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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52: 오도 카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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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7-20 ㅣ No.407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52) 오도 카젤 (상)
 
전례의 신학적 개념 규명과 일반화에 기여



신비의 전례신학자 오도 카젤.


그리스도인이 되는 입문성사인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신자가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는 자각을 하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성사 생활, 폭넓게는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 공동체가 함께 거행하는 전례에 참여할 때가 아닐까 한다. 소비문화와 물질주의 그리고 개인주의가 팽배한 세상에서 성부, 성자, 성령을 믿으며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오늘도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님께서 전례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구원 사업을 지속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살아간다면 신앙인으로서 기쁨이 생겨난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가 앞으로 걸어갈 새 길을 제시하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2013.11.24.) 첫머리에 이렇게 복음의 기쁨을 강조하고 있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 줍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기쁨이 끊임없이 새로 생겨납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지속성과 깊이 면에서 복음이 주는 기쁨에 비길 수가 없지만 그 기쁨의 달콤함과 자극성이 사람들을 금방 빠져들게 하며 중독성을 지닌다. 반면에 복음의 기쁨을 맛보려면 준비가 필요하고 또 그 맛은 그렇게 달콤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지만 한번 맛을 본 사람은 세상의 것보다 훨씬 강한 매력에 빠진다. 이런 복음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첫째 장소는 교회에서 복음이 선포되는 전례 공간이다.


복음의 기쁨은 그것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현존을 느낄 때 가능하다.

미사 말씀 전례 중 ‘복음 환호송’을 외칠 때는 모두 일어난다. 왜 일어날까. 앉고 일어나고 하는 동작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의식하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하는 동작은 보이지 않는 실재의 의미를 담은 상징 동작이라고 전례학자들은 말한다. 복음 환호송을 바치면서 일어나는 동작은 복음을 맞이하는 기쁨과 환호, 그리고 “당신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자세다. 예수님은 “교회에서 성서를 읽을 때에 당신 친히 말씀하시는 것이다”(「전례헌장」 7항). 예수님께서 2000년 전 팔레스티나에서 선포하신 기쁜 소식을 살아 있는 말씀으로 교회가 세세대대로 선포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을 통해 예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교회의 성사들, 폭넓게 이야기하면 전례를 통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신 당신의 약속을 지키고 계신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9-20).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전례쇄신이 있기 전까지 사제는 신자들을 등 뒤로 한 채 벽에 붙은 제대에서 라틴어로 미사를 드리는 트리엔트 공의회의 전례에 따른 미사를 드렸다. 사진은 트리엔트 방식의 미사 봉헌 모습. [CNS]


복음의 핵심은 구속의 신비이며 교회는 그것을 계속 기억하며 은총을 충만하게 전한다.

가톨릭의 가장 큰 보물 중 하나는 전례주년이다. 거룩한 어머니인 교회는 “한 해의 흐름을 통하여 지정된 날들에 하느님이신 자기 신랑의 구원 활동을 거룩한 기억으로 경축하는 것을 자기 임무라고 여긴다.” 곧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실현하신 신비 전체를 인간 역사에 자연스럽게 접목해서 일상화했다. 그럼으로써 “구속의 신비들을 기억하며, 자기 주님의 풍요로운 힘과 공로가 모든 시기에 어떻게든 현존하도록 그 보고를 신자들에게 열어 신자들이 거기에 다가가 구원의 은총으로 충만해지도록 한다”(「전례헌장」 102항).

사랑이 충만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의 신비를 통해 이미 인류를 구원하셨으면서도 그것이 현실이 되게 하시려고 지금도 당신의 사제직을 교회가 드리는 전례를 통해 지속하고 계신다(「전례헌장」 7항 참조). 전례에 대한 이러한 신학적 이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로 인해 가능하게 됐다.


전례 본연의 개념과 의미를 되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성령이 이룬 사건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는 전례를 통한 이 심오한 신학적 원리, 곧 예수님의 현존(Præsentia), 기억(Anamnesis), 그리고 신비(Mysterium)라는 개념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본래의 중요한 요소 대신 외적인 예식 절차와 세부 규칙 등 부수적 요소들이 더 중요한 것으로 부각되면서 잊고 지낸 것이다. 그러다가 계몽주의와 고고학, 인쇄술의 발전이 원전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증진시키는 계기가 됐으며, 이는 전례 분야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시대적 영향으로 전례 쇄신을 위한 전례운동이 일어났다.


