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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부온 프란조1: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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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6-08 ㅣ No.668

[창간 34주년 기획 “부온 프란조(Buon pranzo)!”] (1) 연재를 시작하며


“부온 프란조!”… 역대 교황들이 선호했던 요리를 만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 광장에 모인 신자들에게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부온 프란조!”라고 인사한다. 지난 4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일반알현 당시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인 프란치스코 교황. [바티칸시티=CNS]

 

 

의식주(衣食住)라지만, 식(食)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 조건이다. 또한, 식사(食事)는 성사(聖事)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하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에 성체성사와 성품성사가 제정된 것만 봐도 식사가 얼마나 깊은 의미를 지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성경에서도, 본당이나 수도 공동체, 교회의 삶에서도 식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을 맺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창간 34주년 기획으로 디 모니카 대표 고영심(모니카)씨가 집필하는 ‘부온 프란조(Buon pranzo)!’를 연재한다. “맛있는 점심 되세요”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다. 교회와 숱한 성인들, 교회에 걸작을 남겼던 화가들, 교황님들, 성경에 나오는 음식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기획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부온 프란조(Buon pranzo)!”

 

나의 제2의 고향, 로마! 인생의 3분의 1을 로마에서 살았으니, 로마가 나의 제2의 고향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러다 보니 로마에 관한 이야기나 기삿거리는 항상 나의 귀를 쫑긋거리게 하며 지대한 관심을 두게 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Omnes viae Romam ducunt)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고대로부터 수천 년간 로마의 길들은 아직 고고하게 존재하며, 지금까지 사람들로 하여금 그 길로의 여정을 걷도록 끊임없이 초대한다.

 

일찍이 그 초대에 응했던 나로서는 ‘로마는 영원하다’(Urbs aeterna)라든지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Non fuit in solo Roma peracta die)는 짧지만, 강한 로마에 대한 역사적 표현에 매료된 나머지 로마를 사랑하였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르네상스 문화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로마, 그 안에서 굳건하게 지켜 온 신앙과 철학의 장인 그곳에서 나의 청춘은 꽃을 피웠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이 놀라운 경험은, 나로 하여금 햇살처럼 번지는 밝고 힘찬 자신감으로 아직도 내 삶을 빛나게 한다. 바라건대, 나는 잘 익어가는 레몬처럼 더욱더 성숙해지고 싶다. 아울러 거의 20여 년 로마에서 살면서 알게 된 ‘쿠치나 로마나’(Cucina romana), 즉 로마식 요리를 통해 매일매일의 나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있으니, 나는 “내 인생의 르네상스(Rinascimento)다”라고 친구들에게 유쾌하게 떠벌린다.

 

로마에서 살면서 이웃들에게 배운 것이며, 가족들끼리 운영하는 단골 정통 로마식 레스토랑이나 피자를 전문으로 하는 요리점 피체리아(Pizzeria)에서 먹어 본 맛의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나의 스튜디오에 작은 테이블을 놓고 나의 음식과 문화를 경험해 보고 싶은 사람들과 근 8년을 만나는 중이다.

 

내게 항상 큰 기쁨을 주는 전통 이탈리아 요리는 식재료에 대한 진실성과 단순성이 바탕이 된다. 그리하여 나의 레인지 위의 냄비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은 패스트푸드(Fast food)가 아닌, 시간을 존중하는 슬로푸드(Slow food)다. 시간에 대한 존중 안에서 요리하는 동안 ‘사랑’과 ‘인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 때문이다. 식재료에 대한 존경심과 시간에 대한 존중 없이는 진정한 ‘음식’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나만의 진리가 생긴 것이다.

 

나의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건네는 말은 대부분 “너무 행복했어요”라는 말이다. 음식을 통해 행복이라는 기쁨을 준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가 깊다. “삶에서 가장 강렬한 기쁨은 우리가 다른 이에게 기쁨을 줄 수 있을 때에 생겨납니다”(「사랑의 기쁨」 제129항)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을 통해 언급하고, 더 나아가 교황은 1996년에 개봉됐던 덴마크 영화 ‘바베트의 만찬’(Babette’s Feast)을 언급한다.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식탁의 힘’이다. 음식을 통해 기쁨을 보여준 요리사에게 “아! 당신은 천사들을 기뻐 뛰놀게 할 거예요!”라는 말과 함께 포옹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로마의 야채 가게.

