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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51: 토마스 베리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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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7-06 ㅣ No.405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51) 토마스 베리 (하)

자연 안에 내재하는 하느님 되찾아 생태문명 추진



토마스 베리 신부와 함께한 필자 이재돈 신부.


아퀴나스와 테이야르

토마스 베리의 신학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신학자는 토마스 아퀴나스(1224~1274)와 테이야르 드 샤르댕(1881~1955)이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13세기 유럽에 새롭게 소개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을 종합하고자 시도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플라톤과 아우구스티누스적 관점에 익숙해져 있던 당시의 신학적 고정 관념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아퀴나스의 새로운 종합은, 중간에 갈등은 있었지만, 새로운 세계관 안에서 신앙을 되살리는 작업이었고 결국 중세 교회가 근대로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현대과학인 진화론과의 종합을 시도한 테이야르의 새로운 종합 역시 신학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테이야르는 진화론적 과학의 관점에서 그리스도교 교리를 재해석하고자 하였다.

테이야르는 그가 살고 있는 두 세계의 분열에 관심이 있었다. 하나는 종교적 의미를 잃은 세속적이고 과학적인 세계와 다른 하나는 현대 인류와 소통하기를 실패한 그리스도교의 세계이다.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추구는 이 두 개의 세계를 통합하는 일이었다. 이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 테이야르는 존재와 실체에 의존하는 창조론 대신에 되어감과 과정에 의존하는 진화론을 이용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교 가르침에 대한 테이야르의 재해석은 다윈의 진화론을 염두에 둔 해석이며, 그런 면에서 성서와 전통적 교리가 전제하는 정적인 우주관과는 다른 설명 방식이다. 테이야르의 이런 새로운 시도는, 긴 안목으로 보았을 때, 13세기 아퀴나스가 했던 시도의 현대판이라고 할 것이다.

베리의 생태사상과 신학사상은 테이야르의 우주관과 신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우주는 처음부터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심리적이고 영적인 차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 우주 이야기와 인간 이야기는 한 이야기의 두 가지 면이라는 것, 구원 과정에 대한 지나친 관심에서 창조과정에 대한 새로운 관심으로 이동할 필요가 있다는 것 등이다. 더 나아가 베리는 테이야르를 사도 바오로 이후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와 함께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의 하나로 평가한다. 이런 의미로 베리는 근본적으로 테이야르 계통의 사상가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베리는 생태적 관점에서 테이야르와 일정한 거리를 둔다. 베리는 테이야르가 인간 중심주의적 우주론에 근거한 진보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 태도를 지녔다고 비판한다.


역사적 추진력

베리는 현대의 생태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교에 필요한 것은 자연 안에 깃든 신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가르침을 회복하는 것과 그것에 근거해서 새로운 생태문명을 실현해 낼 수 있는 역사적 추진력이라고 지적한다. 이 두 가지 중에서 베리는 그리스도교는 이미 강력한 역사적 추진력을 지니고 있다고 진단한다.

2009년 선종한 토마스 베리 신부의 묘비.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은 베리 신부의 묘비에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이 새겨져 있다.


베리는 그리스도교가 다른 종교들보다 더욱 강한 역사적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스도교는 천년왕국에 대한 종말론적 기대가 있는데 그것이 역사성에 대한 의식에 있어서 어느 종교보다도 그리스도교가 가장 강력해진 이유이다. 역사적 변화보다는 원형적 경험에 주로 관심이 있는 아시아 종교들과 달리, 그리스도교의 강점은 완성의 시간에 이를 때까지 역사적 발전에 대하여 의식하고 있고 그것의 실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추진력이 서양 역사를 고대에서 중세로, 중세에서 근대로 변화시켜 온 힘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베리는 생태문명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도 그리스도교가 지닌 역사적 역동성이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죄와 원복(原福)

그 때문에 그리스도교에 요청되는 것은 자연 안에 깃든 신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리스도교는 그동안 하느님의 초월성은 강조하였지만 내재성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가르쳐 왔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가 자연 안에 깃든 신성을 소홀히 하게 된 것은 그동안 지나치게 구원 중심적인 영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도 바오로가 사용한 원죄 개념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구원 중심의 영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원죄만이 아니라 하느님이 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복을 내려 주셨다는 원복 개념도 있으며, 원복이 하느님께서 이 세계와 맺으신 더 근본적인 관계이다. 창조를 긍정하는 창조 중심의 영성이 회복할 때 창조세계에 깃든 신성을 회복할 수 있다.


