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교회문헌ㅣ메시지

2011년 사순시기 교황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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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2-28 ㅣ No.410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2011년 사순 시기 담화


“여러분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되살아났습니다”(콜로 2,12 참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사순 시기는 거룩한 부활 축제로 나아가는 교회의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전례 시기입니다. 이에 저는 여러분이 사순 시기를 열심히 지낼 수 있도록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영원한 부활절에 신랑이신 분을 온전히 만나 뵙기를 기다리면서,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한 마음으로,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주님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습니다(사순 감사송 1 참조).

 

 

1. 바로 이 생명은 이미 우리가 세례 때에 받았습니다. 그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여” 우리도 “그분 제자들이 겪은 그 기쁘고 놀라운 모험”을 시작하였습니다(주님 세례 축일 강론, 2010년 1월 10일). 바오로 사도는 서간에서 이 세례로 하느님의 아드님과 이루는 유일한 친교를 되풀이하여 강조합니다. 유아 세례는 세례가 참으로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밝혀 줍니다. 아무도 자기 노력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지는 못합니다. 죄를 없애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 동시에 우리 삶속에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필리 2,5)을 체험하게 해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가 사람들에게 거저 베풀어집니다.

 

이민족의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할 때 일어나는 변화의 의미를 설명하고 그 목적을 밝혀 줍니다. “나는 죽음을 겪으시는 그분을 닮아, 그분과 그분 부활의 힘을 알고 그분 고난에 동참하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필리 3,10-11). 그러므로 세례는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예식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며, 이 만남은 세례 받은 이에게 하느님 생명을 주고 진정한 회개로 불러 그의 전 실존을 형성시켜 줍니다. 은총으로 시작되고 지탱된 이 만남은 세례 받은 이가 그리스도의 성숙한 모습에 이르게 해 줍니다.

 

세례와 사순 시기는 특별한 관계로 묶여 있습니다. 사순 시기는 이 구원 은총을 체험하는 좋은 시기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부들은 교회의 모든 목자들에게 “사순 시기 전례의 고유한 세례 요소들”(전례 헌장 109항)을 더 많이 활용하도록 권고하였습니다. 실제로, 교회는 언제나 부활 성야와 세례를 연결시켜 왔습니다. 이 세례성사를 통하여 위대한 신비, 곧 사람이 죄에서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새 생명에 동참하게 되며,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바로 그 하느님의 영(로마 8,11 참조)을 받는 위대한 신비가 실현됩니다. 이 무상의 은총은 언제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되살아나야 합니다. 사순 시기는 예비 신자 기간과 같은 여정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이 여정은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오늘날의 예비 신자들에게도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그리스도인 삶과 신앙의 학교입니다. 참으로 그들은 자신의 전 실존을 형성하는 세례의 삶을 살아갑니다.

 

 

2. 우리가 열심으로 부활절을 향한 여정에 들어서려면, 한해의 전례 가운데 가장 기쁘고 장엄한 주님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려면, 하느님 말씀의 인도를 받는 것보다 더 적합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러한 이유로, 교회는 사순 시기 주일 복음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교 입문 단계들을 다시 밟아 보도록 권유하며 우리가 주님을 더욱더 가까이 만나도록 이끌어 줍니다. 예비신자들은 새로 나는 성사를 받을 준비를 하고, 세례 받은 신자들은 그리스도께 자기 자신을 더욱 온전히 바치며 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새롭고도 단호한 발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사순 제1주일은 이 지상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는 우리의 조건을 드러내 줍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유혹을 물리치셨던 그 싸움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는 은총,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힘을 주는 은총을 받아들이도록 우리 자신의 나약함을 깨달으라는 초대입니다(『어른 입교 예식』, 지침 25항 참조). 이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그분과 함께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에페 6,12)에 맞서 싸우는 치열한 전투를 담고 있다는 것을 강력히 보여 줍니다. 여기서 악마는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주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려 하는 사람은 누구든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승리자로 나타나시어 우리 마음에 희망을 불어넣어 주시고 악의 유혹을 물리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에 관한 복음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우리 눈앞에 보여 줍니다. 이 영광은 부활을 미리 보여 주고 사람이 하느님이 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사도들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마태 17,1) 올라가신 것처럼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이끄시어 하느님의 아들 안에서 자녀가 되어 하느님 은총의 선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받게 하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 이것은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현존 안에 깊이 잠기라는 권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날마다 우리 마음속 깊은 곳을 꿰찌르는 말씀을 전해 주시고자 하시며, 거기서 우리는 선과 악을 분별하고(히브 4,12 참조) 주님을 따르겠다는 우리 의지를 다집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요한 4,7)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사순 제3주일 전례에서 듣게 됩니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을 향한 하느님의 열정을 나타내고 우리 마음속에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요한 4,14) 선물에 대한 갈망을 일깨우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곧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을 “영과 진리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는 “진실한 예배자들”(요한 4,23)로 변화시켜 주시는 성령의 은혜입니다. 오직 이 물만이 선과 진리와 아름다움을 향한 우리의 갈망을 채워 줄 수 있습니다! 외아드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물만이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유명한 말처럼 “하느님 안에서 쉬기까지” 고달프고 목마른 우리 영혼의 사막을 적셔 줄 수 있습니다.

