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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4차 산업 혁명과 그리스도인: 새로운 시대에 직면한 철학적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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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8-15 ㅣ No.1577

[4차 산업 혁명과 그리스도인] 새로운 시대에 직면한 철학적 과제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4차 산업 혁명’이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시대의 변화에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또는 알 수 없는 전문 용어들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아니면 이 말이 가져다주는 새로움에 설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연 4차 산업 혁명은 실재하는 것일까? 이제는 조금은 익숙하게 4차 산업 혁명의 실제적 현상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지만,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이 말을 거론했을 때만 해도 그 실체 없는 충격에 허덕였던 것이 사실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우리 사회

 

언론은 유례없이 “산업화에는 뒤졌지만 정보화에는 앞서가자.”는 발언으로 우리 사회의 의제를 선점하기도 했다. 과연 이 담론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니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에 이런 혁명적 변화는 실재하기나 하는 것일까?

 

이 4차 산업 혁명의 주된 내용에 대해서는 더 부언하지 않겠다. 아마도 사물 인터넷, 빅 데이터, 인공 지능(AI), 자율주행 자동차 등 불과 몇 년 전에는 잘 알 수도 없던 말들이 이젠 상당 부분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말이 어떤 배경과 목적에서 이처럼 우리 사회의 주된 논의가 되었는가에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전 세계의 중요한 기업인, 경제학자, 정치인이 모여 범세계적 경제 문제와 국제적 실천 과제를 논의하는 국제 민간 회의이다. 여기서 논의된 내용은 세계 경제 기구와 서방 선진국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세계를 주도하는 역할을 한다.

 

이 포럼에서 거론된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와 가까운 미래의 사회상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 ‘4차 산업 혁명’이다. 그 뒤에는 철저히 산업의 변화와 그에 따른 정치, 경제, 사회적 전환에 대응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 의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 변화가 실재한다면 그에 대응하고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 경제 생활에 대비하는 것을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는 산업과 정치, 경제의 영역을 넘어 이 문제에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인공 지능과 정보 통신 기술의 확산에 따른 사회 변화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분명 우리 사회의 이런 반응은 지나친 감이 있다.

 

 

산업 혁명의 두 얼굴

 

무엇이 문제인가? 이 변화를 4차 산업 혁명이라 부르는 까닭은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 혁명이 그 뒤 유럽의 산업 사회를 추동했으며, 그에 따라 전 세계가 유례없는 혼란과 혁명적 변화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 변화로 말미암아 유럽에는 엄청난 부와 패권을 가져다주었지만, 그 이외의 세계 대부분은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아프리카와 중동, 동남아시아는 차치하더라도 중국은 아편 전쟁 이후 반식민지가 되었으며, 우리도 유럽의 대리인 일본에게 식민지로서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던 야만과 폭력의 시대였다. 산업혁명의 두 얼굴이다.

 

우리가 겪은, 아니 지금도 겪고 있는 이 모든 굴곡은 결국 산업 혁명에 뒤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언론이 “산업화에는 뒤졌지만 정보화에는 앞서가자.”는 구호로 이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까닭이다.

 

정보 통신 기술의 혁신에 따른 산업계의 변화는 일자리 변화와 일상적 삶도 혁신적으로 변화할 것을 분명히 알린다. 그러나 그 변화가 인간의 실존적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그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4차 산업 혁명은 실재인 듯하지만, 실재하지 않는다. 이 담론을 산업 경제적 측면에서 받아들여 그들이 말하는 방식으로 대처할 수도 있다. 반대로 이 변화를 근대 이래의 문명사적 전환으로 받아들여 우리 삶의 터전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니 4차 산업 혁명은 실재하지 않지만, 실재하기도 한다.

