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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최양업 신부 기적 심사 종료, 교황청 시성성 심사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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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6-26 ㅣ No.1556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시복시성 향해 성큼


최양업 신부 기적 심사 종료, 교황청 시성성 심사 남아

 

 

- 가경자 최양업 신부는 매년 2800여km를 걸으며 교우촌을 방문, 성사를 집전했다. 그래서 최양업 신부를 ‘땀의 순교자’라 부른다. 사진은 최 신부의 사목 중심지였던 청주교구 배티성지에 세워진 가경자상.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1821~1861) 신부에 대한 한국 교회 차원의 기적 심사가 마무리됐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위원장 안명옥 주교)는 15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하느님의 종 가경자 최양업 신부 기적 심사’ 마지막 법정을 열고, 심사를 종료했다. 기적이 발생한 의정부교구에서 담화를 통해 기적 심사 시작을 알린 지 1년 만이다.

 

기적 심사 법정 직책자인 재판관 자격으로 법정에 참석한 이기헌(의정부교구장) 주교는 “기적 심사를 위해 애써준 많은 분 덕에 한국 교회의 첫 기적 심사를 잘 마칠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 로마에서 열리는 본심사가 하느님 은총 속에서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 드리자”고 당부했다.

 

이로써 최양업 신부의 시복이 한걸음 가까워졌다. 최양업 신부의 경우 교황청 시성성에서 열리는 본 기적 심사만 통과하면 시복이 결정된다. 

 

순교자의 경우 교황청 시성성으로부터 순교 사실을 인정받으면 바로 시복된다. 반면 증거자는 영웅적 덕행의 삶을 산 사실을 인정받아 가경자로 선포된 후 가경자의 전구를 통한 기적 1건이 입증돼야 시복이 결정된다. 최양업 신부는 지난 4월 가경자로 선포됐다.

 

기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날 시복 청원인 류한영(시복시성특위 총무) 신부ㆍ재판관 대리 이범주(의정부교구) 신부ㆍ검찰관 최인각(수원교구) 신부ㆍ법정의학 전문가 윤승규 교수ㆍ공증관 장후남씨는 직무상 비밀을 지킬 것을 서약했다.

 

시복시성특위는 치유자의 증언과 의학 전문가의 검증 보고 등이 담긴 심사 문서를 봉인하고, 서류 운반자로 류한영 신부를 임명했다. 이날 법정에는 주교회의 부의장 장봉훈 주교도 참석해 과정을 지켜봤다.

 

류 신부는 17일 교황청 시성성에 심사 문서를 공식 접수했다.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와 부의장 장 주교, 로마 주재 청원인 정의철 신부는 21일 교황청 시성성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을 만나 최양업 신부 기적 심사에 대해 면담했다.

 

류 신부는 “여러 가지 경험으로 미뤄봤을 때 시성성의 기적 심사 결과는 빠르면 3년, 늦으면 5년 안에 나오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기적 심사가 잘 이뤄지기 위해선 신자들의 기도가 필요하다”면서 “최양업 신부를 공경하며 지속해서 전구 기도를 바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 김대건과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된 최양업은 1849년 중국 강남교구장 마레스카(Maresca)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고 두 번째 한국인 사제가 됐다. 1850년 조선에 귀국한 최 신부는 하루에 100여 리를 걸으며 전국 산간벽지 교우촌을 방문해 성사를 집전했다. 최 신부는 1861년 6월 주교에게 보고차 상경하던 중 과로와 장티푸스로 선종했다. 최 신부는 ‘땀의 순교자’로 불린다. [평화신문, 2016년 6월 26일, 백슬기 기자]

 

 

가장 어렵고 중요한 ‘시성성 심사’만 남았다


최양업 신부 기적 심사 법정 종료와 의미, 앞으로 과제

 

 

시복 대상자 최양업 신부의 국내 기적 심사가 종료되면서, 한국 교회 최초의 증거자 복자 탄생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15일 ‘하느님의 종 가경자 최양업 신부 기적 심사’ 법정을 종료하고, 17일 심사 문서를 교황청 시성성에 공식 제출했다. 교황청 시성성 차원의 기적 심사를 통과하면 최양업 신부의 시복이 결정된다.