 

 

교황, ‘함께하는’ 생명의 식탁으로 초대

 

“부온 프란조(Buon pranzo)!”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 광장에 모인 신자들에게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부온 프란조(Buon pranzo)!” 곧 “행복한 점심 되세요!”라고 당부하는 최초의 교황이다. 교황은 “오늘날 지나친 개인주의로 우리가 자신을 타인에게 아낌없이 주는 것이 어렵게 됐다”(「사랑의 기쁨」 제33항)고 지적한다. 가정의 식탁에서도 마찬가지다.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먹는 식탁이 드물게 됐고, 나 혼자 먹는 것에 익숙해졌으며, 타인과의 식사는 어색하게 되었다. 물론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혼자’에 익숙해져 버린 이 현실에서 파생되는 환경 오염, 우리 몸에 가해지는 보이지 않는 건강에 대한 위협, 돈이면 무엇이든 사들여 먹는 이들의 특권이 만연하면서 많은 사람이 그 특권 때문에 희생돼야 하는 불공정이 보편화하였다.

 

교황의 ‘부온 프란조(Buon pranzo)!’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개인을 넘어선 ‘공동의 사람들’(comuni)에게 ‘함께하는’ 생명의 식탁에 참여하라고 매주 신자들에게 던지는 당부가 아닐까? ‘함께하는’ 식탁에서는 음식의 성스러움이 회복되는 것이다. 즉 음식은 ‘친교’(comunione)다. 음식과 함께할 때 타인의 기쁨과 고통, 고단함과 희망이 보이고, 또 그것을 나눌 수 있다.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사랑을 나눈다는 것과 같다. 같이 먹는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타인과 높게 쌓인 불신과 적대의 벽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 관련 에피소드와 레시피 소개

 

나는 지면을 통해 두 명의 이탈리아 예술 거장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와의 만남을 시도해 보고 싶다. 그들이 500여 년 전 로마에서 살았을 때의 삶과 나의 로마에서의 삶을 로마라는 같은 공간 선상에 놓고 그들과 추억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시간이야 500년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로마를 거닐다 보면 그들과 어깨를 마주치는 게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면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겐 그렇게 느껴지고, 그들의 옷자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도 환청과도 같이 들린다. 또한, 바티칸 교황청에 거주하였던 현대의 몇몇 교황들, 비오 10세나 성 요한 23세, 성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호했던 음식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고 여기저기 책자를 뒤져 보았다. 아울러 로마의 이웃이었던 나의 영원한 스승 시뇨라 데레사(Signora Teresa)의 로마식 요리와 로마에서의 삶에 대한 재밌는 추억과 경험을 적어보고 싶다.

 

두 천재 예술가와의 만남이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요리를 즐겼고 공방 친구이기도 했던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와 피렌체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요리와 시간의 차이가 느껴지긴 하지만, 그 당시의 레오나르도가 주장했던 식탁의 매너를 적어보고 싶다. 또 ‘미켈란젤로 없는 로마는 상상할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그의 작품이 교황청과 로마 곳곳에 전시되어 있고, 그의 발자취가 아직 살아있으니 그가 로마에서 즐겨 먹었던 음식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상상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상의 나래는 20여 년간 로마에서 살며 터득한 유쾌하고 행복해진 나의 삶의 방식이 아닐까? 에피소드 하나에 로마식 요리 한 가지의 레시피(요리법)를 선물해 주고 싶다. 나의 이 에피소드를 읽는 독자들이 레시피를 보며 로마 요리를 하나하나 만들어 보기를 권하면서 영화 ‘바베트의 만찬’에서 보여지고 느껴지는 만남과 치유, 그리고 화해로 무너진 우리의 식탁에 새로운 향기가 흐르기를, 가족에게 기쁨을 주고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 필자 약력 = ▲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 선교학 석사, 박사과정 수료 ▲ 교황청립 라떼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혼인과가정신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 ▲ 현재 수원가톨릭대 강사 ▲ 통번역가 ▲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설 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 ▲ 쿠치나 메디테라네아(지중해식) ‘디 모니카’ 대표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5월 29일, 고영심 모니카(디 모니카 di monic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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