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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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 -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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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6-03 ㅣ No.74

[영화칼럼] 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 - 2017년 감독 드니 빌뇌브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선천적 청각장애인으로 살아온 어머니에게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 애쓰는 아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들은 글을 모르는 어머니에게 사랑의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 하트 모양을 보여주거나 볼에 입을 맞추는 등의 다양한 방법을 강구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끝끝내 아들이 설명하는 사랑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결국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를 꼭 끌어안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속절없이 내비칩니다. 그런데 이어서 다큐멘터리는 아들의 눈물과 포옹에 더 따뜻한 포옹으로 화답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머니의 이 모습을 통해서, 언어적 차원으로 전달되지 못한 사랑이 어머니를 향한 아들의 진심 어린 마음을 통해서 인격적이고 실존적인 방식으로 어머니에게 전달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테드 창의 단편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삼은 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는 앞서 소개한 어머니와 아들의 사연을 떠오르게 합니다. 영화는 전 세계 열두 곳의 장소에 ‘셀’이라고 불리는 외계 비행체가 ‘도착(arrival)’하는데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셀에 탑승해 있는 ‘헵타포드’라고 불리는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도착 후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자 미국 정부는 그들이 지구에 온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 분)와 물리학자 이안(제레미 레너 분)을 군사 작전 팀에 합류시킵니다. 이들이 접촉한 외계 생명체는 인간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의 문자를 보여주고, 이를 해석하고 분석하는데 긴 시간이 소요되면서 서로의 소통은 지지부진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빚어진 오해로 인해 군 수뇌부는 헵타포드를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고 그들과의 소통을 중단하려고 하지만, 루이스는 인내심을 갖고 그들과의 소통을 진행해나가며 결국 외계의 언어를 파악하게 됩니다.

 

또한 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선형적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언어 체계를 벗어나 과거 · 현재 · 미래를 동시에 아우르듯 인식하는 외계의 언어 체계를 깨우치게 됩니다. 이 능력을 바탕으로 루이스는 인류에게 벌어질 파국적 상황을 막아내고, 딸을 잃었던 과거의 아픔이 반복될 자신의 미래를 또다시, 그러나 새로운 시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삼위일체 신비는 인간의 이성으로 깨우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인간의 언어 체계 안에서 온전히 드러낼 수 없는 이 신비를 ‘믿을 교리’로 삼은 이유는 삼위일체 신비가 품은 하느님의 사랑, 즉 독자적인 세 위격이 함께 활동하심으로써 끊임없이 내어주시는 그 사랑을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큐멘터리 속 아들이 어머니에게 ‘사랑’을 일깨우는 모습은 삼위일체 신비를 통해서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일깨워주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떠오르게 합니다. 더불어 외계의 언어를 파악하자 시간의 흐름에 구속받지 않고 세계를 폭넓게 이해하게 된 영화 속 루이스의 모습은 삼위일체 신비를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몸소 살아내려는 신앙인을 대변해 주며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은 이가 느낄 참된 자유를 상징하듯 다가옵니다. 이처럼 삼위일체 신비는 언어적 한계를 넘어선 자유를 보증하며, 말하지 않고도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2023년 6월 4일(가해)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서울주보 7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행당동성당 부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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