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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ㅣ복음화

한국교회와 새로운 복음화4: 교회헌장 해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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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2-14 ㅣ No.247

[공의회는 진행 중… 한국교회와 새로운 복음화] (4) 교회헌장 해설 (하)


교회, 구원사업의 도구이자 그리스도의 신비체

 

 

각 장의 내용

 

교회헌장을 여는 제1장은 ‘교회의 신비’라는 제목을 지닌다. 신비를 뜻하는 미스테리움(mysterium)은 본래 그리스어에서 유래하였으며 라틴어로는 사크라멘툼(sacramentum)으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사크라멘툼은 교회 안에서 성사를 지칭한다. 그러므로 교회헌장은 교회를 성사로 이해하고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와 같다. 교회는 곧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이다.”(교회헌장 1항) 교회를 성사로 보는 것은 교회 이해에 있어 두 가지 측면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온다. 그 하나는 교회와 세상의 관계에 관련된다. 이미 초안이 투쟁하는 교회의 본질을 서술하려 하였듯이 공의회 이전의 교회의 세상에 대한 이해는 부정적인 면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줄곧 교회는 세속권력과 실제적으로 정치적 대립관계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중세 이후 발달했던 가르침, 즉 세속과 육신과 마귀는 영혼구령에 방해가 된다는 가르침은 그리스도교 신자로 하여금 세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기보다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이끌었다. 이렇듯 이전에 교회가 자신을 세상과 대별되는 존재로 이해했다면 교회헌장을 통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를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도구로 이해한다. 본래 성사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가시적으로 전달해주는 표지이다. 즉, 성사를 배령하는 사람은 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은총을 얻는다. 성사는 성사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성사를 배령하는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하느님 구원의 표징이면서 동시에 도구로서 결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존재할 수가 없다. 교회헌장은 교회를 결코 자족하는 존재가 아니라, 온 인류를 하느님께로 이끌기 위한 하느님의 도구로 이해한다. 산 위에 있는 고을과 등경에 올려진 등불처럼 교회는 세상의 빛으로서 세상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는 존재이다. 

 

다른 하나는 교회가 가시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비가시적인 차원으로서 구성된 복합체라는 것이다. “교계 조직으로 이루어진 단체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비체, 가시적 집단인 동시에 영적인 공동체, 지상의 교회인 동시에 천상의 보화로 가득 찬 이 교회는 두 개가 아니라 인간적 요소와 신적 요소로 합성된 하나의 복합체를 이룬다고 보아야 한다.”(교회헌장 8항) 교회가 성사라는 사실은 근본적으로 교회가 결코 인간의 업적만으로 볼 수 없고, 오히려 하느님의 계획에 기원하고 그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존재로서 교회는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부분만으로는 결코 완전히 파악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교회는 교회의 가시적 차원보다는 영적인 차원을 강조했던 종교개혁자들과 반대로 가시적인 차원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교회를 좁게 이해하였다. 즉, 로마 주교인 교황과 유대하고 있는 이 만이 교회의 울타리 안에 속한다고 인정했다. 이에 따르면 로마교회와 유대가 없는 점 이외에는 신앙생활에 있어 가톨릭 신자들과 차이가 없는 정교회 그리스도인들조차 구원 문제에 있어 전적으로 배제되어 있는 듯이 설명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헌장을 통해 이러한 좁은 이해를 극복하고 교회를 전체로서 다시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로써 교회는 가시적 울타리 밖에 있는 갈라진 형제들과 일치를 위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고, 제도적 교회 밖에서 발견되는 성화의 요소를 교회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성령의 작용으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제2장은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으로 소개하는데 이를 통해 개인에 치우쳤던 그리스도교의 구원관이 극복되고 부르심과 구원의 공동체적 차원이 조명된다. 초안에서 하느님의 백성은 교계제도를 이루는 성직자에 대당되는 개념으로서 이 둘 사이의 관계는 통치자와 백성이라는 정치적 구조에 비견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의회를 통해 하느님의 백성은 세례 받은 그리스도 신자 전체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이해되며 본래 초기교회가 지녔던 신학적 의미를 회복한다. 하느님 백성을 이끄는 이는 하느님 자신이며,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근본적인 동질성을 지닌다. 또한 교회의 직무는 공동체에 대한 봉사로 이해된다. 즉, 직무는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교회 공동체의 관계 안에서 그 가치를 얻는다. 교회헌장은 여기서 사제직과 예언직과 왕직이 성직자들에게만 유보되어 있지 않고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주어졌다고 가르친다. 일례로서 다음의 문장은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주어진 무류성을 인정한다. 

