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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유요한 · 이루갈다 동정부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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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6-02 ㅣ No.1112

유요한 · 이루갈다 동정부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얼마전 유명 개그우먼이 남편의 폭력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 사실을 신문과 방송 뉴스가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각종 매스컴에서도 부부폭력에 대해 참으로 다양한 실태제시와 문제점들을 다루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접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유명한 연예인도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았을 뿐 실제로 새로운 대안이나 방법제시는 하지 못하였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점점 사라졌다.

나는 얼마전부터 우리나라의 순교성인들을 주제로 순교자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기획 · 제작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없는 103위 성인 모두가 순교자인 것도 특이 하지만 그분들의 삶을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너무나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아래 기존 교회안에서 출판되던 전기나 논문자료들이 아닌 좀 더 생활에 친숙한 애니메이션의 형식으로 제작해보리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우리가 성인들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렇게 사실 수밖에 없었던 분들이 아니라 나도 피 흘리는 순교는 할 수 없지만 평범한 일상생활 안에서도 순교자들처럼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참 신앙인이 될 수 있는 결심과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했다.


숭고한 삶 오늘의 표양

그런데 처음에 알리고 싶었던 내용은 103위 순교성인이 아닌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의 숭고한 삶이었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신문의 한 면을 장식하고 있는 점점 혼탁해져 가고 있는 성의 개념, 매년 50%씩 증가한다는 가정폭력의 현실, 하루에 400쌍의 부부가 이혼한다는 현실들. 이러한 점에서 나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시대에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미 이 시대를 살았던 그리스도의 부부관과 종교인으로서 자아존립에 있어서 참으로 현실적인 표양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일찌기 달레가 인용한 다블뤼 비망록에서처럼 ‘한국 천주교회 사상 진주라 일컬어질 만한 순교자들’이라고 표현한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의 삶을 소개하고자 하였다.

1784년은 이승훈이 최초로 북경에서 영세받고 돌아와서 이 땅에 하느님의 복음이 처음으로 선포되고 한국교회사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세계 다른 나라의 교회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신부나 선교사 한 분 없이 독자적으로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1794년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최초로 조선교구에 파견되었다.

이루갈다는 실학의 대가들로 일족을 이룬 이름 높은 양반 가문 출신으로 그녀의 집안이 천주교에 입교한 것은 아버지 때부터였다. 이순이는 유아 때 루갈다라는 세례명으로 아버지와 함께 영세하였다. 루갈다가 12살 되던 해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홀어머니(권철신과 권일신의 누님)에게 철저한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녀가 14세 되던 1795년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한국의 첫 선교사로 입국한 후 그녀의 신심과 교리 지식의 정도는 성사받기에 충분하다고 신부에게 인정받았고 비로소 첫 영성체를 하게 되었다.


첫 영성체에 감격

루갈다의 첫 영성체 감격은 성체를 받아 모신 사람은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믿고 바라고 사랑하고 공경하며 자기의 영혼과 육신을 예수께 드려야 한다는 교리의 실천을 촉구하였다.

그녀는 영성체의 효과를 거룩하게 보존하고 그리스도만을 온전히 사랑하기 위하여 성모 마리아처럼 자신의 동정을 바치며 양반으로 누릴 수 있는 영화와 향략을 포기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당시 유교사회의 풍습으로는 지체 높은 양반집의 규수가 결혼하지 않고 동정생활을 한다는 것이 바로 죄악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결심은 극복하기 어려운 난관이 되었다.

루갈다의 뜻이 주문모 신부에게 전해지자 주 신부는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기 위하여 동정생활을 결심하고 있는 유중철이 떠올랐다. 유중철은 전라도 전주에서 태어난 중인계급의 부유한 선비집의 청년으로 호남지방 교회 창설의 초석이며 호남의 사도로 불리워질 만큼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던 아버지 유항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믿음의 씨앗이 자라났고 신앙심이 아주 깊었다.

유중철은 주 신부가 전주지방 초남이 전교여행시 주 신부께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하고 한평생 동정을 지키겠다는 말씀을 드렸었다.


