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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청년의 관점으로 경제를 재구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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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05 ㅣ No.1380

[새로봄] 청년의 관점으로 경제를 재구성하다

 

 

작년 8월 해인사 일원에서 2박3일 일정으로 두 차례 ‘청년희망캠프’가 열렸다. 해인사 주지 향적 스님이 취업 준비로 지친 이 시대 청년들의 몸과 마음에 안정과 쉼의 시간을 주고 희망과 열정을 재충전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이 캠프를 열었다. 캠프에는 혜민 스님, 유수상 목사님, 그리고 내가 특별 손님으로 초청 받아 참가하였고, 종파를 초월한 다양한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가톨릭 청년들도 더러 보였다.

 

 

청년들의 사회통합이 절실한 때

 

캠프에서는 해결책이나 대안을 찾기보다는 지친 청년들이 해인사에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도록 먼저 배려하였다. 그 가운데 청년들은 각자가 겪는 어려움을 서로 이야기하고 들어 주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 모임에서 나는 사회경제 영역에 속하는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 기업을 지금의 현실을 극복할 새로운 사회적 해법으로 제시하였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 즉 고착화된 사회적 불평등, 공공성의 부재, 배척의 경제, 생태위기 등의 문제들을 위기나 절망이 아닌 또 다른 기회로 파악하고 청년들이 지닌 창의력, 용기, 혁신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해법을 찾아보려고 했던 나의 시도를 캠프에 모인 청년들에게 소개하였다.

 

이 모임에 참석하면서 나는 우리 가톨릭교회가 어떻게 청년들에게 다가가야 할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교회가 청년 문제를 소극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적극적으로 껴안고 각 교구마다 가톨릭의 장점인 조직 인프라를 가동하여 이른바 ‘가톨릭 혁신 사회적경제 박람회’ 또는 ‘가톨릭 청년 창업경제’ 즉 ‘공유경제’(Economy of Communion)를 연다면 청년들의 사회 통합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교구의 가톨릭 경제인협회에서 1년마다 ‘청년 창업 경진 대회’를 열고 ‘청년 사회적 기업가’를 발굴하여 시상하고 응원해 준다면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이제는 가톨릭교회가 지금까지 해 오던 단순한 애덕활동이나 자선활동을 넘어서 더 창조적이면서 통합적인 경제활동으로 청년들에게 기회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헬조선’이라는 냉소적 태도를 극복하고 변화의 단초를 구할 수 있는 핵심 가치는 ‘함께하기’이고 ‘연대’이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 연대와 상호 신뢰가 없으면, 시장은 그 고유의 경제적 기능을 완수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신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데, 신뢰의 상실이야말로 심각한 손실입니다”(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회칙 《진리 안에 사랑》, 35항).

 

 

대안으로서의 ‘사회적 경제’

 

현재 망가진 대학은 이화여대만이 아니다. 시장논리에 지배되고 있는 전국 대부분의 대학에 적신호가 켜졌다. 아카데미의 순수성, 진리의 상아탑, 정의의 추구와 같은 말은 ‘취업’이라는 문제 앞에 맥을 못 춘다. 교수들도 학술진흥재단의 프로젝트를 빠른 시간에 해내고 교육부 사업을 수주하여 연구비를 따 와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경북 영천에 생태형 중·고등 대안학교를 설립하고 난 뒤에 그 경험의 콘텐츠를 가지고 대학 강단에 서 보니까 대학이 자본과 돈의 부역자가 되어 가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더 실감할 수 있었다.

 

비단 그뿐이 아니다. 취업 또는 창업 비즈니스라는 명목 하에 인문학과가 갑자기 통폐합되고, 하루아침에 융·복합이라는 텐트 아래 학생들을 모아들이니 교수들도 헷갈리고 학생들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내가 매일 겪는 대학의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나름의 대안으로 찾은 것이 ‘사회적 경제’였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진리 안에 사랑》에서 사회적 경제를 시민 경제와 친교의 경제(46항)로 규정한다. 3년 동안 대학에서 청년들의 성향과 특성에 맞는 배움의 틀을 조정하는 작업을 하면서 청년들의 세 가지 경향에 주목했다.

 

‘집중력 부족’, ‘참여 부족,’ ‘사회성 부족’이 그것이다. 청년들이 ‘디지털 정주민’이 되었기 때문에 디지털기기와는 늘 접속되어 있으나 실제적인 접촉은 꺼리는 문화적 자폐 상태이며, 디지털 기술과 소셜 미디어의 영향으로 축약되고 축소된 말과 글로 의사소통을 한다.

