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프란치스칸 영성43: 가난과 희생을 통해 그리스도의 동정(同情)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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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6-01 ㅣ No.1604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43) 가난과 희생을 통해 그리스도의 동정(同情)을 배우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모든 이들 특히 가난한 이들과 모든 약한 피조물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일깨워주시는 동정을 배울 수 있었다. 사진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성상.

 

 

10. 그리스도와 인격적 만남과 존재적 앎

 

① 존재의 위대한 사슬 안에서 그리스도의 마음과 하나됨: 동정(同情-compassion)

 

삼위일체 하느님이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계신다는 진리는 하느님의 영, 혹은 마음까지도 모든 것과 연결되어 존재하신다는 것을 내포하는 진리이다. 하느님께서 물질 세상을 초월해 계신 분이시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 물질 세상이 이미 하느님의 초월성이 부여되어 창조된 것이라면 하느님께서는 동시에 이 세상 안에 내재하시는 분이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세상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다른 모든 피조물과 모든 인간 피조물을 통해서 당신을 계시하시는 분이시며, 심지어는 다른 방법이 아니라 이 세상을 통해서만 당신을 계시하시는 분이시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육체를 지니신 인간 존재였듯이 우리도 그분의 영과 육으로 그분의 모습을 따라 창조되었기에 우리는 그분의 모상을 타고난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1221년 수도규칙」 23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늘과 땅의 임금이신 주님’(마태 11,25), 당신의 거룩한 뜻에 따라 그리고 당신의 외아드님을 통하여 성령과 함께 모든 영신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을 창조하셨으며, ‘당신의 모습대로 그리고 비슷하게’ 만드신 저희를 ‘낙원에 두셨으니’(창세 1,26; 2,15), 바로 당신 자신 때문에 당신께 감사드리나이다.”

 

이 관점에서 하느님의 육화와 모든 피조물에 대한 프란치스칸 신학이 발전되었다. 이것을 보나벤투라는 명료하게 발전시켰으며 특히 요한 둔스 스코투스가 더욱 발전시켰다. 창조계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에 앞서서 의도되었고 뜻하신 바였기 때문이다. 사도 바오로가 콜로새서 1,15-20에서 말하듯이, 그분은 모든 것의 본보기이시고 모델이시다. 성 보나벤투라는 우리가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모든 피조물이 다 그분의 지혜와 힘과 선을 나누어 받았지만, 특히 인간이 더욱 많이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런 것들을 알 수 있고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우리는 은총의 선물에 참여하도록 초대받았다. 즉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생명의 더욱 충만한 상태를 살도록 초대받은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거처에서 머물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고, 이것을 알고 기억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다. 우리가 예수님과 더욱 많이 닮으면 닮을수록 더욱 하느님같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더 많이 의식되도록 하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당신의 생명을 사시도록 하게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른 모든 피조물은 이 하느님의 내재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살아가지만, 우리 인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 의지로 인해 이 하느님의 내재를 보고 느끼며 표현하고자 하는 선택을 의지적으로 할 때 이것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더 하느님과 유사하게 창조되었기에 이를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하느님을 드러낼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프란치스칸 사상을 주의주의(主意主義)라고 한다. 프란치스칸 사상은 하느님께서 영원성으로부터 순수한 당신 의지로써 ‘사랑’ 자체로 존재하시고 이 세상의 창조를 이루시며 완성해 가신다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칸 사상에서는 하느님의 자유 의지를 부여받은 인간 역시도 같은 방식으로 다른 인간 피조물은 물론이고 모든 피조물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생명을 나누도록 창조된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궁극적 소명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통합하는 일이고, 이것이 바로 거룩함을 회복하는 일, 혹은 하느님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촉구하시는 ‘성화(聖化)’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우리더러 이것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만들어내라고 억지를 부리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의지를 통해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다른 모든 존재와 통합할 수 있는 모범을 이미 보여 주셨고, 또 우리 삶 순간순간에 성화하는 은총을 통해 우리에게 그러한 기회를 계속해서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모든 이들, 특히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나환우들과 온갖 병자들 안에서, 그리고 모든 약한 피조물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일깨워주시는 동정(同情-compassion)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 삶의 목적은 극단적이고 영웅적인 ‘가난’이나 ‘인내’, ‘희생’을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와 같은 마음을 지니는 것이었고, 결국은 이를 통해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지니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는 또한 자신의 가난과 병고, 그리고 연약함을 통해 우리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를 만났고, 다른 이들의 고통에 함께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는 그와 연결된 존재, 즉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5월 30일, 호명환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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