한 평생 동정 서약

주 신부는 이렇듯 루갈다와 요한이 동정을 지키고 싶다는 열망에 불탔지만 그 당시 사회가 독신생활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선의 방법으로 결혼 형식을 취하면서 서로 남매같이 살도록 주선해 주셨다.

이순이 집안문중에서 유중철의 집안이 지체가 낮다는 이유로 혼인을 반대하고 나섰고, 유중철이 아무리 동정생활을 원한다 하더라도 가족 중심주의의 유교사회에서 가통을 이어야 할 장남이 자녀를 포기하는 동정생활을 하겠다는 패가망신의 엄청난 사실을 감수해야할 문제가 있었지만, 오직 신앙으로 결단을 내린 이순이의 어머니와 유중철의 아버지 유항검의 결정으로 그들이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처럼 동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고 1797년 16세의 나이로 혼배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효성을 다하여 시부모를 섬겼고 형제간의 우애는 물론 집안의 많은 노복들에게도 애덕을 베풀었다. 유중철과 이순이는 십자고상 앞에서 한 마음 한 뜻을 이루어 끝까지 동정을 지키다가 한날 함께 하느님을 위하여 치명하기로 맹세하였다.

그러나 결심은 굳고 소망은 간절했지만 육신의 본능은 연약했다. 그래서 그들은 가슴을 찢는 유혹을 수없이 견디어 내어야 했고 4년 동안 함께 살면서 동정서약을 파기할 뻔한 위기를 10차례나 견디어내야만 하였다.


육욕과의 치열한 싸움

항간의 보통 부부였다면 신비로움과 꿈만 같은 신혼생활이었으련만, 이들 부부는 일생을 동정으로 지내려는 굳은 결심으로 인해 서로의 존재를 곁에 두고 한방에 기거하면서도 사랑의 표현과 동작을 참아야했던 무시무시한 육욕과의 싸움을 루갈다가 옥중에서 어머니에게 남긴 편지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어머님, 소녀가 시댁에 들어오는 날, 평생에 쌓였던 일만 근심이 완연히 풀린 것은 일찍이 마음에 맺고 결정하였던 원을 한평생에 어떻게 보존하여 지킬까 염려된바 말할 수 없어서 근심걱정이 심중에 굽이굽이 맺혀 쌓였더니, 우리 내외 처음 만나던 날에 수절하기로 맹세하니, 평생 근심이 일시에 풀려 4년 동안을 형매같이 살매, 그 사이에 혹독한 유감이 몇 번 있어 대개 열 번이나 거의 무너질 뻔하였으나, 공경하올 성혈 공로로 마귀의 계교를 물리쳤나이다.”(피 묻은 쌍백합)

편지로 미루어 끊임없는 기도와 극기로서 하느님보다 못한 것에는 절대로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고 오로지 하느님만을 위하여 하느님께로 향하는 맹목적인 사랑으로, 마치 사격수가 과녁에 시선을 고정하듯이, 혹독한 유감이 일어나는 순간에도, 옥중의 온갖 고문 중에도, 휘광이의 칼 춤 아래서도 그녀의 영혼의 눈은 과녁을 벗어나질 않았다. 그들의 과녁은 천상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1800년 정조가 사망한 뒤 1801년에 들어서면서 조정에서는 천주교 금서교서를 공포하고 천주교를 뿌리채 뽑으라는 엄명이 내리면서 이 교서에 따라 초창기 천주교회 지도자들과 주문모 신부 등 전국에서 300여명의 교우들이 순교하기에 이르렀다.

이 박해가 지방으로 확대되면서 전라도 지방의 박해는 극심했고, 유요한의 아버지 유항검과 많은 교우들이 먼저 순교하게 되었고, 유요한도 8개월 동안 옥중 생활을 순교로 마치고, 한달 보름 뒤 이루갈다의 꽃다운 청춘도 칼 아래 이슬이 되면서 유요한의 일가가 순교와 함께 마감된다.

