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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31: 여성의 존엄을 회복시키는 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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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07 ㅣ No.1557

[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31) 여성의 존엄을 회복시키는 성교육


여성 존엄 훼손하는 ‘언행’에 철퇴를

 

 

여성을 음식 취급하는 사회

 

‘미숙이가 땡긴다’, ‘지혜가 땡긴다’, ‘지영이가 땡긴다’, ‘민경이가 땡긴다’, ‘시은이가 땡긴다’, ‘미선이가 땡긴다’라는 문구와 함께 여자의 손이 남성의 볼을 잡아서 당기면 시무룩했던 표정이 밝아지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광고물이 도심 한복판 버스 정류장에 있었다. 그 하단에는 “사랑한다면 ○○○○”라고 쓰여 있다. 도대체 무슨 광고일까?

 

모텔 애플리케이션 광고다. 땡기다(‘당기다’의 잘못)는 말은 ‘음식을 주어로 삼아서 그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 욕망을 느낀다’라는 의미를 표현한다. 그런데 이 광고에서는 각각 다른 여성의 이름이 반복되면서 ‘○○가 땡긴다’라는 말이 반복된다. 무슨 뜻일까? 존중받아야 할 인격인 여성들을 남성이 먹고 싶다는 뜻이며, 여성의 손이 남성의 볼을 당기는 모습은 여성이 먹히기를 원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광고는 여자를 음식으로 격하시켰다. 더 큰 문제는 그 남성이 혼자서 여러 명의 여자를 먹는 것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이다. 남자가 여자를 뷔페 음식 골라 먹듯 먹을 수 있다는 메시지의 광고가 아무런 비판 없이 공공장소에 있는 것은 여성의 존엄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성관계 권하는 광고에 포위된 삶

 

이 광고는 TV에도 방송됐다. 인기 절정의 치어리더가 모텔에 가고 싶다는 은근한 메시지를 남자 친구에게 전하면, 가슴에 불이 타오르는 이미지와 횡재했다는 표정으로 끝나는 5편의 광고다. 여성이 땀을 흘리며 응원을 하다가 “아! 씻고 싶다” 하면 ‘기회는 항상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광고 문안이 나오고,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면서 “오빠야! 나 어제 귀신 꿈 꿨어. 무서웠어. 혼자 있기 싫어” 하면 “그래! 불타는 청춘들을 위하여”라는 광고 문안이 나오는 식이다. 버스 옆면과 지하철에도 “모텔 갈 땐 ○○○○”라는 광고가 수없이 도배되어 있었다. 그 앱과 제휴를 맺은 모텔 앞에는 “라면 먹고 갈래?”, “택시비 아까워”,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맙시다”, “할 수 있을 때 하자” 등의 간판이 있다.

 

광고에 엄청난 돈을 투자했기 때문에 이 앱은 상당수 젊은이의 스마트폰에 설치되어 있다. 연애하면 ‘모텔은 당연히 가는 놀이터’, ‘여자는 음식’, ‘성관계는 놀이’, ‘모텔은 여자를 먹는 뷔페’가 된다. 거대기업이 광고 마케팅을 통해서 젊은 세대에게 성관계를 집요하게 강요하는 것이다.

 

 

광고, 가장 성실한 선생님

 

광고는 침투력 강한 매체를 통해서 수많은 것을 가르치는데, 우리는 배웠다는 의식 없이 그 가르침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광고가 제공하는 신화적 교훈은 모든 사회적 가치를 소비 사회의 덕목에 종속시킨다. 광고가 보여주는 그 어떤 장밋빛 미래든 그것은 광고되는 상품을 소비할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것은 광고가 가르쳐준다. 국가에 충성하는 방법, 공중도덕을 지키는 방법, 치통을 없애는 방법, 피곤을 푸는 방법, 이성 교제를 무난히 하는 방법까지 가르쳐준다.