전례운동은 전례의 신학적 의미를 발견하였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개최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전례운동이라는 용어는 1894년 독일 신부 A. 쇼트가 쓴 Vesperale에서 나왔다. 여기서 전례운동은 “‘오늘’을 위해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의 표징으로 생겨나 성령께서 당신 교회 안에서 이끄시는 움직임”을 가리킨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 말을 요약해 “거룩한 전례를 증진하고 쇄신하는 열정”(전례헌장 43항)이라고 전례운동을 정의했다.

전례운동의 흐름을 좀 좁혀서 살펴보자면 피스토이야 주교회의(18세기), 신학적 각성과 수도회 쇄신(19세기), 새로워진 교회 개념(20세기) 등을 들 수 있다. 가톨릭 신자들은 17세기까지 이어온 전통적인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이념들을 배척하고 새로운 이념들을 추구하던 계몽주의를 받아들여 이를 교회에 적용하였다. 그들은 가톨릭의 가르침과 삶의 본질에 이르기 위해 교의를 아주 순수하고 분명하게 설명하고자 했다. 이탈리아 피스토이야에서 열린 주교회의(1786년)는 이 관점을 전례에 적용했다. 비록 얀세니즘의 영향이 있었고 1794년 교황 비오 6세에 의해 7가지 항목이 단죄되기는 했지만, 이 주교회의의 많은 결정사항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전례 쇄신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졌다.

19세기 들어와서 영국에서는 뉴만 추기경과 키블 그리고 푸세이 등이 중심이 돼 옥스퍼드 운동을 통해 가톨릭 신앙의 몇몇 원칙들과 잃어버렸던 원천들을 복구하려는 노력을 전개했다. 또 독일에서는 요한 세일러, 요한 묄러, 마티아스 시번과 같은 저술가들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비체(Corpus mysticum Christi)로 보는 교의를 강조했다. 이 교의는 전례를 이해하는 데 필수 개념이 된다. 프랑스 솔렘과 독일 보이론에서 있었던 수도회 쇄신도 큰 역할을 했다. 전례운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솔렘 수도원의 프로스페르 게랑제(1805~1875)는 전례를 기도하고 삶으로 실천해야 할 그 무엇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성음악을 재정립해 신자들도 쉽게 전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보이론 수도회의 창설자인 마오로 플라치도(1825~1890)와 볼터(1828~1908) 형제, 벨기에의 마레수 수도원, 루벵의 몽 세자르 수도원들이 게랑제의 영향을 받아 전례운동을 이어갔다.


오도 카젤(1886~1948)은 예수님의 구원 신비가 교회 전례에서 구현되고 있음을 밝혀낸 신비신학자다.

전례운동의 본격적 시작은 1909년 벨기에 말린에서 개최된 가톨릭 회의다. 이때 랑베르 보뒤엥(1873~1960) 신부는 전례 쇄신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그는 「미사경본」을 자국어로 번역하고 신자들의 주요 기도서로 배포할 것을 호소하면서, 가톨릭 신앙은 미사와 성무일도에 기반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자들이 미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 언어를 사용해야 하며, 신앙은 전례에 기반을 둬야 올바로 성숙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그는 또 그레고리오 성가와 성가대의 영적, 전례적 기능을 장려할 것을 호소했다.

독일에서는 일데폰세 헤르베겐(1874~1946)이 전례총서 「기도하는 교회」(Ecclesia Brans)를 창간했고, 로마노 과르디니(1885~1948)은 「전례 정신」을 저술했다. 또한 벨기에의 오도 카젤(1886~1948년)은 그의 유명한 신비 이론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전례운동가들의 노력은 서서히 전례 쇄신의 바탕을 이뤄 비오 12세의 「하느님의 중개자」(Mediator Dei, 1947)를 거쳐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첫번째 헌장인 「전례헌장」(Sacrosanctum Concilium, 1963) 으로 결실을 맺게 됐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전례가 단순히 외적이며 법률적인 예식 체계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으로,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공동체가 드리는 공적 예배임을 온 교회에 선포했다. 이로써 엄숙하면서도 장엄하며 잘 연출된 연극 같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예식은 이제 주례자를 마주보며 그가 하는 동작 하나하나를 자세히 볼 수 있게 됐다. 또 자신들의 언어로 기도하고 하느님의 구원 신비에 대해서 좀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됐다. 미사가 이제 더는 평신도들이 못 알아듣고 성직자만이 아는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예식이 아니라, 참여하는 모든 이들 앞에서 구원의 신비가 펼쳐지는 위대한 사건으로 인식됐다.

지금까지 전례 변화의 역사적 과정을 전례 운동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다음에는 이 전례의 신학적 개념을 밝혀내고 일반화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오도 카젤은 누구이며, 그의 연구 업적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본다.

*
윤종식 신부 - 의정부교구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전례학을 가르치면서,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평화신문, 2014년 7월 20일, 
윤종식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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