 

사순 제4주일 “태어나면서부터 눈 먼 사람”의 복음은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복음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묻습니다.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요한 9,35). 태어날 때부터 눈 먼 사람은 모든 신자들의 목소리로 “주님, 저는 믿습니다.”(요한 9, 38)라고 기쁨에 넘쳐 외칩니다. 이 치유의 기적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실 뿐 아니라 우리 마음의 눈도 열어 주시고자 한다는 표지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신앙이 한층 깊어지고 우리가 그분을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로 알아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삶의 모든 어둠을 밝혀 주시고 모든 이가 “빛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사순 제5주일에는 라자로의 부활이 선포됩니다. 이 때 우리는 우리 실존의 궁극적 신비와 만나게 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이 순간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마르타와 더불어 진실로 나자렛의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희망을 두는 때입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요한 11,27). 현세의 삶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이루는 친교는 죽음의 장벽을 넘도록 준비시켜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해 줍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한 믿음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은 우리가 우리 실존의 궁극적 의미에 눈뜨게 해 줍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진리가 인류 역사, 개인의 삶과 사회생활, 문화, 정치, 경제에 결정적이고 진정한 의미를 줍니다. 신앙의 빛이 없다면 온 세상은 미래도 희망도 없는 무덤 안에 갇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사순 여정은 파스카 성삼일, 특히 부활 성야에서 그 절정에 이릅니다. 세례 서약을 갱신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생명의 주님이심을, 곧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날 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생명의 주님이심을 다시 고백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제자가 되고자 성령의 활동에 응답하겠다는 우리의 굳은 약속을 다시 다짐합니다.

 

 

3. 우리는 세례성사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깊이 참여하여 우리 마음이 날마다 물질의 짐에서 벗어나게 하고 ‘세상’에 대한 자기중심적인 관계에서 자유롭게 해 줍니다. 그러한 관계는 우리를 피폐하게 만들고 하느님과 이웃에게 마음을 열어 자신을 내어주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사랑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1요한 4,7-10). 그리스도의 십자가, 곧 “십자가에 관한 말씀”은 인간을 새롭게 들어 높이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힘을 드러냅니다(1코린 1,18 참조). 그것은 가장 철저한 형태의 사랑입니다(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2항 참조). 사순 시기는 회개의 표현인 단식과 자선과 기도라는 전통적 실천을 통하여 우리가 더욱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단식은 다양한 동기로 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깊은 종교적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밥상을 더욱 가난하게 차려 이기심을 극복하고 은총과 사랑의 논리로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것의 결핍도 견딤으로써, 우리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 우리 곁에 계신 분을 발견하고 수많은 형제자매들의 얼굴에서 하느님을 알아보는 법을 배웁니다. 단식은 그리스도인들이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가난한 이웃들에게 더욱 마음을 열어 하느님 사랑이 이웃 사랑도 되게 하는 것입니다(마르 12,31 참조).

 

우리의 여정에서 돈에 집착하는 축재의 유혹에 자주 부딪치곤 합니다. 이는 우리 삶에서 하느님의 우선권을 훼손시키는 것입니다. 소유하려는 탐욕은 폭력과 착취와 죽음에 이릅니다. 이 때문에 교회는 특별히 사순 시기 동안 자선을 실천하도록 우리를 일깨웁니다. 자선은 나누는 힘입니다. 그렇지만 물신 숭배는 우리를 다른 이들에게서 멀어지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속이고 헛된 약속으로 현혹시켜 버립니다. 그것은 생명의 유일한 원천이신 하느님의 자리에 물질 재화를 올려놓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이 이기주의와 자신만의 일로 가득 차 우리의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고 자신을 속인다면, 어떻게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선하심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유혹은 성경 비유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자, 내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다.”(루카 12,19-20)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심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루카 12,19-20). 자선 행위는 하느님의 우선권을 일깨우고 우리의 관심을 다른 이들에게 돌려, 우리 아버지께서 얼마나 선하신 분이신지를 다시 깨닫고 그분의 자비를 받아들이게 합니다.

 

사순 시기 내내 교회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풍요롭게 들려줍니다. 우리는 말씀을 날마다 실천하고자 그 말씀을 묵상하고 새기면서 소중하고 필수적인 기도 방법을 배웁니다. 우리 마음에 계속 말씀하고 계시는 하느님께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면서 우리는 세례 때 시작한 신앙의 여정을 위한 양식을 얻습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가 시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가지게 합니다. 영원과 초월에 대한 전망이 없다면, 사실 시간은 단순히 미래가 없는 지평선을 항하여 걸어가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느님을 향한 시간을 찾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마르 13,31 참조)임을 깨닫고 “아무도 빼앗지 못할”(요한 16,22) 하느님과 맺는 내밀한 친교로 들어가는 이 시간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희망,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열어 줍니다.

 

결론적으로 십자가의 신비를 바라보도록 우리를 초대하는 사순 시기의 여정은 “죽음을 겪으시는 그분을 닮아”(필리 3,10) 우리 삶에서 깊은 회개를 이루게 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의 바오로 성인처럼 성령의 힘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 삶의 방향을 확고히 세우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기주의를 벗어나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본능을 극복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우리 자신을 열어젖히게 하는 것입니다. 사순 시기는 우리의 나약함을 깨닫고 우리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고해성사의 새롭게 하는 은총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를 향하여 결연하게 나아가는 은혜로운 때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구세주와 이루는 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여, 단식과 자선과 기도를 통하여 부활절을 향하는 회개의 여정이 우리가 받은 세례를 다시 발견하게 해 줍니다. 이 사순 시기에, 우리는 세례 때 우리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의 모든 활동을 비추고 이끌도록 그 은총을 새롭게 받아들입시다. 우리는 날마다 더욱 헌신적으로 참되게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세례성사가 의미하고 실현하는 것을 체험하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여정에서, 하느님 말씀을 신앙과 육신으로 낳으신 동정 마리아께 우리를 맡겨 드립시다. 그리하여 성모님께서 하신 그대로 우리도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합시다.

 

바티칸에서

2010년 11월 4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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