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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35: 피임의 실상과 환상을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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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8-05 ㅣ No.1571

[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35) 피임의 실상과 환상을 구별하기


피임약에 숨겨진 진실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삶이 보여주는 피임의 실상

 

“나 임신테스트기 쓸 거다.” “뭐! 야! 이유미, 야! 너 내가 그 기분 제대로 알지. 너 그 기다리는 1분 동안 아주~, 여자는 365일 가임기야. 앞으론 꼭 피임하도록 해! 내가 이 말을 누구한테 들었더라.” “까부는 거 보니까 윤혜지 안 죽었다?” “너 두 줄 나오면 전화해라. 혼자 끙끙대지 말고. 알았어?” 

 

영화 ‘마이 미니 블랙드레스’의 한 장면이다. 여주인공(윤은혜 분)이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하기 위해 변기에 앉아 친구와 통화하는데,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는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한 줄만 보이자(임신 아님) 아주 지겹다는 듯이 테스트기를 휴지에 둘둘 말아 쓰레기통에 처넣는다. 그러고는 주저앉아서 통곡한다. 임신 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으니 기뻐해야 할 것 같은데, 정말 서럽게 운다. 생리가 늦어지는 며칠 동안 극도의 불안과 초조함에 시달리다가 안심하게 됐지만, 매달 이러고 살아야 하는 삶 자체가 서러웠던 것이다.

 

콘돔을 쓰고 피임약을 먹어도 여성에게 임신의 불안이 깔끔하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피임해도 불안감은 줄어들지 않는다. 두 줄이 나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국처럼 책임의 제도가 전무한 상황에서 이런 임신은 십중팔구 낙태로 간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이 영화는 피임의 실상을 정확하게 반영한 몇 안 되는 예다.

 

 

미디어가 보여주는 피임의 환상

 

“미쳤어! 얼마나 어렵게 터뜨린 건데, 그걸 다시 또 꿰매? 절대로 꿰매지 말어. 야! 꿰매려면 너네 어머니 꺼나 꿰매시라고 해.” “야! 네가 우리 엄마한테 그렇게 말 좀 해줘!” “야! 근데 대학동창 중에 진짜 그 수술하고 시집간 애 있다.” “정말?” “의사한테 시집가면서” “난 맨날 그 수술하라고 이메일 날아와 병원에서.” “야! 갖고 갈게 순결밖에 없는 여자애들이나 하는 게 바로 처녀막 재생수술이야! 넌 갖고 갈 게 많으니까 그거 안 해도 돼.” “맞아.” “네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게 있어. 너한테 필요한 건 처녀막 재생수술이 아니라, 피임약이야.” “맞아”. “얼마 전 가방에서 피임약이 나오는데 엄마가 ‘아 그래, 반드시 피임은 꼭 해라’ 하시면서 한숨을 그냥 땅이 꺼지도록 쉬시는 거 있지”.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15세 관람가)의 여주인공 세 명의 대화다. 워낙 인기가 많아 시즌3까지 제작됐다. 청소년들은 이 드라마를 보면 ‘성관계는 재미있는 놀이’, ‘피임약만 먹으면 여주인공들처럼 성을 즐기면서 유쾌하게 살 수 있다’는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강화될 수밖에 없다. 피임약 먹고 시쳇말로 홍콩 가자는 황당한 의미까지 내포되어 있지만 전혀 규제가 없었다.

 

 

진실 감별을 위한 노력

 

이중피임을 해도 여성은 한 달에 한 번씩 ‘임신일까? 아닐까?’ 하며 극도의 괴로움을 경험한다. 하지만 상업매체는 이런 실제 삶을 보여주지 않고 환상만을 주입한다. 실재하는 현실은 파묻혀서 잘 보이지 않는 반면, 환상은 매체를 통해 뇌리에 각인된다. 

 

이런 혼란의 시대에는 어떻게 해야 삶의 방향을 정확히 잡을 수 있을까? 주류 매체가 아닌 곳에서 나오는 진실의 소리를 감별해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것은 방송이나 언론의 형태가 아닐 수 있다. 시행착오와 고통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개인일 수 있고, 주류 사회에서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영역에서 소명으로 일하는 전문가일 수 있고, 모든 형태의 지식에 접근하기가 수월해진 세상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나의 지성일 수 있고, 건강한 상식일 수도 있다.

 

생각해보자. 피임약은 감기약처럼 몸이 아픈 며칠만 먹고 그치는 약이 아니다. 피임 효과를 원하는 기간 지속하기 위해 수년 동안 매일 하루에 한 알씩 먹어야 하는 약이다. 부작용이 없을 수가 없다. 구글에서 ‘피임약 부작용’, ‘우울증’, ‘자살’, ‘혈전’으로 검색하면 논문을 포함해 관련 내용이 수두룩하다. 주류 언론은 거의 보도하지 않은 내용들이다. 영어로 검색 언어를 바꾸면 더 많은 학술자료를 찾을 수 있다. 제목과 초록만 봐도 피임약 광고와 피임약의 실체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어 독해가 어려우면 번역기를 이용하면 된다.

 

 

자기 힘으로 생각해야

 

왜 피임약이 4세대까지 변화할 수밖에 없었겠는가? 심각한 부작용 때문에 성분을 이리저리 바꿔본 결과다. ‘나는 아니겠지!’라는 생각은 폭주족 청소년이 함께 오토바이 타던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오고도 ‘나는 사고 안 나!’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내 몸에 맞는 피임약을 찾아서 이 약 저 약 먹으면서 갈아타기를 할 것이 아니라, 피임약을 강권하는 남자친구를 만나지 않는 편이 현명한 선택이다. 이 약은 필요에 의해 단기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일용할 양식이 돼서는 절대 안 된다. 특히 여중 여고생 때부터 먹을 약은 결코 아니다. 진실을 알겠다는 노력과 스스로 생각하겠다는 태도만 있어도 최소한 피임의 환상에 빠져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 없이 주류 매체에 노출되면, ‘성관계는 재미있는 놀이니 자유롭게 해도 되고, 콘돔과 피임약으로 임신만 안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감염되고, 피임에 실패하면 낙태로 직행하게 된다. 이런 왜곡된 가치가 사람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현상을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데올로기적 식민지화(ideological colonization), 문화적 식민지화(cultural colonization)’라고 했다. 왜곡된 교육이나 선전활동을 통해 한 사람의 생각이 악으로 점령되고, 그 사람이 악에 복종하며 살게 되는 상태를 뜻한다. “기만하는 것은 모두 매혹적이다.” 플라톤의 말이다.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그들의 전략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8월 5일, 이광호 베네딕토(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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