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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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칼럼: 도서 마르코복음 묵상 - 위기의 시기, 영감의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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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5-16 ㅣ No.71

[도서칼럼] 도서 ‘마르코복음 묵상’


위기의 시기, 영감의 원천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수필가 피천득이 노래한 5월은 신록의 달이고 성모 성월이며 부활 시기와 겹치는 계절의 여왕입니다. 한국인은 교회에서 이런 청신한 얼굴을 보고 위로받기를 바라지만, 현실에서는 거리가 느껴집니다.

 

“유럽과 미주에서 교회는 지쳤습니다. 우리 문화는 늙었고 성당과 수도원들은 거대하지만 비어 있고 교회 관료제는 커졌습니다. 우리 전례와 옷은 화려합니다…. 웰빙이 우리를 누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치 부자 청년 같습니다. 예수님이 제자가 되라고 부르자 슬퍼하며 돌아간 부자 청년….”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말을 한 사람은 저명한 성서학자이자,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차기 교황 후보로도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마르티니 추기경(1927-2012)입니다. 그는 2012년 생애 마지막 인터뷰에서 서구 교회를 이처럼 묘사하며, 교회가 우리 시대보다 200년은 뒤떨어졌다며 변화와 회심을 강하게 촉구했습니다.

 

마르티니 추기경의 언급은 서구 교회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지만, 지금의 한국 교회에도 적합하게 들어맞습니다. 성당과 수도회 건물은 많아졌지만, 이미 코로나 이전부터 청년들을 보기 힘들고 주일학교는 쇠퇴했습니다. 또, 성소자는 감소하고 신앙인의 정체성도 약화되었습니다. 서구에 비하면 역사가 길지 않은 한국 교회인데 이미 지쳐 버린 듯합니다. 생기 회복이 절실합니다.

 

마르티니 추기경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영감을 주는 영웅은 어디 있습니까? 그들을 제도의 경계 안에서만 찾으려고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중략) 저는 교황님과 주교님들께 행정 라인 바깥에서 12명을 찾으라고 조언해 왔습니다. 가난한 이와 가까운 사람,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인 사람,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불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습과 관료제를 넘어 ‘불타는 열두 사람’을 찾으라는 추기경의 조언이 신선합니다.

 

추기경은 오래전부터 서구 교회의 위기를 바라보고 성서 묵상과 피정을 통하여 사목자들을 격려해 왔습니다. 근자에 개정 출간된 『마르코복음 묵상』 중 “갈릴래아 활동에서 발생한 위기”(씨앗의 비유)에 대한 묵상은 그런 단면을 보여줍니다. 예수님 활동에서 경험한 위기를 통해 제자들과 우리의 위기를 연결하고 씨앗의 비유에 대한 묵상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신뢰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1974년 이탈리아 북부 주교단의 영신수련 피정에서 한 강의를 엮은 이 책에는 마지막 인터뷰에서 언급하는 위기감이 직접적으로 나와 있지 않습니다. 영신수련 지도자의 절제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만, 미래 추기경의 넓은 지평을 엿볼 수 있습니다. 위기에서 빛을 발하는 내공은 겸허하게 원천과 기본에 충실할 때 축적이 되는 것이죠. 우리도 ‘불타는 열두 사람’을 찾는 한편, 복음 묵상이라는 원천과 기본에 충실하며 5월을 지내면 어떨까요? 우리 내면의 청신한 얼굴이 사람들에게 영감이 되도록!

 

[2023년 5월 14일(가해) 부활 제6주일 서울주보 7면, 김우선 데니스 신부(예수회, 서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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