도대체 신앙이 무엇이길래 그 어린 나이에 동정부부로서 고행의 길도 모자라 천주를 모른다는 말 한 마디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기회와 편안한 미래가 보장될 수 있었건만 순교하기만을 학수고대할 수 있었을까?


꽃다운 청춘 순교로 마감

옥중에서 요한이 루갈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구절이다. “누이 보아라. 내가 너를 권면하고 위로하노니 천당에서 서로 만나자.”(피 묻은 쌍백합) 죽는 찰나까지도 누이로 불렀던 그 심정과 흔들림 없는 그 숭고한 사랑의 마음…….

이렇듯 초자연적이고 영웅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루갈다 혼자만의 의향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요한의 성덕이 루갈다에 버금갔기에 하느님 안에서 서로의 협력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성서에서 부부를 서로 돕는 배필(창세기 2,18)로, 하느님이 짝지어 주신 배필(마태오 19,6)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결혼생활이란 유리그릇과 같아서 잘 닦고 가꾸면 빛이 나지만 잘못 다루면 깨지기가 쉽다.

‘사람과 사회’라는 잡지의 여론조사를 보면 부부행복의 첫째 조건으로 서로간의 신뢰감(29.9%)이라는 대답이 높게 나와 요즘 관심이 많은 경제조건(1.7%), 성생활(3.0%), 가사협조(1.4%) 등은 그리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현대부부들의 관심사는 상호신뢰할 수 있는 의사소통(20.0%), 상호존중(20.0%)을 중요시 여기는 것으로 조사돼 서로가 이해의 공간을 넓히면 행복은 쉽게 잡히게 될 것으로 시사하고 있다.

그래서 부부란 서로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부부간에 사랑과 고마움을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고, 둘만의 시간을 자주 가지며 서로 성장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전문가들에 의해 밝혀진대로 20년 이상 행복하게 산 부부들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서로 영적 헌신을 하였다는 사실로 미뤄 볼 때 결혼은 영적, 정신적, 육체적 결합을 전제로한 하느님의 위대한 계획인 것이다.

그러기에 부부에게 공통된 가치관과 목적의식을 제공하고 동반자 관계를 강화시키는 신앙은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유요한과 이루갈다도 하느님께 대한 맹목적인 사랑이 서로에게 있음을 알고 서로 그 맹세에 충실히 살아갈수 있도록 개인적 욕심과 욕망을 참고 서로 격려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우리 각자의 믿음도 끊임없이 상호 성장시켜야 부부간, 가족간, 이웃간, 교우간에 더불어 좋은 협력자가 될 수 있음을 나는 이들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굳은 결심뒤에는 이미 신앙생활의 모범이 되었던 부모의 삶이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부부의 올바른 가치관과 신앙관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녀들에게 가장 많은 것을 전해줄 것이다. 돈으로도, 공부로도, 멋진 선물로도, 맛있는 음식으로도 전해주지 못하는 것을…….


올바른 신앙관 본받아야

오늘도 길거리에는 나이어린 여학생이 짙은 화장을 하고 거리를 배회하고 있고, 교복을 입고 골목 끝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남학생들이 있고,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이 순간도 엄청난 일들을 생각하는 청소년들도 있고, 이젠 더 이상 참고 살 수가 없다며 이혼을 생각하는 부부도 있을 것이고, 성직과 수도성소에서 갈등하는 성직자도 수도자도 있을 것이다.

이 갈등하는 모든 이들에게 나는 유요한과 이루갈다 동정부부가 하루 빨리 시복 · 시성이 되어서 온갖 욕심에 시달리는 자,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지 못하는 자, 특별히 음욕에 시달리는 자와 모든 성직자, 수도자들의 수호성인 · 성녀가 되어서 지켜주시길 두 손 모아 기도드린다.

그리고 이렇게 훌륭하게 사신 신앙선조들을 널리 알리기를 바란다.

[쌍백합 창간호, 2003년 여름호, 고미란 베로니카(인사이트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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