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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생태신학으로 성경 읽기: 창세기를 읽는 두 가지 관점, 원복(原福)인가 원죄(原罪)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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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4 ㅣ No.1543

[생태신학으로 성경 읽기] 창세기를 읽는 두 가지 관점, 원복(原福)인가 원죄(原罪)인가?

 

 

지난 7월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태신학자 매튜 폭스(Matthew Fox) 신부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본래 도미니코 수도회의 사제였으나 교황청 신앙교리성성의 제재를 받아 가톨릭교회를 떠나야 했고 1994년에 성공회 사제가 되었다. 신앙교리성성은 폭스 신부가 주장하는 창조 영성이 일원론 또는 범재신론(汎在神論)에 입각하여 창세기에 나타나는 원죄설을 부인하고, 하느님을 어머니로 부르는 여성 생태신학을 전개하면서 동성애를 자연 질서에 속한다고 간주한 점 등을 문제삼았다.

 

매튜 폭스 신부의 주요 저서인 《원복(Original Blessing)》은 죄와 구원을 강조하는 전통 신학에서 탈피하고 복과 창조의 영성을 바탕으로 신학과 전례, 영성을 뒤바꾸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신비주의 전통에서 발견하여 이를 재구성한 거대 담론에 속한다. 폭스 신부는 인류가 생태계의 위기에 처하게 된 종교적 배경과 관련된 것이 타락/속량으로 창조계를 대하는 신학의 오류라고 진단한다. 원죄에 의해 창조계가 타락했다고 보면서 자연을 대상화하고, 인간을 영과 육으로 갈라놓으면서 육을 죄악시하는 이분법적 세계관이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득세했다고 판단한다. 이에 따라 자연을 육과 관련하여 대상으로 다루는 과학이 영적 세계를 다루는 신학과 분리되면서 그리스도교는 내면의 세계로 축소되거나 환원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런 이분법적 왜곡을 치유할 길은 창조 중심의 영성을 회복하는 긍정의 길(via positiva)을 받아들이고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다. 폭스 신부는 세상에 대한 일원론적 관점에서 과학과 신학의 만남, 생태 위기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전 지구의 일치, 정의와 해방의 실천, 여권女權 회복 등을 강조한다. 비관, 냉소, 가학을 우주적 신뢰와 희망으로 극복하자고 제안한다. 그리하여 영 중심에서 몸과 영의 통일된 종교성 회복, 좌뇌(지성) 중심 교육에서 우뇌(감성) 중심 교육을 되살리기 위해 창조 영성을 공동으로 실현하자고 말한다.

 

폭스 신부는 일찍이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제기한 “인류는 왜 바이오 필리아(생명 사랑)보다 네크로 필리아(죽음 사랑)를 선택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근세 이후 서양 그리스도교가 감사와 황홀을 중시하는 긍정의 길을 버리고 죄와 단절과 내면의 고립 등 부정의 길(via negativa)을 걸어온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지식 중심에서 지혜의 발견으로, 율법에서 복음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절제와 금기에서 에로스를 해방하는 살아 있는 영성이 죽음을 선택하는 문화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폭스 신부는 창세기의 다바르(말씀)가 지닌 창조력과 역동성이 말씀의 신학에 갇혀 생명력을 상실했다고 보고, 현실을 창조하고 변화하는 무한한 힘으로 다바르를 다시 만나고 체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구약의 다바르가 요한 복음서에서 로고스로 번역되었기에, 그 서문을 “맨 처음에 창조력이 계셨다”고 하여 로고스를 창조력으로 해석한다.

