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강론자료

2016-03-17.....사순 제5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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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3-16 ㅣ No.2012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창세기 17,3-9                  요한 8,51-59

2016. 3. 17.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의 선택을 대하는 자세

사람은 위대한 존재입니다. 당장의 삶에 필요할 것 같지도 않은 일들에도 힘쓰면서, 노력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읽기 시작한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책에 나오는, 사람이 가진 능력을 마음껏 드러내는 과학분야의 얘기를 읽으면서 사람이 세상을 해석하는 능력에 한계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땅위에 살면서도 하늘 위 저 먼 곳, 천체의 움직임을 얘기하고, 우주의 크기를 말하며, 별과 별사이의 거리를 잴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자로 재는 것도 아닌데. 신기하지요? 사람의 지상과제인, 먹고 사는 일에논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인데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한 일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능력을 한없이 높이고 싶은 사람들은 사람이 세상에 어떻게 있게 되었는지에 관심을 가질까요? 그렇다면 그것은 신앙의 분양이지, 과학의 분야는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의 능력을 높게 보는 사람의 입장에 신앙을 위한 자리는 없다는 것이 통설일 것입니다

 

내가 아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죽었는데, 당신은 죽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고 있으니, 당신은 정신이 나간 사람이 분명하오(!)’ 예수님의 말씀을 거역했던 유대인들이 한 소리입니다. 물론 사람들과 다른 입장에서 같은 것을 대했던, 예수님은 사람들의 좁은 안목이 무척이나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사람은 어째서 자신이 보고 들고 체험한 것만이 전부라고 여길까? 요즘 발달한 학문의 결과를 대입해보면, 안타까운 일인 것은 분명합니다.

 

신앙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는 그 크기가 다릅니다. 저도 이렇게 말씀드리지만, 어떤 세상이 더 확실하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다만 세상의 시각보다는 신앙의 시각이 옳을 거라도 얘기하고 그것에 따라 살 뿐입니다. 여러분이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한다고 제가 주장하면, 어떤 사람이 아무런 불만도 없이 제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겠습니까?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펼치실 때, 사람에게 먼저 당신의 뜻을 묻지 않습니다. 제가 하느님의 뜻을 잘 안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창세기말씀에서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아무래도 사람은 앞을 내다보지 못하거나,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만 먼저 끄려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내 삶을 통해서 만들 결과의 전체를 보지 못할 거라는 얘기입니다.

 

하느님은 아브람을 선택하시어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그가 해야 할 일은 지정하셨습니다. 혹시 우리는 하느님의 축복을 바라면서, 그저 공짜로만 얻으려고 하지는 않을까요?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하느님에게서 올 축복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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