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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법과 양심: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법과 부정의 - 우리 사회의 잘못된 판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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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2-18 ㅣ No.1220

[경향 돋보기 - 법에 따른 판결인가, 양심에 따른 판단인가?]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법과 부정의 - 우리 사회의 잘못된 판결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져주고 있다. 유권자의 일정한 지지를 받아왔던 통합진보당은 선거가 아닌 사법적 판단으로 졸지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운명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앞으로는 통합진보당의 강령이나 목적과 같은 목적을 추구하는 정당의 설립도 금지된다는 점에서, 정당해산 결정은 우리 사회에서 용인되는 사상이나 가치의 범주를 헌법재판소가 일방적으로 구획 짓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법적 판단을 통해 민주주의의 다원성을 재단해 버린 것이다.

무엇보다 헌법의 기본정신은 민주주의와 정치이념의 다양성을 최대한 보장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헌법학에서는 정당해산 제도는 정당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할 매우 급하고도 명백한 위험을 일으키는 때에만 오직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정당해산 결정이 남용되는 순간 민주주의 정치의 역동성을 파괴하는 부작용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과연 이와 같은 헌법적 원칙에 충실한 것이었을까.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어긋나는가 여부를 판단하려면, 먼저 그 정당의 강령과 정강 · 정책, 실제 활동을 놓고 그것이 ‘현재 시점에서’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할 ‘매우 급하고도 명백한 위험성’이 인정되는지를 엄격한 증거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의 강령과 정강 · 정책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

사실 통합진보당의 강령이나 정강 · 정책은 정부 전복이나 헌법 파괴 등의 폭력적 행동을 주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활동 궤적을 살펴보아도 폭력적 헌법파괴의 위험성은 전혀 인정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가 위험하다고, 그래서 위헌이라고 판단한 유일한 논거는 “통합진보당의 ‘주도세력’이 정치이념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의 ‘정치이념’을 위험하다고 낙인찍고, 통합진보당의 수많은 당원과 지지 시민들에 대하여 아무런 법적 근거도, 아무런 증거도 없이, ‘위험한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는 올가미를 씌워버린 것이 헌법재판소 결정의 전부이다.

주한미군 철수라든가 국가보안법 폐지 등은 통합진보당의 주요 정책인데, 그러한 주장과 정책활동 자체가 민주적 기본질서에 어긋나는 것이 아님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헌법재판소의 발표로는, 그러한 주장을 하는 ‘통합진보당 사람들’이 내심으로 사회주의 이념을 추구하고 있어 위험하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반공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만든 사법판단 - 민주주의적 역동성을 부정하다

이렇게 해서 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와 사상 · 가치의 다원성을 부정하면서 지난 70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편협한 반공주의를 헌법 최고의 가치 반열에 올려놓는다. 심각한 헌법 왜곡이다.

민주주의 파괴는 두 가지 차원에 걸쳐 나타난다. 하나는, 분단체제의 특수성을 내세워 좌파 정치이념을 ‘우리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는, 위험한 사상’이라고 단죄한 것이다. 둘째는, 지배질서에 대항하여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모든 비폭력적 주장과 활동에 대하여 싸잡아서 ‘위험한 사상을 추구하는 자들의 활동이라서 위험하다.’는 식의 근거 없는 낙인을 찍는 것이다. 민주적 공론과 사회변혁의 역동성은 사라진다. 지배적 정치경제 질서의 모순과 부정의에 항거하는 민중의 저항은 불온하다는 낙인과 함께 강도 높은 탄압을 받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정치사상의 다양성을 승인하면서 시민들의 활발한 민주적 공론을 통해 사회의 변혁과 발전을 보장하는 것이건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우리 사회는 다양한 정치사상의 공존이라는 민주주의의 근본마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해산 결정은 최근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종북 매카시즘에 편승하면서 그것에 사법적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 단언컨대, 그 효과는 민주주의적 가치인 다원성을 부정하는 파시즘 국가의 도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배질서의 부정의에 맞서서 더 정의로운 세상을 실현하려는 시민사회의 역동적 실천의 잠재력에 대하여 ‘법의 이름으로’ 재갈을 물리는 것이다. 너무나도 불행한 이류사회의 자화상이다.


