. 여느 어머니들처럼 자녀의 고민을 들어주고 아픔을 보듬어 주며 자녀가 부당한 일을 겪으면 함께 저항합니다. 이같이 영화의 중심을 이루는 비비안과 나비, 두 어머니의 모습을 마주하며 쇤보른 추기경이 언급한 ‘교회를 어머니로 보고 싶어 한다.’는 문장에 담긴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됩니다. 특별히 영화는 엔딩 크레딧에서 자녀가 성소수자임을 당당하게 고백하는 부모님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세상의 축복을 받으며 행복한 삶을 영위해 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된 성소수자 부모님들의 커밍아웃(coming out)은 차별과 혐오에 맞서고 소외된 이들을 향해 기꺼이 손을 내미는 사회 운동으로 이어지며, 여기에 관객들도 동참하기를 촉구합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탄생과 돌봄의 맥락에서 필연적으로 ‘어머니’를 필요로 합니다. 여기서 어머니는 ‘여성성에 종속된 모성’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뒤처지거나 길을 잃은 이들과 함께 먼 길을 돌아서 갈 수 있는 ‘용기’와 숨 가쁘게 밀려오는 사태를 긴 호흡으로 마주할 수 있는 ‘인내’를 통해서 우리는 어머니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명은 어머니가 품은 용기와 인내를 통해서 세상에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되고, 교회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표상으로 삼으며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합니다.

 

[2023년 5월 7일(가해) 부활 제5주일(생명 주일) 서울주보 7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행당동성당 부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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