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강론자료

2016-03-24.....주님의 만찬 성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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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3-23 ㅣ No.2017

주님만찬 성목요일

탈출기 12,1-8.11-14         1코린토 11,23-26        요한 13,1-15

2016. 3. 24 이태원

주제 : 최후만찬인가? 성체성사제정인가?

사람은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다릅니다. 공통분모를 생각하면, 비슷한 기준을 찾아낼 수는 있겠지만,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개별을 본다면,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내용에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옳은 표현이 될 것입니다. 드러나는 말로는 건강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사람이라고 해도 몸 안의 다른 기관들을 걱정하는 사람의 자세와, 겉으로 드러나는 몸의 다른 부분의 조화를 생각하는 사람이냐는 차이는 개인의 경험과 삶의 자세에 따라 달라지는 차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런 구별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하는 지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은 없습니다.

 

사람이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사람이 실천해야 하는 옳은 행동을 알려주면, 그 말을 듣고 그 말이 올바르다고 인정하고 그 말에 따라 갈 거라고 예상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가 옳은 길을 알려주었는데도 그 말에 따라 살지 않는 사람을 만났을 때 안타깝다고 말하면 무엇이 달라질 것이고, 그가 올바른 행동을 한다면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에게는 어떤 이익이 생기겠습니까?

 

오늘은 성주간 목요일입니다. 전례에서 오늘 거행하시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행위에 대하여 사람들은 두 가지로 표현합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한 마지막 식사라는 것을 강조하여 부르고, 다른 하나는 신앙의 입장에서 그 일을 대하는 뜻으로 성체성사를 세우신 식사자리라고 부릅니다.

 

두 가지 표현 모두, 그 대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입장이 있으니 한쪽 편의 시각에서 다른 쪽을 그르다고 판단할 일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이 일을 바라보는 사람들인지 한 가지 기준을 정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말한 뜻의 한자표현인, 최후의 만찬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니면 신앙의 입장을 강조하는 성체성사를 제정한 특별한 순간이라고 해야 하겠습니까? 이렇게 물으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매일미사에서는주님만찬 성목요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으로 봐서, 그 안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어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최후의 만찬이라는 설명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합니다. 여러분은 두 가지 표현에서 어떤 것을 더 먼저 생각하겠습니까?

 

이 질문을 다시 한다면, 마지막 식사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이냐, 아니면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신앙인들과 교회공동체에 끝없는 힘을 주는 배경이 되는 성체성사를 세우신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이냐는 차이와도 같습니다. 제가 같은 내용으로 자꾸만 강요하지만, 여러분은 어떤 쪽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저는 지난주일, 주님수난성지주일의 강론시간에, 주일미사에서는 히브리사람들이 나뭇가지를 들고 구원자를 영접한 일에만 초점을 두고, 목요일에는 각각의 날짜에 중요하게 거행하는 전례를 묵상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에 따라서 오늘 하는 질문의 방향을 분리해서 대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신 예절을 전합니다. 한자로 표현하면, 세족례예식이라고 말합니다. 발을 닦아준다는 것의 의미를 좀 더 많이 생각하는 시간으로 지내야 할 시간입니다. 발을 닦아준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행하는 사람과 바라는 사람의 자세는 다를 것입니다.

 

요한복음이 전하는 세족례예절은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입니다. 동시에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는 성체성사제정에 대한 얘기가 요한복음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결론을 말하면, 공관복음에 나오는 성체성사제정의 얘기와 요한복음에 나오는 세족례예절은 같은 일을 대하는 서로 다른 입장이라는 뜻이 될 것입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다릅니다. 성체성사제정에 대한 모습은 우리가 미사를 할 때마다 반복하는 일이지만, 세족례예절은 1년에 한번쯤 거행하는 독특한 예절이고, 예절서에는 이 세족례예절은 반드시 거행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규정합니다. 특별한 예절이라고 말하면서도 거행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규정을 얘기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보다는 그 예절이 담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요즘 세상에도 돈과 권력의 힘으로 차별을 두는 신분제도는 남아있기는 합니다만, 2000년 가까운 세월 전에 있었던 것으로 전하는 말 그대로의 신분제도는 없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이 세족례의 의미를 생각해야 할 일입니다. 발을 닦아주는 것은 종이나 노예가 주인을 상대로 하는 일이었다는 것이 역사에서 찾아낼 수 있는 행동의 주체입니다.

 

그것을 아셨을 예수님이지만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면서 예수님은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고 단서조항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한번 드러나는 일로써 그 의미를 다하는 것은 아니고, 수시로 또 늘 반복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알아들어야 할 내용입니다. 신약에서 표현된 이 세족례의 예절의 원형은 탈출기 말씀이 전하는 구원을 위한 행동으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천하겠다는 빠스카의 모습이라는 것이 성경에 나타난 말씀을 근거로 전례에서 해석하는 일입니다.

 

사람은 모두 다 구원을 바랄 것입니다. 적어도 이 구원은 내가 원하는 순간에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더 그러할 것입니다. 구원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신앙에서 하는 해석은 인류를 죽음과 고통과 죄악에서 구해내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는 행동이 나의 변화만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이러한 뜻을 세상에 펼치는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하는 행동의 의미는 아주 큰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의미를 기억하여 행동하도록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행동한다면 과연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묵상할 시간입니다.

주님의 수난 성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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