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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윤리] 가톨릭 정신으로 보는 공직자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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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1-22 ㅣ No.901

[세상살이 복음살이] 가톨릭 정신으로 보는 공직자 윤리

“신자로서 사명감 갖고 바른 사회 추구해야”


청렴(淸廉).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 없음.

공직자가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이다. 그러나 공직 현실은 다르다.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이 5일 “18대 국회에서 치러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대표후보 중 한 명이 대의원인 자신에게 돈 봉투를 준 적이 있다. 당시 쇼핑백 크기의 가방에는 (다른)노란색 봉투가 잔뜩 끼어 있었다”고 폭로하면서 2012년 정초가 ‘돈봉투 사건’ 파문으로 물들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는 개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라는 대중의 분노는 “그럼 그렇지”라는 체념으로 변해가고 있다.

공직 사회에 있어 ‘청렴’하기란 꿈같은 이야기일까. 현 공직사회 비리에 대해 짚어보고, 청렴 문화 확산을 위한 교회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봤다.
 

공직사회 ‘뇌물 문화’ 어제와 오늘

공직사회에 만연해 있는 ‘뇌물 문화’는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각종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는 어렵지 않게 ‘공직자 비리 뉴스’를 접할 수 있다.

지난 2011년 한 해만 뒤돌아봐도 정치 사회 경제 전 분야에 공직자들의 비리가 연루돼 있다. 2011년을 강타했던 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해서도 사정의 중추기관인 감사원 감사위원이 사법처리됐고, 금융감독 및 정책 당국 요직을 두루 거친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장과 법제처장도 뇌물수수 의혹을 받았다. 2011년 마지막도 SLS그룹 회장 측으로부터 1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사건으로 마무리됐다.

지방직 공무원의 비리 행태 또한 마찬가지다. 경기도 용인시 소속 한 공무원은 2011년 당시 시청 내에서 건설업자로부터 현금 500만 원을 받다 국무총리실 감찰관들에게 현장에서 적발되기도 했다.

중앙부처 공무원 비리 징계 현황 자료(2008~2010 집계)를 보면 공직사회 부정부패가 얼마나 심각한 지 알 수 있다. 2008년 1,741명이던 비리 공무원 징계자는 2009년 3,155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고, 2010년에는 2,858명이 비리를 저질러 징계를 받았다.

중앙 정부기관 45곳 중 직원 비리가 적발되지 않은 기관은 4곳에 그쳤고, 비리를 저질러 파면·정직·견책 등 징계를 받은 공무원은 무려 7,754명에 달했다. 2008~2010년 매일 7명의 공무원이 비리 행위로 처벌을 받은 셈이다.
 

뿌리 깊은 병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뇌물 수수와 향응이 공직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뿌리 깊은 병폐의 원인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박상돈 전 국회의원(토마스아퀴나스·자유선진당·전 국회 일치를 위한 정치포럼 대표)은 공직사회 비리 문화에 대해 “‘작은 뇌물 큰 이득’의 경제 원리가 공직사회에서도 변함없이 적용되는 것 같다”면서 “금전만능주의 세상에서는 공허한 소리로 들릴 지 모르지만 청빈낙도(淸貧樂道)의 옛 선비정신이 사라졌기 때문에 생긴 비극이라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또 “국민을 위한 봉사라는 정치인들의 사명감 부족 또한 그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권길중 회장(바오로·참스승다솜운동)은 “여러 원인이 뒤엉킨 실타래처럼 서로 고리를 이루고 있다”며 “적합한 봉사의 의무를 생각하지 않고 영화만을 추구하는 지도자들의 가치관과 경제·권력·명예가 유착된 상황에서 돈이면 모든 것을 갖게 되는 황금만능주의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정희 교수(베드로·한국외대 정치학·사회정의시민행동 공동대표)는 ‘압축 경제 성장과 압축 민주화’를 뇌물 문화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 교수는 “압축 경제 성장과 민주화 과정에서 올바른 공직사회 모델이 확립되지 못했고 소위 정치·행정 엘리트들 사이에서도 공직에 대한 올바른 의식이 정립이 안 돼 있는 상황”이라면서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뇌물이 오가고 돈으로 모든 가치가 환산되는 사회 풍토 전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나는 공직자다 - 공직자 기본 덕목과 교회의 가르침

우리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을 통해 “정치 공동체는 공동선을 위하여 존재하고 공동선 안에서 완전한 자기 정당화의 의미를 얻고, 공동선에서 본래의 고유한 자기 권리를 이끌어낸다”고 정의한다. 또 “권력의 행사를 공동선이 아니라 어떤 파당이나 통치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왜곡하는 온갖 정치 형태”를 배척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직자의 부정부패는 그 피해가 무차별적이고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엄격하게 다뤄져야 한다. 공직자의 ‘청렴’이 반드시 요구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정희 교수는 공직자가 갖춰야 할 기본 덕목으로 ‘봉사’와 ‘희생정신’ 그리고 ‘투명성’을 꼽았다. 이 교수는 “공직사회 청렴도가 선진국가 척도와도 직결된다”면서 “청렴성이야말로 공직자들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교수는 “청렴으로 대표되는 도덕성뿐만 아니라, 자기 업무에 대한 전문성을 갖춰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도 공직자들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덕목”이라고 덧붙였다.