 

“성령께 도유를 받은 신자 전체는 믿음에서 오류를 범할 수 없으며, ‘주교로부터 마지막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신앙과 도덕 문제에 관하여 보편적인 동의를 보일 때에, 온 백성의 초자연적인 신앙 감각의 중개로 이 고유한 특성을 드러낸다.”(교회헌장 12항)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교황만이 무류성을 지닌다고 선포하였다. 교황의 무류성은 본래 성령께서 이끄시는 교회에 주어진 무류성에 유래하지만, 당시의 상황은 교회로 하여금 불가피하게 교황의 무류성을 천명하는데 그치게 했다. 하지만 이런 가르침은 마치 교황이 개인적 차원에서 무류권을 누린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켜 왔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를 보완하여 교황뿐만 아니라 주교단 전체, 그리고 나아가 그리스도교 신자 전체의 무류성을 선포한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교회가 성령의 인도를 받는 하느님의 백성 전체로서 신앙 안에서 그르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제1차 바티칸공의회가 가르치고자 했던 바를 더욱 분명히 한다. 또한 신자들의 신앙 감각이 초자연적이라는 설명은 교도권이 일방적으로 행사되거나 전체 신자들의 신앙이 교도권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교도권과 신자들의 신앙이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교계 제도를 다루는 제3장에서는 특히 주교직을 상세하게 다룬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가 교황직을 강조한 결과 교황에 의해 임명된 주교들은 마치 지역교회에서 교황을 대리하는 듯이 비쳐졌다. 교회헌장은 이러한 오해를 교정하며 주교들이 교황의 대리자가 아니라, 사도들의 후계자이며 하느님의 대리로서 자신들의 고유한 목자의 직무를 수행한다고 천명한다. 아울러 베드로와 사도들이 하나의 사도단을 이루듯이 교황과 주교들이 단체적 일치를 이루는데, 그들의 합의체적 권력이 공의회를 통해 특별히 행사됨을 가르친다.

 

특별히 이목을 끄는 부분은 평신도에 관한 제4장이다. 교회헌장은 평신도들이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들의 도움을 거룩한 목자들에게 풍부히 받을 권리가 있으며, 자신들의 필요와 소원을 목자들에게 표명하여야 한다”고 가르친다. 혹자는 1917년 법전에서 유래하는 이 문구를 두고 평신도들의 권리가 공의회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성직자들에 의해 제한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제4장 전체를 보면 평신도의 위치가 교회 안에서 새롭게 자리매김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의회 전까지만 해도 ‘평신도’라는 단어를 교회 사전에서 찾아보면 ‘성직자’라는 항목을 보라고만 적혀 있었고, 막상 ‘성직자’라는 항목에는 ‘평신도란 성직자가 아닌 자’로 정의되어 있었다. 즉, 평신도는 오랫동안 교회 내에서 그 고유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신학적으로는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교회헌장은 이러한 평신도의 본질과 사명에서 시작하여 그들의 품위와 사도직, 그리고 사제직과 예언직과 왕직, 성직자들과 관계에 이르기까지 총 9개의 항을 할애하여 평신도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한다. 교회헌장이 사제들에 대해서는 오직 1개의 항목을, 수도자들에 대해서도 5개의 항목을 할애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세속성으로 특징 지워지는 평신도를 교회의 필수불가결한 신분으로 들어 높이고 있음이 명백하다. 혹시라도 평신도를 서술하는 개념이 현대적 시각으로 부족한 점이 있다면 이는 공의회의 의도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당시 그 의도를 풀어가는 언어적 표현이 부족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는 앞으로 평신도에 관련된 신학의 발전 필요성과 밝은 전망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의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대표적인 문헌인 교회헌장은 교회의 자기이해를 담고 있으며 균형적인 교회론을 전개한다. 교회는 하느님 구원 사업의 도구로서 불리움을 받았고 하느님과 인류전체의 일치를 위한 표징이다. 즉, 교회는 본성상 결코 자족할 수 없으며 교회 밖에 대해 배타적일 수 없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세상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갈라진 형제들, 타종교인들,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 또한 교회의 시야에 포함되는 것이다. 또한 교회가 추구하는 구원은 결코 개별 신자의 차원에 국한될 수 없다고 교회헌장은 가르친다. ‘하느님 백성’이라는 교회의 자기 이해는 ‘남과 상관없이 나만 잘 믿으면 된다’는 편협한 개인주의적 구원 이해를 뛰어넘는 공동체적 구원관을 제시한다. 즉, 신앙생활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 펼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동체가 올리는 미사를 비롯한 전례, 공동체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선포되는 복음, 그리고 애덕실천의 본당활동 등이 적극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끝으로 교회헌장은 교회를 구성하는 각각의 신분, 즉 성직자,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가 하느님 백성을 이루는 동시에 각기 고유한 사명을 지닌다고 가르친다. 성직자는 교회를 이끌고, 평신도는 세속에서 복음을 선포하며, 수도자는 이 세상에서 이미 하늘나라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사명의 수행이 가져오는 선익이나 그 반대의 경우 초래되는 손해는 결코 그 신분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전체 교회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모든 교회의 구성원이 각자의 사명에 따라 능동적으로 살아가야 하고, 또 어려울 때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교회헌장에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완성된 천상교회가 아닌 순례자로서 지상의 교회는 결코 완벽할 수 없기에 승리주의를 멀리하고 끊임없는 정화의 노력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의 도구로서 그리스도의 빛을 더욱 환하게 세상에 비춰야 한다. 위와 같은 교회헌장의 주요 가르침은 반세기에 가까운 시일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현실성이 조금도 상실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그 실천을 촉구한다고 할 수 있다.

 

[가톨릭신문, 2012년 2월 12일, 신정훈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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