종교 간 대화와 협력

그리스도교가 자연 안에 내재하시는 하느님을 되찾기 위해 베리는 다른 종교와의 대화와 협력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별히 자연이 지닌 신비,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로운 삶은 아시아 종교들 안에서 더 발전하였기에 그리스도교는 거기서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이다. 아시아 종교들로부터 자연 세계의 신성함,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관계, 모든 생명체에 대한 깊은 사랑, 대우주와 소우주 간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배워야 한다고 베리는 강조한다. 그리고 인디언 같은 원주민들의 토착 종교들로부터 땅 신비주의라고 할 수 있는 지구에 대한 인간의 깊은 유대를 배울 때 자연에 깃든 신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본다.


자연 속에 깃든 신성의 회복

우주 속에 깃든 신성을 체험할 때, 창조세계 안에는 하느님의 뜻 즉 하느님의 창조 질서가 그대로 새겨져 있고 하느님의 손길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연은 우리 인간이 하느님을 배우는 첫 번째 학교이며 자연의 신비 속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체득할 수 있다.

현대인들이 하느님을 체험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그것은 자연 속에서 신비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 갖기가 어려운 데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어린이들을 보면 자연과 직접적으로 접촉할 기회가 없다. 많은 어린이가 인위적인 환경에서만 지내면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데, 이럴 경우 자연과의 직접 체험이 없어서 하느님 체험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베리는 걱정하고 있다. 자연 앞에서 느끼는 신비 체험은 종교 체험의 원형적 요소라고 할 것이며, 때문에 자연 보호는 종교인들의 첫 번째 과제가 되어야 한다.


생태신학 발전에 끼친 영향

베리는 일차적으로 문명사학자이며 생태사상가이지만, 그의 생태사상과 생태신학적 전망은 기존 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들이 그동안 고민해 왔던 신학적 주제들을 생태적 전망으로 확대해야 할 근거와 방향을 제공하고 있다.

우선, 전통적 신학 주제들을 생태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시도들이 전개되고 있다. 위르겐 몰트만은 그의 저서 「창조 안에 계신 하느님」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을 범재신론 (panentheism)적으로 설명하면서 생태신학을 전개하고 있다. 성부는 초월적인 하느님을 드러내지만 성자와 성령은 창조 세계 안에 깃든 하느님이시기에 하느님의 초월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내재를 깊이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기치 아래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던 해방신학자들도 그 신학적 전망을 생태 문제로 확대하였다. 많은 해방신학자들이 처음에는 생태적 관심은 제1세계에 속한 부유한 사람들의 한가한 관심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곧 그들은 생태계 보전과 생태정의의 실현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긴박한 주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환경파괴의 첫 번째 희생자가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생태해방신학자인 레오나르도 보프가 이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여성신학자들도 생태신학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가부장제도가 여성 억압의 도구만이 아니라 자연을 파괴하는 문명 형태라는 것이 학문적으로 연구되면서 여성의 해방은 자연스럽게 자연의 해방을 동반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로즈메리 류터나 샐리 맥페이그의 저서들은 여성신학이 여성생태신학으로 심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산업문명을 생태문명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이 과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생태문명에 대한 꿈과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역사적 추진력이 필요하다. 그리스도교가 인간과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인도해 줄 수 있는 가르침을 회복한다면 그리스도교는 생태 위기를 극복하고 생태문명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평화신문, 2014년 7월 6일, 
이재돈 신부(가톨릭대 생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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