조작과 왜곡으로 점철된 오욕의 판결들

이쯤이면 아마 많은 이들이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한 시국사건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 헌법재판소의 해산 결정에 내재한 법 논증은 과거 국가보안법에 근거한 조작사건들과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지배권력은 비민주적 폭압 정치에 맞서서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시민사회의 실천들을 억압하고자 그 정치적 필요에 따라 수없이 많은 ‘조작사건’들을 만들어 냈으며 사법부는 ‘눈 딱 감고 유죄판결’로 지배권력에 결탁해 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터이다. 몇 가지 사례를 상기해 보자.

‘사법살인’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1974년 4월 25일 도예종 등 23명을 구속하면서 시작되었다. 1년여가 지난 1975년 4월 9일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내려졌고, 불과 18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8명 피고인에 대하여 사형이 집행되었다.

2001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수사과정에서 물고문, 전기고문 등 온갖 가혹행위가 자행되었으며 허위자백으로 조작된 사건임이 밝혀졌다.

2005년에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인혁당과 민청학련 사건이 당시 최고 권력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정권유지의 필요 때문에 수사방향을 미리 결정하여 조작한 사건이라고 자기 고백을 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2007년에야 비로소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이 선고되었다.

1959년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죄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에 처한 진보당 조봉암 사건은 2011년에 와서야 대법원의 재심판결을 통해 무죄가 선고되었다.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부림사건은 33년만인 2014년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통해 조작의 진실이 드러났다.

1970-80년대에 언론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던 수많은 간첩조작사건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간첩조작사건의 희생자는 대부분 납북어부, 월북자가족, 재일교포들이었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그들은 언제든지 간첩으로 ‘차출’되고 ‘조작’되었다.

이러한 조작사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종의 공식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어느날 갑자기 수사관들이 들이닥쳐 연행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시에는 체포영장제도가 없던터라, 대개 임의동행이라는 탈을 쓰고 실제로는 강제연행과 불법구금이 관행처럼 자행되었다. 당사자는 어디로 끌려갔는지 알지 못했으며, 짧게는 십여 일에서 길게는 백일이 넘는 동안 이들은 가족과의 연락조차 끊긴 채 골방에서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 허위자백을 강요받았다.

불법구금 사실을 은폐하려고 수사관들은 피의자 신문조서나 진술서 등의 기재날짜를 조작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간첩조작사건에서 증거가 있을 리 만무하다. 불법구금은 고문 등 가혹행위와 자백강요로 이어지는 사건조작의 밑거름이었다.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강요된 허위자백은 간첩혐의의 유력한 증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법구금은 법형식상으로는 임의동행이나 보호실 유치라는 임의수사의 외관을 쓰고 관행처럼 반복되었으며, 검찰과 법원은 이러한 불법구금과 고문 등의 인권유린 행위에 대하여 철저하게 눈감아왔다.

간첩조작사건에 관한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로는, 검사는 안기부(현재의 국가정보원)의 불법수사를 조사하기는커녕, 오히려 간첩혐의자들이 안기부에서 자백한 내용을 부인하면 “다시 안기부에 보내 조사받도록 하겠다.”는 식의 협박을 하기 일쑤였고, 또 실제로 혐의를 부인하는 피의자를 다시 안기부에 보내기도 하였다.

법원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간첩조작사건 재판에서 드러나듯이, 피고인이 고문이나 장기간의 불법구금을 호소해도 법원은 “피고인의 주장 외에 증거가 없다.”고 하거나 “일시적으로 구속영장 없이 조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자백의 임의성이나 신빙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식의 논리로 폭력적 사건조작의 진실을 외면해 버렸다.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30년에서 많게는 50년의 세월이 걸렸다.