 

 

한국 교회 최초 증거자 시복 대상자

 

두 번째 한국인 사제 최양업 신부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며 신앙의 자세를 지킨 ‘증거자’. 한국 교회가 순교자가 아닌 증거자의 시복을 추진한 것은 최양업 신부가 최초다.

 

따라서 이번 최양업 신부 기적 심사는 한국 교회 최초의 기적 심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적 심사 재판관 이기헌(의정부교구장) 주교는 “한국 교회 최초의 기적 심사였기 때문에 준비 및 실행 과정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느님 도우심으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며 “기적 심사 법정 관계자들과 번역가들 노력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의 경우 교황청 시성성 역사전문가로부터 순교 사실을 인정받은 후 바로 시복이 결정됐기 때문에 기적 심사가 필요하지 않았다.

 

 

전반적인 심사 과정

 

이기헌 주교는 지난해 6월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기적 심사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의 담화를 발표하고, 시성 절차법에 따라 최양업 신부의 기적 심사를 진행할 것을 공포했다. 이어 시복시성특위는 같은 해 9월 최양업 신부 기적 심사 법정을 개정했고 올해 6월 15일 종료 법정까지 총 14회 법정을 열어 기적이 하느님께서 행하신 것인지, 시복시성 대상자의 전구로 일어난 것인지 등을 면밀하게 확인했다. 이번 심사에는 법정의학 전문가를 비롯한 자문의학 전문가, 검증의학 전문가, 기적 체험자 주치의 등 10여 명의 국내 전문 의료진이 진술하고 검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복까지 어떤 과정 남았나

 

지난 4월 가경자로 선포되고, 잇달아 6월 한국 교회 차원의 기적 심사가 마무리되면서 최양업 신부 시복을 위한 작업은 교황청 시성성의 기적 심사 하나만 남았다. 

 

시성성은 우선 한국 교회 차원의 예비 심사가 교회법적 절차를 잘 따랐는지를 확인한다. 이후 시성성 소속 의학전문가들은 치유 기적이 현대 의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인지를 검토한다. 이를 바탕으로 시성성 신학위원회는 기적이 가경자의 성덕에서 비롯된 것인지 검토하고, 그 결과를 시성성 추기경위원회로 올린다. 이 회의를 거쳐 기적 심사를 통과하면 교황이 시복을 결정한다.

 

시복시성특위 총무 류한영 신부는 “교황청 시성성 소속 의학전문가들이 매우 정밀하게 검토하기 때문에 시복 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절차를 앞두고 있다”며 “정확한 심사 마무리 시기를 알 순 없지만, 적어도 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인 2021년엔 심사가 마무리되고 시복이 결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평화신문, 2016년 6월 26일, 백슬기 기자]

 

 

“순교자 아닌 증거자 시복 추진 의미 커”


기적 심사 재판관 이기헌 주교

 

 

“그동안 한국 교회엔 피를 흘린 순교자들이 시복ㆍ시성됐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처럼 순교하지 않고 삶으로 신앙을 증거한 분이 시복되는 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현대는 최양업 신부와 같은 증거자 필요 

 

기적 심사 재판관을 맡은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땀의 순교자’라 불리는 최양업 신부의 삶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이번 기적 심사를 계기로 삶으로 신앙을 증거하는 모범을 보여 준 최양업 신부님을 본받는 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했다. 

 

“현대 사회엔 최양업 신부님 같은 증거자, 땀의 순교자가 더 많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분은 신자들을 만나기 위해 1년에 7000리 그러니까 2800km씩을 걷는 생활을 11년 반이나 하셨습니다. 신앙 공동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가 고해성사를 주고,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찾아가는 사목의 모범이 바로 최양업 신부님이십니다.”

 

이 주교는 또 “온몸과 마음을 다 바쳐 하느님을 전했던 최양업 신부님을 본받아 우리도 삶의 자리에서 봉사하고 이웃들을 사랑해야 한다”면서 신자들이 최 신부의 삶을 통해 현대적 의미의 순교에 동참하기를 희망했다.

 

 

그 분의 수많은 발걸음과 땀 기억해야 

 

“한 명의 신자를 더 만나려 했던 그분의 수많은 발걸음과 땀을 잊어선 안 됩니다. 특히 사제들에게 모범이 되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영성이 한국 교회에 새로운 신심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랍니다.”

