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강론자료

2016-0228.....사순 제3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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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2-27 ㅣ No.1996

사순 제3주일 (다해)

탈출기 3,1-8ㄱㄷ.13-15        1코린토 10,1-6.10-12      루카 13,1-9

2016. 2. 28.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을 만난다는 것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말의 무엇인지 알고,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말의 뜻을 다르게 알아듣지 않는다면 그 이론은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원론을 이렇게 말하고 나면, 나는 어떤 방법으로 그 행복을 내 삶의 가까이에 둘 수 있느냐는 질문도 가능해집니다.

 

삶에서 알고 싶은 것이 많아 질문해도, 그렇게 하는 질문에 대하여 원하는 순간에 대답을 얻을 수 있는 재간은 없습니다. 말 그대로 질문은 내가 해도, 그 질문에 꼭 맞는 대답도 내가 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얼마나 오래 살지 아십니까? 사람들의 사이에 떠도는 말로 ‘100세 시대, 100세 인생이라고 말은 많이 해도 실제로 여러분 개개인이 100살까지 산다는 보장은 없는 세상이고, 그렇게 오래 살라고 하면 반길 사람이 얼마나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도 오래 살기를 바란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만, 이 세상에서 오래 살 수만 있다면, 그것이 행복일까요?

 

세상에서 사람이 바랄 시간의 길이와는 달리, 그 길이가 짧아 삶을 빨리 마친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유를 알고 싶었을 대답대신에 차원이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복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과 같은 얘기를 들었다면 질문을 했을 사람에게 어떤 대답을 하겠습니까?

 

세상 삶의 길이가 다른 이유는 그에게 죄가 있다거나 죄가 없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예수님의 첫 번째 해석입니다. 사람이 듣고 싶었을 대답은 여러 가지였을 것이고, 사람들이 듣기를 원한 것은 회개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었을 텐데, 예수님은 회개와 그 사건을 연결시켜 해석하십니다. 회개(悔改)라는 말의 뜻은 잘못을 뉘우치고 바로잡음이라고 사전에 나옵니다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도도 같은 것이었을까요?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마음과 생각을 돌려 하느님께로 우리의 삶이 향하게 하는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제가 생각한 회개라는 말의 뜻은 사전에 나오는 그대로가 아니라, ‘내 삶을 반복해서 뒤돌아보고, 고칠 것을 찾아내고 바른 길을 따라 사는 것이지만, 그 뜻도 사전에 나오는 낱말에 행동이라는 요소를 덧붙인 것일 뿐입니다.

사람은 세상의 삶을 끝내야만 하느님을 만납니다. 그것도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육체가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도록 지도해야하는 영혼이라는 존재가 육신과 이별하고 난 다음,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신앙에서는 가르칩니다. 여러분이 놀라운 기도하는 가운데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일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이 언제일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육신과 영혼이 언제 이별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집트임금파라오의 손자로 또 높은 직분을 가진 사람으로서 살 수 있던 기회를 놓치고, 호렙산의 아래에서 양치기로 살다가 하느님을 만납니다. 하느님을 한번 만나고 놀라운 체험을 한 것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그가 예전에 살던 땅이던 이집트로 돌아가서, 거기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이끌어내라는 명령을 실행해야할 사명을 듣습니다.

 

내가 하느님을 만나는 일이 행동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순간이 된다면, 그 순간을 반길 사람은 얼마나 있겠습니까? 사람이 일하기 위해서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기억하면, 하느님을 만나고 싶다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모세는 하느님의 말씀에서 자신이 실천해야 사명을 들었지만, 듣는 바로 그 순간에 ,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모세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하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제가 들을 수 있도록 여러분이 소리를 내서 대답을 말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들리지 않아도 대답은 필요한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영광에 참여하는 것은 세례성사로 시작된 일입니다. 하지만 세례를 받았다는 것만으로 완결될 일은 아닙니다. 내가 하느님 앞에 서 있다고 말하고 싶다면,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바오로사도의 말씀도 함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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