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강론자료

2016-0224.....사순 제2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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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2-24 ㅣ No.1993

사순 제2주간 수요일

예레미야 18,18-20        마태 20,17-28

2016. 2. 24. 이태원

주제 : 내가 미워하는 사람

세상을 둘러보면 모든 사람이 다 사랑스러워 보일까요? 그렇다는 대답이 바랄 마음이기는 해도 실제로 현실은 바람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둘러보면 왜 그렇게 미운 사람이 많은지, 들러보면 마음에 들지 않거나, 하는 행동이 왜 그래야 하는지 혀를 찰 때가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부족하게 본다면, 나도 같은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그렇게 되는 사람의 감정은 우리가 다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현실이 우리의 삶에 이렇게 온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또 다른 사람이 내 삶에 대해서 말해주거나 진단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있겠습니까?

 

예레미야예언자를 미워한 이유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유대의 사람들과 예루살렘주민들을 안타깝게 여겨도 우리의 삶에 생길 수 있는 이익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만, 유대의 사람들과 예루살렘의 주민들은 예레미야예언자를 왜 미워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예레미야를 없앨 음모를 꾸미자. 그자가 없어도 언제든지 사제에게서 가르침을, 현인에게서 조언을, 예언자에게서 말씀을 얻을 수 있다. 어서 혀로 그를 치고,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무시하자.이렇게 말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삶에 생길 수 있는 좋은 일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앞을 보지 못하는 눈 먼 사람의 발 앞에 돌을 던져놓는 사람에게 생길 수 있는 좋은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교황님께서는 자비의 해를 선포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자비의 마음을 갖고 행동을 하도록 권고하시지만, 그렇게 표현하시는 행동지침을 들으면서도 행동에 나서기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자비는 한쪽만의 무조건을 담는 행동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비를 말씀하시는 교황님께서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시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여러 가지 핑계를 앞세우고 일의 선후관계를 따져서 행동하기를 거부하는 것일까요? 어딘가에는 삶을 해석하는 올바른 진리가 있겠지만, 안다고 해도 행동으로 연결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내 삶에 좋은 일이 생기게 하려면, 남에게서 뭔가를 받는 것도 중요한 일일 수 있지만, 내게 좋은 일이 생기기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삶에 좋은 일이 생길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는지도 찾아야 합니다. 어머니를 앞세워 특별한 청을 했던 제베대오 형제인 야고보와 요한처럼 살 수도 있지만, 다르게 살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할 일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그리 해야 하겠습니까?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에 어긋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이 말씀을 얼마나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돌아봐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내 곁에서 미워하는 사람, 없어져야 한다고 여길 사람이 줄어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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