청산하지 못한 정치 사법

지배권력의 정치적 필요에 야합한 불공정한 사법 판결들, 그리고 그러한 정치적인 판결을 만들어내는 사법 시스템을 일컬어 흔히 ‘정치 사법’이라 부른다. 사법부는 지배권력이 사회적 부정의에 저항하는 민중적 실천운동을 탄압하고자 조작된 시국사건에 대해 어김없이 유죄판결을 선고함으로써 정치권력과 야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겉으로는 법치주의의 외관을 띠고 있으나, 실제는 안기부나 경찰, 검찰의 고문과 가혹행위를 철저하게 묵인하고 여기에다 반공주의의 왜곡된 법 해석을 덧붙이면서 지배적 정치세력의 정치적 입맛에 맞춘 판결을 찍어냈다.

과거의 수많은 조작사건 판결들은 고문과 불법구금, 허위자백 강요와 증거조작으로 점철되어 있었기에 그 자체가 ‘법의 이름으로 자행된 국가폭력’에 다름 아니다. 정치권력의 안위를 위하여 지배적 권력집단이 조작사건들을 만들어냈다면, 사법부는 그 반인권적 폭력성에 눈감은 채로 조작사건들에 ‘사법 판결’의 권위를 덧붙여주었다.

1970-1980년대에 자행된 각종 조작사건 대부분이 뒤늦게나마 법원의 재심을 통하여 그 진실이 밝혀진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국가폭력의 ‘오욕의 역사’를 제대로 청산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서 보듯이, 사법부는 여전히 지배질서에 대한 민중의 도전을 억압하려는 정치권력의 요구에 반공주의라는 왜곡된 법 논리를 동원하여 화답하고 있다.

과거의 조작사건 판결들이 국가권력의 적나라한 폭력에 따른 인권침해를 사법부가 법의 이름으로 후원한 것이었다면, 현재 우리가 보는 정치 사법의 모습은 왜곡되고 편협한 법 논리를 동원하여 민주주의와 인권을 침탈하는 정의롭지 못한 제도적 폭력을 사법적 권위로써 승인해준다는 점에 그 핵심이 있는 것 같다.


‘(사)법의 폭력’을 넘어서려면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까? 중요한 개혁적 실천의 방향으로 두 가지를 짤막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사법부의 민주화를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사법부는 철저한 피라미드식의 위계적 관료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승진과 출세의 엘리트 코스가 공공연하게 존재하며 대법원은 인사권을 쥐고 출세 지향 판사들을 길들인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엘리트 코스를 밟은 판사 출신들의 전유물이 되어있다.

이런 관료적 위계질서가 바로 정치 사법이 성장하는 토양이다. 그러므로 사법부의 위계적 관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할 때 비로소 법관의 양심에 따른 독립적인 판결을 기대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엘리트 판사 출신 일색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인적 구성을 개혁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만큼 다양한 영역에서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 실현에 이바지해 온 이들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구성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시민들이 나서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정치공간을 활성화하는 저항의 실천을 전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사회에서 정치적 지배세력과 자본의 양대 권력이 법조집단과 동맹을 형성함으로써 부정의한 지배질서를 유지하고자 국가폭력을 일상화하는 수단으로 ‘사법’을 동원하는 체제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동하는 법 권력은 인권보장에 이바지하기는커녕, 노동자, 철거민 등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 보장을 근원에서부터 해체해 버리며, 사회적 저항운동을 탄압하고자 사상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정치적 기본권을 후퇴시키는 암울한 결과를 낳고 있다.

지배질서가 정의롭지 못하다면 그것에 저항하는 실천은 본래 주권자인 국민의 권리이자, 사회를 발전할 수 있게 하는 민주주의적 실천이다. 이것은 시민 주체들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힘으로 우리 스스로 삶의 의제를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 정치공간을 확장하는 실천이어야 한다. 사상의 자유 보장, 노동권과 생존권의 보장, 복지의 확대,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장 등이 주요 의제가 되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의 부당함을 질타하면서 역사의 심판을 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역사의 심판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주권자인 국민들이 정치권력의 폭압과 그것에 야합한 정치 사법의 폭력에 맞서서 민주주의를 위한 끊임없는 도전과 저항을 전개할 때에만 달성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신 ‘저항의 정신’은 이렇게 발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이호중 사도 요한 - 서울대학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 상임이사로 인권옹호 활동에 노력하고 있으며,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사법개혁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 유가족 추천 비상임위원으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활동에 함께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2월호, 이호중 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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