 

폭스 신부는 구약성경 학자인 하크(Herbert Haag)의 말을 인용하며 “원죄 교리는 구약성경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고 창세 1-3장에는 특히 없으며 아담의 후손이 조상의 죄 때문에 이미 죄인이 되었다는 생각은 성경과 동떨어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교 역사에 원죄를 도입한 아우구스티노가 원죄는 성(性)을 통해 전달된다고 생각했기에 여성과 성을 폄하하는 시각이 고정되었다고 말한다. 원죄 교리는 결국 자기와 세상을 부정하게 바라보는 자학성, 불안, 부자유를 유발하고 사회적 소외감을 강화한다고 본다. 예컨대 동성애자는 동성애를, 여자는 여성을, 백인 사회의 흑인은 검은 피부를 원죄로 보도록 조장한다는 것이다. 창조 중심의 신비가들은 원복으로 시작하여 삶의 찬미와 복을 강조한다. 원죄 교리를 강조하는 사람은 타락과 구속의 틀에서 세상을 나쁘게 본다는 것이다. 찬미와 황홀이 하느님 체험의 중심에 있는데, 원죄 교리는 그와 반대로 자신에 대한 자긍심의 결여와 세상 부정의 심리를 유발한다고 비판한다.

 

폭스 신부가 강조하는 창조 영성은 창조의 원복, 곧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는 원초적 긍정과 강복에 근거한다. 아브라함 J. 헤셀(Abraham Joshua Heschel)과 함께 “있다는 것인즉 복이다. 산다는 것인즉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환경을 파괴하고 인간을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물질만능주의와 생태 위기의 시대에, 창조 영성의 회복은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폭스 신부는 원복과 원죄를 대립시키는 오류를 범했다. 둘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현실을 설명하는 두 가지 보완적 방식이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동산의 과실나무 열매를 먹는 복과 특권이 주어졌다. 선악과에 대한 금령은 피조물로서 그들의 한계를 그어 준다. 복이 지속되기 위한 조건은 하느님과의 관계이고 그 관계는 말씀으로 주어진다. 말씀은 창조력이지만 동시에 제한을 통해 피어나는 창조력이다. 말씀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면 말씀은 길 아닌 것과 진리가 아닌 것의 구별을 통해 생명과 죽음을 갈라놓는 기준이 된다(신명 30,15-16 참조). 인간이 피조물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순간, 말씀은 욕망에 한계를 그어 주는 파수꾼으로 작용한다.

 

죄(sin)와 탓(guilt)은 구별해야 한다. 원죄는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상황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자기 욕망의 법칙에 따르고자 하는 죄의 성향이 바로 교회가 가르치는 원죄다. 그러나 탓은 개인의 행동에서 비롯한다. 인간은 죄의 성향에서 아담과 유사할 뿐 아담의 탓을 나누지 않는다.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다는 것(로마 5,12 참조)은 물리적 죽음이 들어섰다기보다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적대감이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아담이 죄를 지으면서 하느님과의 신뢰가 깨진다. 삶의 원초적 복이 망각되어 아담에게 삶은 고통으로 느껴지고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만다. 자식을 낳고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짓는 일이 본시 복이었으나 이제 고통으로 다가온 것이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는 말씀은, 죽음이 자연의 생태 순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으로 더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삶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한 고통과 두려움의 대상으로 체험된다는 의미이다. 본래 원초적 복 안에서 세상은 복과 기쁨의 대상이었으나 인간이 탐욕을 부려 복이 저주가 되고 기쁨이 고통으로 바뀌었다. 원복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말씀에 대한 순종이 필요하다. 불순종은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처럼 원복을 지키고 성장하는 말씀의 창조력을 고사시킬 수 있다(마르 4,7 참조).

 

폭스 신부가 한국을 떠나는 날, 나는 그와 점심식사를 하고 공항까지 배웅했다. 그가 나와 동문이라는 연대 의식이 함께하는 시간을 연장케 한 것 같다. 채식주의자인 폭스 신부는 매우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로 보였다. 그는 1990년대에 춤과 노래와 명상으로 봉헌하는 우주적 미사(Cosmic Mass)를 창시했다. 그는 우주론과 창조 영성과 춤과 노래와 음악과 미술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지는 우주적 찬미의 장이 바로 우주적 미사라고 설명했다. 왜 원죄를 부인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폭스 신부는 죄의 현실은 인정하지만 원복을 강조함으로써 잃어버린 창조 영성을 회복하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다. 이제 그는 가톨릭 사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독신의 우주적 사제로 그렇게 창조 영성을 선포하며 살고 있다.

 

* 백운철 신부는 1985년에 사제품을 받고 파리 가톨릭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며, 신학대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10월호(통권 463호), 백운철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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