 

물론 소비자가 결코 순진한 학생은 아니다. 광고가 가르치는 대로 따라 하지 않는다. 그러나 1년 365일, 매일 몇 시간씩 눈과 귀를 따라다니며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는 선생이 광고 말고 어디에 있는가? 그것도 15초에서 30초짜리 강의를 만들기 위해 몇억 원을 써가는 성의를 보이면서 가르치는 선생이 어디 있는가? 그렇게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쓰는 돈이 우리나라에서 연간 12조 원이 넘는다.” (강준만, 「대중문화의 겉과 속」 366쪽)

 

기업은 이렇게 젊은이들에게 ‘섹스=게임’의 가치관을 각인시키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뿌리는데, 고액 연봉의 전문가들이 그 일을 하므로 작전은 늘 성공한다. 그렇게 ‘섹스=게임’이라는 생각을 품은 젊은이가 늘어나면 기업은 더 큰 수익을 올린다. 광고비는 당연히 지출해야 할 마중물이다.

 

 

재미있는 악(惡)을 학습한 결과

 

광고 등을 통해 재미있게만 학습한 ‘여자=음식’의 가치관은 이 시대의 통념이다. 

 

‘여대생을 과일에 비유, 1학년 : 파인애플(벗기기 어렵지만 새콤달콤 부드럽다), 2학년 : 바나나(벗기기 쉽고 부드럽다), 3학년 : 사과(무난하게 구하기 쉽고 맛도 좋다), 4학년 : 토마토(아직도 자신이 과일인 줄 안다)’. 대학가 식당에 게시된 글로, 여학생들의 항의로 삭제됐지만 이런 글은 무수히 출현한다.

 

‘클럽에 대한 여자 생각 : 친구들과 음악 들으며 스트레스 푸는 곳, 남자 생각 : 뷔페’ 

 

‘집에 대한 여자 생각 : 떨리고 조심스럽지만 가보고 싶은 곳, 남자 생각 : 공짜로 짝짓기하는 곳’ 

 

이는 서울 대학가 술집의 내부 장식품인데, 여자는 남자가 먹는 음식일 뿐이다. ‘새콤한 소녀의 골뱅이, 뽀오얀 소녀의 어묵탕, 촉촉한 소녀의 오징어’는 여자를 음식 취급하는 강력한 사회적 맥락이 없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술안주 이름이다.

 

‘‘나’ 말고 ‘뭐’ 먹을래?’, ‘오빠의 번데기탕’, ‘잘 꽂힌 어묵탕’, ‘술도 먹고 너도 먹고, 일석이조 경영포차’ 대학축제 주점의 메뉴판과 간판이다. ‘여자=음식’의 왜곡된 가치를 대학생들이 스스로 실현하고 있다. 이것이 악이라고 분명히 지적해 주지 않으면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기 어렵다.

 

 

악은 악을 불러들인다

 

여성을 음식 취급하며 놀이로 즐기는 성관계에는 존중과 책임이 없다. 그러나 이런 성관계에서도 생명이 생기는데, 이는 원치 않는 임신이니 낙태를 여성의 권리로 인정하라는 것이 낙태죄 폐지 주장의 핵심 중 하나다. 놀이화 된 성관계라는 악이 낙태라는 더 큰 악을 권리로 포장해서 불러들인 것이다.

 

법무부의 낙태죄 유지 변론에 “통상 임신은 남녀 성교에 따라 이뤄지는 것으로, 강간 등의 사유를 제외한 자의에 의한 성교는 응당 임신에 대한 미필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므로 이에 따른 임신을 가리켜 원하지 않은 임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구절이 있다. 성관계가 임신을 유발하는 필연적 행위임을 알면서 자기 의지로 성관계하고, 그 결과인 임신은 책임지지 않고 낙태로 해결하겠다는 태도를 법이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매우 상식적인 판단인데,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프로초이스 단체와 대다수 언론은 여성을 깎아내렸다고 장관의 경질까지 요구했다. 

 

임신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는 것이 한국 법의 심각한 결함이기 때문에 국가와 남성의 책임(양육비 책임법)이 추가되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고, 낙태죄 폐지보다 이것이 우선인데, 세상은 반대로만 가고 있다. 세상을 바꾸기 어렵다면 세상이 우리를 바꿀 수 없도록 선한 싸움을 해야만 한다. 생명을 품고 키워내고 독립시키는 여성의 능력인 생육성(生育性, generativity)과 여성의 존엄을 회복시키는 성교육이 꼭 필요하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7월 8일, 이광호 베네딕토(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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