 

이 주교는 “워낙 삶 자체가 대단하셨기에 (로마에서) 긍정적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이번 기적 심사를 계기로 최양업 신부뿐만 아니라 우리 복자, 성인들에게 더 많이 전구하고 기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바랐다. [평화신문, 2016년 6월 26일, 박수정 기자]

 

 

주님의 협조자였을 뿐, 기적 심사 종료 ‘감격’


배티성지 전담 신부 시절 시복시성 제안한 장봉훈 주교

 

 

“최양업 신부님 시복시성과 관련해 제가 한 것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때가 돼 최양업 신부님을 드러내고자 하신 것이고, 그런 하느님 계획에 맞춰 협조자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진천본당 주임 시절(1976~1979) 배티공소를 관할하며 배티성지 터를 닦고, 1996년 배티성지 첫 전담 신부로 부임해 당시 청주교구장 정진석 주교에게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 청원서’를 냈던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 장 주교는 “최양업 신부님 기적 심사 종료는 가슴 벅찰 정도로 감격스러운 일”이라며 주님의 심부름꾼으로서 감회를 밝혔다.

 

20년 전, 장 주교의 청원으로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이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 공식 안건으로 올라가면서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배티성지 전담 시절 장 주교가 차기진 박사와 펴냈던 최양업 신부 자료집은 시복시성 조사의 토대가 됐다. 

 

최양업 신부를 “귀감이 되는 형님 사제”라고 소개한 장 주교는 “최양업 신부님은 교회가 와해된 때 사목자로서 한국 교회를 위해 위대한 일을 하셨다”며 “망설임 없이 순교를 택했던 신자들 마음에 깊은 신앙과 하느님 사랑을 심어준 분”이라고 설명했다. 

 

장 주교는 이른 시일 안에 시복시성이 가까워진 것은 “하느님의 은총과 신자들의 기도 덕분”이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신자들의 열심한 기도로 단기간 내 최양업 신부님이 가경자로 선포되셨고, 그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셔서 국내 기적 심사까지 잘 마칠 수 있었다”면서 “교황청 시성성 심사에서도 명확한 기적으로 공인돼 최양업 신부님 탄생 200주년이 되는 2021년엔 시복되시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평화신문, 2016년 6월 26일, 백슬기 기자]

 

 

최양업 신부 기적 예비 심사 종료 - 현양 운동 이끌어온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

 

“저는 심부름꾼일 뿐, 모두 하느님 계획입니다”

 

 

한국교회 두 번째 사제인 ‘하느님의 종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기적 예비 심사가 마무리됐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6월 15일 최양업 신부의 기적 심사 법정을 종료하고 이 기적이 최양업 신부의 전구로 발생한 것임을 확인했다. 최양업 신부 기적 심사는 한국교회 최초의 기적 심사였다. 

 

서류 운반자 시복시성특위 총무 류한영 신부는 6월 17일 시성성을 찾아 기적 심사 문서를 제출했고, 교황청 시성성은 한국교회에서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본심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김희중 대주교와 장봉훈 주교 등 주교회의 대표단은 6월 21일 교황청 시성성을 방문해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을 만나 면담했다. 

 

최양업 시복시성운동은 1976년 당시 진천본당 주임이던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가 시작했다. 이후 장 주교는 40여 년 동안 최양업 신부를 한국교회에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한국교회 최초의 증거자 시복이 임박한 가운데, 본지는 최양업 신부 현양운동을 시작하고 이끌어온 장봉훈 주교로부터 그동안의 활동과 소회, 앞으로의 계획을 들었다.

 

 

“너무나 기쁩니다. 가슴 벅찬 감격의 날입니다. 어서 빨리 이 기적이 시성성의 심사를 통해 명확하게 공인되고 최양업 신부의 시복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지난 6월 15일 최양업 신부 기적 예비 심사가 마무리되자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는 감격에 겨워 이렇게 말했다. 장 주교는 한국의 첫 사제이자 순교성인인 김대건 신부에 묻혀있던 한국의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를 한국교회사의 전면으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장 주교와 최양업 신부의 인연은 갓 사제품을 받은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 주교의 첫 소임지는 진천본당이었다. 그해 12월, 장 주교는 판공성사를 주기 위해 당시 진천본당 관할이던 배티공소를 방문했고, 공소 신자들과 식사를 하던 중 최종선 공소회장(베네딕토)으로부터 배티에 최양업 신부가 지냈던 집이 있고 성당을 겸해 기도했던 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근방의 무명 순교자 묘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신학교에서 교회사를 배웠는데, 최양업 신부는 처음 들었어요. 민망하고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분에 대해 알려고 한국교회사연구소와 가톨릭신문사 등을 방문해 관련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지요. 이 과정을 통해 최 신부님을 알게 됐어요.”