 

역설적인 것은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등 첨단 기술이 사람들을 더 가깝게 연결시키고 더 많은 것을 공유하게 하는 듯하지만, 그것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공동체 의식의 결핍을 낳았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경제, 사회적 기업가, 협동조합을 이루기 위해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세 가지 공간 장치를 설정하는 학습을 진행하였다. 그것은 바로 ‘사색 공간’, ‘창조 공간’, ‘협동 공간’이다. 집중력 부족을 사색 공간으로, 참여 부족을 창조 공간으로, 사회성 부족을 협동 공간으로 내재화시키는 작업을 현장과 강의실에서 시도하였다. 그들이 취업에 대한 불안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그리고 오늘날 시장경제에 대한 사회경제적 대안을 직접 현장에서 보고 느끼고 겪을 수 있도록 지역기반 학습을 제공하였다.

 

 

통합적 의식 성찰

 

청년들은 누구보다도 시대 징표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사실 메르스 사태, 양남 지진, 최순실 국정 농단 등의 사건들 중 우리와 무관한 것은 하나도 없다.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의 집단 병리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조류독감으로 3000만 마리의 가금류가 집단 살처분되는 상황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모두 구제역, 광우병, 그리고 조류독감에 원인을 제공한 공범자일 수 있다.

 

통합 생태론(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4항)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 운명체라는 자각에서 나온 것이다. 닭이 온전하지 않다면 인간도 온전할 수 없다. 통합 생태론은 통합적 회개를 수반한다(《찬미받으소서》, 216-221항).

 

청년들은 지금의 경제체제와 강박적인 소비 생활양식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사색과 성찰을 통해 그것을 비판적이고 분석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 기도하고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청년들이 현장 중심으로 그들만의 프로젝트를 설계하도록 도와야 한다. 지속가능한 삶과 시급한 사회 이슈나 생태 이슈들에 관심을 갖고 그 문제를 인식하며 사회적으로 소외된 공동체와 협업할 수 있도록 창조적 공간을 열어 주어야 한다.

 

강사가 주도하는 성과형 계획은 청년들이 참여를 꺼리지만 조별 혹은 동아리별로 자신들의 창의력을 발휘하여 과제를 설계하는 것은 선호한다. 청년들은 ‘낙수 효과’에 따른 기부와 자선의 경제활동보다는 당대의 시장 경제 안에 완전히 새로운 해법으로 시장에 도입하는 것을 도전으로 삼는 것을 좋아하는 탁월한 경제 주체들이다.

 

나는 청년들이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을 모색하는 공동체적 경제, 즉 사회적 경제에 더 적극적이고 협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폐 현수막으로 신발을 제작하여 제3세계에 보내는 동명대 창업 동아리는 크라우드 펀딩 등으로 시민 투자 자금을 유치해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청년들이 단순하게 돈벌이를 위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하는 일이 환경, 경제, 사회, 문화, 일상생활, 공동선과 정의 그리고 정치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통합적인 자각이다. 우리는 지금 촛불 광장에서 그 중요성을 강렬하게 체험하고 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종종 하고 싶은 것, 즉 희망이 무엇인가 물으면 즉시 취업이라고 대답한다. 그만큼 돈이 중요하고 경제가 중요하고 취업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통합적 성찰’이다. 이 성찰은 단순한 종교적 회개가 아니다. 취업 이전에 ‘윤리적인 소비자’가 되기 위해 ‘통합적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적지 않은 사회적 기업가들이 윤리적인 소비에 역주행하고 있으며 정부 보조금 사냥꾼들도 적지 않아 보인다. 청년들의 일상적인 경제활동이 만약 인신매매, 노동 착취, 환경 파괴 등과 관련이 있다면 결과적으로 청년들이 원하지 않는 불평등과 파괴적인 경제활동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창조를 위한 ‘통합적 의식 성찰’이다.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4차 산업 혁명보다 더 근본적인 혁명은 폭력적인 ‘동물의 경제학’의 부역자로 나서지 않고 식물의 경제학 즉 경제와 대지가 만나는 곳에 서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 그 편에 서기를 바란다.

 

* 정홍규 신부는 대구대교구 소속으로 경북 영천에 대안학교인 산자연학교를 설립하였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 사회적경제대학원 원장이며, 대구 경북지역에서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 기업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성서와함께, 2017년 2월호, 정홍규 아우구스티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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