박상돈 전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은 국가의사를 결정하는 권한이 부여된 헌법기관인 만큼 투철한 국가관과 성실성, 청렴성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직자 중에서도 국민의 의사를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의 청렴성이 더욱 요구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보편적 형제애’도 공직자가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이다. 여기서 말하는 ‘보편적 형제애’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랑’을 의미한다. 권길중 회장은 “국회의원들이 각종 특혜를 누릴 수 있는 권좌로서의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민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국민의 봉사자로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2011년도 새내기 공무원 청렴 교육 모습. 공직자가 갖춰야 할 기본 덕목으로 꼽히는 ‘청렴함’을 따로 특별히 교육하는 이 상황이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공무원 비리 문제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교회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에서 “정치 공동체와 교회는 그 고유 영역에서 서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라고 규정하지만 동시에 “양자가 장소와 시대의 환경을 고려하며 서로 건실한 협력을 더 잘하면 할수록 그 봉사는 더 효과적으로 모든 사람의 행복에 이바지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들의 구원이 요구할 때에는 정치 질서에 관한 일에 대하여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정당하다. 이때에 교회는 오로지 복음에 일치하고 다양한 시대와 환경에 따라 모든 사람의 행복에 부합하는 모든 방법을 사용한다”고 덧붙인다.

이정희 교수는 “정교분리의 원칙이 마치 교회가 사회 문제에 대해 무관심해도 된다는 것처럼 잘못 인식되기도 하는데, 개인적 영성 심화나 기도가 가톨릭 교회가 추구하는 끝이 돼서는 안 된다”면서 “교회와 신자가 여러 사회적 문제에 대해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교수는 공직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비리와 뇌물 문화가 만연한 것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될 때까지 우리 가톨릭교회와 신자들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가톨릭 신자인 공직자를 비롯한 우리 신자 모두가 그동안의 비리에 대해 ‘방관’한 결과가 아니겠냐는 뼈아픈 지적이다.

권길중 회장 역시 “가톨릭 신자 비율이 전체 국민의 12%에 이르고 있고, 고위 공직자 가톨릭 신자 비율은 더욱 높은 것으로 안다”면서 “이 신앙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다한다면 공직사회가 바로 서지 않겠냐”고 가톨릭 신자 공직자들에게 기대를 걸었다.
 

신자의 ‘자격’

공직자들의 부정부패에 거듭 실망했다고 해서 ‘정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무력감이 덮쳐올수록 공정사회 건설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가톨릭 신자의 ‘자격’이다.

이정희 교수는 “희망은 국민에게 있다”고 말한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미다. 이 교수는 “청렴하고 능력있는 공직자를 선출하는 것을 통해 국민의 힘을 보여줘야 할 때”라면서 ‘선거’를 통한 국민의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회정의시민행동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는 이정희 교수는 가톨릭 사회 교리를 강조하며, “복음 정신에 입각해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힘을 모아 실천에 옮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길중 회장은 ‘법제와 정치행위 전반에 포용과 사랑의 보편적 가치를 확산시키기 위해서 평신도 영성단체 육성, 사회교리교육 강화, 정의 확립을 위한 내부고발자에 대한 교회차원의 보호’ 등 교회의 역할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사랑의 정치학’도 해법으로 제시될 수 있다. 포콜라레 운동의 창설자 끼아라 루빅에 의하여 1996년 시작된 ‘일치를 위한 정치운동’에서는 정치를 ‘사랑 중의 사랑’이라고 정의한다. 정치를 통해 사회 통합과 갈등 해소를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정치가 ‘다른 모든 사랑들을 가능하게 해 주는 사랑’이라는 뜻이다.

박상돈 전 의원은 “‘국회 일치를 위한 정치 포럼’이 국회 내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3%의 소금기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우리나라 가톨릭이 충분히 그러한 역할을 해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톨릭 신자 공직자들이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업무를 이행하면서 솔선해 모범을 보일 수 있도록, 교회와 신자들이 격려해주시고 제안자 및 감시자의 역할을 해 주시길 바랍니다.”

[가톨릭신문, 2012년 1월 22일, 임양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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