 

이런 전환을 정치, 경제적 논리에 따라 받아들일지, 존재론적 맥락에서 의미 있는 삶으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을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여기에 우리 삶의 방향과 실존적 의미가 결정될 것이다. 어떤 실재로 받아들일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미래의 세계관과 철학적 작업

 

지금 우리 사회와 문명이 시대의 전환점에 놓여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은 산업상의 변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럽의 근대가 이룩했던 계몽주의적 세계관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철학에서는 수없이 많은 ‘이후의 논의’가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포스트-주의’의 범람이 그것이다. 세계 학문계의 가장 중요한 담론 가운데 하나는 문화적 전환을 해명하고, 미래의 세계관을 모색하는 철학적 작업이다. 여기에 4차 산업 혁명으로 추동된 문화적 전환 논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포스트 모던에 대한 논의는 그 ‘내용 없음’ 때문에 곧 비판받고 흘러간 담론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에 따라 촉발된 이른바 ‘이후의 논의’는 이 문화의 전환을 성찰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시대의 변화를 새로운 틀에 담으려는, 다가올 시대의 의미를 해명하려는 사상적 흐름이다. 서구 근대의 인본주의와 인간 이해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을 지닌 이들이 이른바 ‘포스트 휴머니즘’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이른바 ‘트랜스 휴머니즘 담론’은 4차 산업 혁명을 추동하는 정보 통신 기술과 생명 공학 문명에 힘입어 훨씬 강화된 인간상을 강조하고 있다. 인공 지능을 탑재한 인간, 빅 데이터를 상용하는 미래를 상상해 보라. 심지어 이들은 생명 공학을 통해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류를 사실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그럼에도 인간의 본성과 인간관계를 맺는 형태는 달라질까? 아니면 4차 산업 혁명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사회적 모순과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4차 산업 혁명이 가져올 정보의 편중, 경제적 불평등, 일자리의 혁신적 변화와 같은 수많은 실존적, 공동체적 문제를 현재의 인간 이해로 극복할 수 있을까? 만일 그 대답이 회의적이라면 우리는 다시금 이 담론의 내용을 분석하고, 생겨날 문제를 인간학적이며 철학적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되돌아봐야만 한다. 여기에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직면한 철학적 과제가 자리한다.

 

대중문화에서는 이를 표상하는 아이콘이 흘러넘친다. 슈퍼맨은 물론,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엑스맨 시리즈에서의 상상력은 이런 대중적 현상을 잘 보여 준다. 최근 AI 인간을 다룬 영화 ‘엑스 마키나’(Ex Machina)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AI 컴퓨터 속 그녀와의 사랑을 다룬 영화 ‘그녀’(Her)는 4차 산업 혁명이 초래할 변화와 맞물려 미래 문명에 대한 더 큰 열망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 이런 표상들에도 여전히 자신의 한계와 본성에 허덕이는 인간의 실존적 모습이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슈퍼맨은 지난날의 고통과 한계에 허덕이며, 배트맨도 죄책감에 몸부림치는 고독한 영웅이지 않은가. 이는 기술 문명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인간의 실존성을 잘 보여 준다.

 

 

변화의 시대에 요구되는 철학

 

기술 문명의 엄청난 변화는 당면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조건과 한계에 매여 있다.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려면 진지하게 이 문제와 대면해야만 한다.

 

현대 문화는 유럽의 산업 혁명과 자본주의 혁명에 따라 체계화되었다. 18세기 이래 계몽주의 철학은 이러한 변화를 해명하였고, 그 시대에 필요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시대의 이해를 체계화하였다. 그때처럼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 공학과 정보 기술(IT)문화를 통해 혁명적으로 변화하는 최근의 사태를 근대 이후의 철학으로 해명하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최근 4차 산업 혁명을 말하는 이들은 다만 구시대의 철학으로 이 변화를 수용하고 있을 뿐이다. 근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자 철학이 필요함에도 여전히 지난 시대의 사고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우리 삶과 존재의 새로움을 드러낼 철학이 중요해진다. 4차 산업 혁명의 논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우리 삶과 실존의 미래가 달려 있다. 초인적으로 강화된 인간을 말하는 ‘트랜스 휴머니즘’의 허망한 기대나 4차 산업 혁명이 가져다줄 정치, 경제적 환상에 맹목적으로 환호한다면, 그 끝에는 의미의 공허함만이 남을 것이다.

 

일면적 산업화와 정치, 경제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우리 존재의 의미를 근원적 관점에서 성찰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니 실존적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생각할 시간이 바로 지금이다. 근대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인간 이해를 위한 성찰과 전환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이 변화의 시대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이다.

 

* 신승환 스테파노 -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 독일 뮌헨대학교와 레겐스부르크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경향잡지, 2018년 8월호, 신승환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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