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강론자료

2016-0211.....재의 수요일 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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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2-11 ㅣ No.1982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신명기 30,15-20            루카 9,22-25

2016. 2. 11.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의 뜻을 대하는 자세

사람이 드러내는 삶의 모습에서 자신감에 관련된 것이 있습니다. 자신감이라는 낱말을 쓰면, 아무래도 봤다거나 가졌다거나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에 더 크게 드러날 것입니다. 헌데 그와 반대되는 경우라면, 어떻게 될까요? 다시 말해서 아직 체험한 일도 없고, 그 존재마저도 사람의 이성(理性)으로는 있다는 확신마저도 닿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는 어떻겠느냐는 것입니다.


참으로 진퇴양난입니다. 이성과 경험을 앞세운다고 하는 사람에게, 감각에 해당되지도 않고 몇몇 특정한 대상을 통해서만 자신의 뜻을 드러낸다고 하는 대상이 드러내는 의도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길게 말합니다만, 그 미지(未知)의 대상은 하느님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공평하다고 하는데, 하느님은 왜 그 특정한 대상들을 통해서만 당신의 뜻을 밝히시느냐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습니다. 질문은 자유입니다만,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그렇게 이루어지는 일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반응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의 선택은 그 중에서 좋은 것으로 집중되기 쉽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내 귀에 들려오는 그 좋은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나만 가지려고 할 때, 나는 무슨 행동을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누가 대답해주겠습니까? 누가 내 인격(人格)도 존중해주면서 내가 아직 모른다고 하는 대상의 뜻도 실천할 방법을 알려주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다보면, 사람이 선택할 수 있고 각자의 삶에서 좋은 결실을 만들게 해줄 수 있는 요소를 찾는 일은 아주 힘들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야 해석은 달라도 누구나 다 안다고 할 테니 별로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만, 사람의 감각에 연결되지 않는 대상, 특정한 대상에게만 자신의 뜻을 밝힌다고 하는 이 신앙의 대상은 우리가 어떻게 대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계명과 규정과 법규를 지키면 살고 번성하게 될 것이고,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어떤 실천을 하는 사람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느님에게 인간이 살고 죽는다는 인간의 문제는 하느님과 연결된 아주 간단한 선택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인데, 사람은 그 자리에서 하느님을 밀어내니 대상도 사라지고 아주 쉬운 문제를 먼 곳을 에둘러서 힘들게 해석하려고 하는 존재이고, 그러다가 그마저도 포기합니다. 마치도 하느님을 밀어내고 난 다음, 인간이 그 하느님의 자리에 앉기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을 뒤따르는 아주 쉬운 길은 그분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그 십자가와 친숙하게 지내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지만, 사람은 이 일을 얼마나 어렵고 힘들고 그래서 할 수 없는 일로 생각하겠습니까?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이 진리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는 사람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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