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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지금은 탈핵시대: 하느님 나라를 되찾기 위한 영적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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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8-01 ㅣ No.1566

[지금은 탈핵시대] 하느님 나라를 되찾기 위한 영적 투쟁

 

 

먼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하느님은 인간에게 손으로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내리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그러한 선물을 주셨지만 동시에 이 땅을 다스리라는 과제도 주셨습니다. … 하지만 하느님이 부여하신 과제에서 너무 멀리 가버린 순간이 왔습니다. … 자신 앞에서 인간이 할 몫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과 과제 사이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프란치스코)

 

“랍비 문헌에는 하느님이 왜 바벨탑을 싫어하셨는지를 질문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느님은 왜 사람들로 하여금 각각 다른 언어를 쓰게 해 탑 쌓기를 중단하게 하셨을까요? … 그러한 행동은 하느님에 대한 오만함의 표현입니다. … 하느님이 가장 언짢게 여기신 것은 탑을 쌓는 자들이 그렇게 높은 곳에서 인부가 추락할까봐 걱정하기보다는 벽돌 한 장이라도 분실할지 몰라 연연해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벌어지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과 과제 사이의 줄다리기와 같습니다. 완벽하게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인간은 진화해야 합니다. … 좀 더 인간다워지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오로지 경제적 성공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평안을 가장 하찮게 생각합니다.”(스코르카)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과 아브라함 스코르카 라틴 아메리카 랍비 신학교 학장의 대담 내용을 담은 책, 『천국과 지상』 중 한 부분이다.

 

신앙인인 나는 모든 문제의 왜곡은 창조주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시작되며, 해결의 단초 또한 창조주에 대한 신앙고백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창조를 잘못 이해하면 하느님을 잘 못 알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우리가 하느님인양 행동한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불신앙이자 우상숭배와도 같은 행위들은 종종 ‘긍정’이라는 태도로, 혹은 ‘과학’에 대한 맹신으로 포장되곤 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힘없는 이들에게 고통을 강요한다. 현대 문명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기아, 난민, 환경재앙의 문제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저지른 수많은 일들 중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대체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핵분열을 기반으로 하는 ‘핵폭탄’과 ‘핵발전소’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떨어진다. 그 엄청나고 잔인한 위력 앞에 결국 일본은 항복을 선언한다. 14만 명이 사망하였다. 같은 해 8월 9일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으로 사망한 7만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이후 방사능 피폭에 의해 장기간에 걸쳐 신체적, 정신적 장해로 인해 사망한 수까지 포함하면 두 개의 핵폭탄으로 70여만 명이 사망하였다. 인류는 핵폭탄의 잔인한 위력 앞에 경악하였다. 그리고 그 위험한 것을 봉인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위험한 물질에 대한 욕망은 멈추기 어려웠다. 현재 미국 7,500여 개, 러시아 8,500여 개, 영국 230여 개, 프랑스 300여 개, 중국 250여 개를 비롯해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핵무기는 무려 1만 7천여 개를 웃돈다. 지구를 몇 번이고 파괴할 수 있는 양의 핵무기가 인류의 생명과 평화를 위협한다.

 

1956년 영국에서 상업용 핵발전소가 최초로 상용화되면서 수많은 나라가 앞 다퉈 핵발전소를 도입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현재 24기의 핵발전소가 운전 중이고, 추가로 5기의 신규 핵발전소가 건설되어 운전될 예정이다. 그러나 미국의 쓰리마일(1979년), 소련의 체르노빌(1986년), 일본의 후쿠시마(2011년)에서 인근 지역 주민들이 대피해야 하는 중대형 사고가 발생하였다. 2015년 일본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의 활동가들과 함께 방문한 후쿠시마에서는 여전히 높은 방사능이 측정되고 있었다. 지역 여기저기에 방사능 오염물질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어찌 처분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핵방사능 재난대피 지역에서의 거주는 허용치 않으면서도 경제를 이유로 해당 지역에서 여러 활동을 허용하고 있다. 방사능 피폭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대피한 이들 중 반경 20Km 밖 30Km 이내에 거주하던 이들에게 제공되던 보조금도 중단할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향에서 사는 것이 애국입니다.” 지역발전기금을 볼모로 방사능피폭이 우려되는 지역으로 다시 들어가 살라고 종용하며 일본의 일부 저명인들이 내뱉는 말입니다. 도쿄에서 만난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젊은 아빠는 “어른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어린 아이들은 어찌해야 하냐고?”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 호소하였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 직후 반경 30Km의 재난 대피지역을 반경 20Km 이내로 축소한 일본 정부의 결정은 해당지역의 피해당사자들에 대한 보상을 줄이기 위한 부도덕한 결정이었다. 인간의 생명보다 돈을 더 우선시하는 태도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여전히 후쿠시마 사고 현장에서는 고농도방사능이 유출된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전해진다.

 

지난 정부 시절 시민들의 거센 문제제기로 일본 후쿠시마산 수산물의 수입을 금지한 적이 있다. 그러나 WTO에 제소한 일본이 승소했다고 한다. 당시 정부가 구성한 너무나 소극적인 민간주도의 대처로 결국 패소하였고, 검사 때마다 방사능이 검출되던 후쿠시마산 수산물이 일반가정의 식탁에 오를 시점이 다가왔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전 정부가 ‘식품의 방사능 오염문제가 이슈화’되면 핵발전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될 것을 우려해 무대응으로 일관한 것이라는 강한 의혹을 갖고 있다. 이제 가난한 이들의 밥상에는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방사능에 오염된 음식이 오를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20대의 건설재개 의견이 예상외로 높게 나와 의견이 분분했다. 아마도 일자리를 포함해 미래가 불안한 청년세대에게는 핵발전소가 위험해도, 그 건설현장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사실 자체가 자신의 고통처럼 느껴졌으리라 여겨진다. 우리 사회는 돈 때문에 생명을 담보로 잡힌 사회이다.

 

부활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는 시기에 꼭 들려주는 성경 말씀이 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이사 61,1) 인류가 발명한 살상무기 중 가장 공포스러운 핵무기에서 시작된 핵발전소는 인간의 미래를 공포에 젖게 만든다.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이 말씀하셨다.”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창세 3,3-5) 하느님은 인간에게 살려거든 생명을 선택하라고 하셨지만, 유혹에 빠진 인간은 ‘소유’를 통해 ‘하느님처럼’ 되고자 하는 탐욕으로 죽음을 선택한다. 현재의 핵발전소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바로 그렇다. 애써 우리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핵발전소 인근 지역주민들과 거대한 고압송전선로 경과지의 주민들의 고통은 남의 일이라 생각한다. 거기에 더해 문제가 발생해도 나는 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후쿠시마는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아담과 하와의 선택으로 하느님 나라를 잃어버렸는데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해야 되지 않느냐고. 우리는 이집트의 노예로 살던 방식밖에 알지 못하지만, 내 자식들은, 후손들은 자유인으로 살기 바라며 광야를 걸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선택이 우리와 자녀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회복시켜줄 것이다. 수많은 이들의 눈물로 만들어진 전기의 편안함을 거부하고,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악한 에너지원인 핵발전소에서 벗어나는 세상을 만들어야한다. 탈핵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되찾는 과정이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8년 봄호(Vol. 41), 양기석 스테파노 신부(수원 교구 지동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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