 

모은 자료를 통해 최양업 신부는 한국교회 최초의 신학생이었고, 두 번째 사제로 11년 6개월 동안 전국을 돌며 사목한 사목자라는 것을 확인했다. 장 주교는 이 사실을 당시 청주교구장이던 정진석 추기경에게 보고했고, 그해 11월 청주교구 대학생연합회가 배티를 도보순례하며 처음으로 공식 현양행사가 열렸다. 이후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녀 2명이 파견되어 배티 성역화 작업이 시작됐다. 이렇게 장 주교와 최양업 신부의 첫 인연이 시작됐다.

 

두 번째 인연은 1994년 장 주교가 배티성지 초대 담당 신부로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청주교구 사제회의에서 배티성지 전담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고 장 주교가 자원한 것이다. 이후 장 주교는 본격적으로 최양업 신부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역사에 기초해 최양업 신부를 제대로 알고, 초기 한국교회에서 최양업 신부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배티와의 관련성을 규명하기 위해 주력했다. 1996년부터 97년까지 이 작업의 일환으로 「최양업 신부의 서한」, 「스승과 동료 성직자들의 서한」, 「증언록과 교회사 자료」, 「기해·병오박해 순교자들의 행적」 등 최양업 신부의 전기 자료집 4권이 간행됐다. 

 

최양업 신부의 활동상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장 주교는 최양업 신부에게 완전히 매료됐다. 장 주교는 “최양업 신부는 찾아가는 사목자로, 18개의 편지가 번역되며 감동적인 그분의 삶과 신앙이 알려지게 됐다”면서 “나에게는 귀감이 되는 ‘형님’ 사제이자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알릴 가치가 있는 훌륭한 사제”라고 말했다. 

 

장 주교는 “기해박해(1839년)와 병오박해(1845년)로 완전히 초토화된 한국교회를 땀으로 다시 세우신 분이 최양업 신부였다”면서 “목자 없는 양 상태로 전국에 뿔뿔이 흩어진 교우들을 찾아다니며 와해된 교회를 되살려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사는 순교자 중심의 사관입니다. 하지만 순교자가 나오려면 신앙 없이는 안 되죠. 병인박해 당시 1만여 명이 순교를 했는데, 이들에게 신앙의 씨앗을 심은 분이 바로 최양업 신부입니다. 최양업 신부를 통해 한국천주교회 신앙의 꽃이 핀 것이지요.”

이어 장 주교는 1996년 7월 배티성지 담당신부로서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정진석 추기경에게 제출했다. 최양업 신부 라틴어 서한을 번역하기도 했던 정 추기경은 주교회의에 그해 가을 정기총회에서 최양업 신부 시복을 안건으로 제출했다. 이후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위한 노력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지난 40년 세월, 장 주교의 노력과 함께 최양업 신부는 이제 한국교회 전체에 잘 알려졌다. 심지어 교회 행정 시스템 명칭이 최양업 신부의 이름을 본 따 양업시스템으로 지어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장 주교는 자신이 한 일은 별로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과 관련해 내가 한 것은 별로 없어요. 하느님의 작은 심부름꾼일 뿐이었어요. 때가 되어 최양업 신부님을 드러내고 싶으신 하느님의 계획에 따랐을 뿐이죠.”

 

장 주교는 최양업 신부가 2021년이면 시복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장 주교는 “다들 어려울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여기까지 왔다”면서 “이것은 모두 다 하느님께서 마련해 놓고 하신 일”이라고 말했다.

 

이제 최양업 신부의 시복은 시성성으로 공이 넘어갔다. 장 주교는 최양업 신부의 조속한 시복을 위해 계속해서 신자들의 기도를 요청했다. 

 

장 주교는 “시성성의 본심사는 여간 엄중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한국에서 심사한 기적이 빠른 시일 내에 기적으로 판명이 나고 계속해서 관련 기적이 일어나 탄생 200주년인 2021년 시복될 수 있도록 신자들의 기도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가톨릭신문, 2016년 6월 26일, 최용택 기자, 사진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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