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1일 (토)
(백)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환경] 찬미받으소서: 탈핵(脫核) 시대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29 ㅣ No.1564

[찬미받으소서] 탈핵(脫核) 시대

 

 

때는 바야흐로 탈핵 시대입니다. 독일은 2011년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2022년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멈추기로 결정한 이후 차근차근 재생에너지 중심의 탈핵 로드맵을 추진 중입니다. 지난해 10월 일본 아사히 신문은 대만 각의(閣議, 내각회의)에서 2025년까지 핵발전소를 모두 멈추고 재생에너지로 대체한다는 결정을 보도하였습니다. 아시아 첫 탈핵 선언이었습니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올해 5월 21일 ‘에너지전략 2050’ 법안을 국민투표에 붙여 58.2%의 지지를 얻어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안은 스위스에서 현재 가동 중인 5기의 핵발전소 가동을 단계적으로 멈추고, 재생에너지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스위스는 이 법안에 따라 태양광, 풍력 발전량을 2035년까지 현재의 4배로 늘리고, 핵발전소 1기는 2019년 폐쇄, 나머지 4기도 2050년까지 모두 폐쇄할 계획입니다. 프랑스도 예외는 아닙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핵발전소를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는 올랑드 대통령 집권 당시 핵발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탈핵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75%에 이르는 핵발전 비중을 2025년까지 50%로 줄이는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비슷한 시기에 당선된 마크롱 대통령도 기존의 탈핵정책을 계속 추진해 2025년까지 핵발전소 17기를 폐쇄하겠다고 탈핵 로드맵을 밝혔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난 6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서 원자력 안전위원회를 대통령직속위원회로 승격시키고 준비 중인 신규 핵발전소 전면 백지화, 설계수명연장 중단, 월성 1호기의 가급적 빠른 폐쇄,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의 사회적 합의 도출과 탈핵 로드맵 마련을 선언했습니다. 환경단체들과 견해 차이도 분명 있지만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탈핵 정책을 주요 공약에 포함시키고, 취임 후 처음으로 공식화시켰기에 탈핵 원년을 선언한 첫 대통령으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핵산업계와 보수 언론들의 우려와 달리 전세계적에 탈핵 바람이 붑니다. 왜 이렇게 탈핵 바람이 불까요? 한마디로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핵사고 위험과 방사능 폐기물 처리 문제, 우라늄 확보 문제로 엄청난 위험부담과 경제적 타산도 맞지 않는 핵발전을 더 이상 건설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입니다. 모든 나라가 핵발전소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현재 UN 190개 나라 가운데 31개 나라만이 핵발전소를 가동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 문제입니다.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는 찬물로 식힌 다음, 중저준위 방사능 폐기물의 경우 최소 300년,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은 10만년에서 100만년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보다 긴 시간입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24개의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세계 5위의 핵발전소 보유국입니다. 연간 750만 톤의 핵폐기물이 나오는데 현재 경주 방폐장 등에 나눠 보관하고 있습니다. 경주 방폐장의 경우 물속에 보관하는 습식 보관 후 건식 처리하는 방식인데 2019년이면 포화 상태에 이르러 다시 핵폐기장을 마련해야 합니다. 영광 핵발전소도 2024년이면 포화 상태에 이릅니다. 핵폐기물로 인한 국가 대란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지난 6월 15일 청와대 앞에서 ‘잘가라 핵발전소 100만 서명운동본부’ 주최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탈핵 천주교연대를 비롯한 종교계, 환경단체,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해부터 받아온 탈핵서명 총 33만 8147명의 서명과 성명서를 청와대와 국민인수위원회에 전달하였습니다. 탈핵을 염원하는 시민들의 뜻을 전달한 것입니다. 탈핵 시대는 대통령의 탈핵 선언만으로 열 수 없습니다. 독일 역시 후쿠시마 핵사고 이전 1998년 연정으로 탈핵국가로 전환을 선언했지만,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찬핵(贊核) 국가로 바꾸려는 세력들의 정치적 반발이 치열했습니다. 하지만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베를린과 함부르크 같은 대도시에서 10만 명이 넘는 독일 시민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와 ‘우리 아이들의 안전한 미래를 위해 당장 핵발전소 멈춰!’를 외쳤습니다. 이 시위의 영향으로 당시 집권여당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원래 석 달 동안 독일 전역에 있는 핵발전소를 점검해 안정성 문제가 있는 발전소만을 폐쇄하려다가, 2022년까지 모든 핵발전소 폐쇄 결정을 내립니다. 결국 시민의 힘입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운영하며 신규 핵발전소 건설의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 하지만, 그동안 60년 가까이 경제적 이득으로 똘똘 뭉친 소수 원전 마피아(학계, 정치인, 공무원, 언론인) 세력들의 공세는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미 1972년 스톡홀름 ‘인간환경회의’ 당시 교종 바오로 6세가 탈핵 메시지를 발표하였습니다. 정말이지 예언자적 메시지였습니다. 교종은 원자력 무기가 환경을 황폐하게 만들고 파괴하며, 결국 인간의 생존까지 위협할 것이라 경고했습니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종 역시 일본 주교단을 만나 인간의 교만과 현대 문명의 일그러진 보기가 바로 ‘핵발전’이며 이를 ‘바벨탑’에 비유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핵무기와 핵발전소라는 하늘에 이르는 탑을 세워 결국 자멸을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묻습니다.

 

“우리 후손들, 지금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까?”(『찬미받으소서』 160항)

 

탈핵의 길은 당장 쉽게 만들 수 없습니다. 소수의 결탁된 이득을 위해 다수의 파멸을 초래할 죽음의 세력에 맞서는 방법은 ‘생명을 선택한’(신명 30,19) 시민들의 힘입니다. 우리가 햇빛과 바람의 에너지, 하느님의 에너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재생 에너지와 관련된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본당에 태양광을 설치하고 신자 집마다 옥상과 베란다에 미니 태양광을 설치하는 움직임이 늘어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리를 격려합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협동조합들이 생겨나서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이용하여 지역적으로 자급자족을 하고 남는 에너지는 팔기까지 합니다.”(『찬미받으소서』 179항)

 

탈핵의 시대, 다음 세대에게 죽음의 폐기물을 남기는 핵 발전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에너지, 태양과 바람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의 소명입니다.

 

“주님, 저희가 모든 생명을 보호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마련하여 정의와 평화와 사랑과 아름다움의 하느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찬미받으소서! 아멘.’ (『찬미받으소서』 그리스도인들이 피조물들과 함께 드리는 기도’ 가운데)”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7년 가을호(Vol. 39), 글, 사진 제공 맹주형 아우구스티노(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1,12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