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 (수)
(백)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교의신학ㅣ교부학

[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55: 장 르클레르크 (상)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8-09 ㅣ No.410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55) 장 르클레르크 (상)

그리스도인 영적 여정 연구하는 영성신학 기틀 다져



- 20세기 영성신학자 장 르클레르크


영성신학 분야에서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를 추천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다른 신학 분야에 비해 독립 학문으로 자리매김하고 본격적으로 연구한 지 100여년밖에 되지 않은데다가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학문으로서의 영성신학을 접하고 제대로 살펴보기 시작한 지는 불과 10여 년밖에 되지 않기에 어느 학자를 추천하더라도 모두 낯설고 관심 갖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18~19세기에는 주로 ‘신비신학’과 ‘수덕신학’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다가 20세기에 와서 서서히 ‘영성신학’이라 불리며 그리스도교인의 영적 여정에 대한 통합적 연구가 이뤄진다. 다만 공교롭게도 대부분 프랑스 출신의 다양한 수도회 소속 신학자들이 지난 몇 세기 동안 신비신학과 수덕신학을 연구하면서 학문으로서 영성신학의 기틀을 만들었다. 이에 필자도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 출신 베네딕도회 영성신학자인 장 르클레르크(Jean Leclercq, 1911~1993)를 소개하고자 한다.


평수사 원했으나 사제로 서품

르클레르크는 1911년 1월 31일 프랑스 북부 아베느(Avesnes)에서 태어났다. 얼마 후 제1차 세계대전(1914~18)이 발발하면서 그는 어린 시절에 그다지 건강하지 못하게 지냈다. 만 16세가 되던 1927년 그는 수도자가 되길 바라면서 룩셈부르크 북부 클레르보(Clervaux)에 위치한 생-모리스(Saint-Maurice) 수도원에 입회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하지만 그의 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르클레르크는 그냥 평수사로 살기를 원했는데, 이와 같은 원의가 수도원에 의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수도원 의향에 순명하기로 하여 이듬해인 1928년에 수도원에 입회할 수 있었고, 1930년에 수도서원을 하였으며 1936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1933~1937년에 르클레르크는 로마 성 안셀모 대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하게 되었다. 이 기간 중 그는 ‘신비신학’이라는 주제로 활발하게 연구를 하던 베네딕도회 신학자 안셀름 슈톨츠(Amselm Stolz, 1900~1942)에게 많은 영향을 받게 됐고, 훗날 그와 같은 주제로 저술 활동을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937년 박사 학위 논문 작성을 시작하게 되었을 즈음에, 르클레르크는 파리에서 잠시 강의를 맡기도 했다. 결국 그는 1940년에 파리 가톨릭 대학교에서 자신의 학위 논문을 마칠 수 있었고 1942년에 출판했다. 르클레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1939~45) 기간 중 파리와 프랑스 서부 리구게(Ligug)에 소재한 수도원에서 지냈다.
 

스승 질송의 영향과 베르나르도 연구

이 시기에 르클레르크는 자신의 앞날에 또 다른 큰 영향을 끼치게 될 에티엔느 질송(Etienne Gilson, 1884~1978)을 파리에서 만나 중요한 조언을 듣게 됐다. 중세 그리스도교 철학사를 연구하던 질송은 르클레르크에게 11~12세기의 수도원운동(Monasticism)에 대해 연구해 볼 것을 제안했다. 결국 질송의 제안이 계기가 되어 그는 이후 중세 그리스도교 수도원운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신학자가 됐다.

베네딕도회 수도자인 장 르클레르크는 중세기의 유명한 신비신학자 시토회 수도자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에 대한 가장 권위있는 연구자가 됐다. 사진은 바티칸 정원에 있는 베르나르도 성인의 석상. [CNS]
 

1946년에 르클레르크는 먼저 중세 베네딕도회 쎌르의 베드로(Peter of Celle, 1115~1183), 가경자 베드로(Peter the Venerable, 1092~1156), 패캉의 요한(John of Fcamp, ?~1079)에 대한 저서들을 발표하였다. 또 1948년에는 완덕의 삶에 대한 주제와 수도원의 용어를 다룬 저서를 비롯하여 시토회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Bernard of Clairvaux, 1090~1153)에 관한 저서 「신비체험가 성 베르나르도」(S. Bernard Mystique)를 발표하였다.

이 연구가 계기가 돼 르클레르크는 자신의 생애에서 중요한 연구 주제 중의 하나를 맞게 되었다. 즉 1948년에 시토회 총장은 베네딕도회 젊은 수도자인 르클레르크에게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저서들에 대한 비판본 작업을 의뢰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르클레르크는 샤를 탈보(Charles H. Talbot)와 앙리 로쉐(Henri Rochais)의 도움을 받아 공동 작업으로 약 30년에 걸쳐 베르나르도 저서의 비판본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이 방대한 프로젝트는 1957~1977년에 총 8권으로 구성된 「성 베르나르도 작품」(Sancti Bernardi Opera)이 출간되면서 마무리되었다.

르클레르크는 비판본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베르나르도에 관한 2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특히 1962~1992년에 베르나르도에 관한 연구를 모은 총 5권으로 구성된 「성 베르나르도와 그의 작품에 대한 연구 모음집」(Recueil d’tudes sur S. Bernard et ses crits)을 발간하였다. 결국 르클레르크는 베네딕도회 수도자이면서도 오늘날 시토회 수도자였던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연구자가 될 수 있었다.


수도신학 연구

한편, 르클레르크는 모교인 안셀모 대학교에게 신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면서 자신의 생애의 또 다른 중요한 연구 주제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는 1955~1956년에 가르쳤던 강의 내용을 1957년에 「학문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에 대한 갈망」(Amour des lettres et le dsir de Dieu)이라는 제목으로 저서를 출간하였다. 이러한 연구가 계기가 되어 르클레르크는 중세 ‘스콜라 신학’과 대조가 되는 ‘수도 신학’(Monastic Theology)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9년 10월 28일에 있었던 일반 알현 강론에서 르클레르크가 정한 이 저서 제목은 ‘수도 신학’의 특징을 지혜롭게 잘 정의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이후에도 르클레르크는 수도원운동에 대한 연구를 계속 하면서, 1968년에 「수도원운동의 모습, 어제와 오늘」(Aspects du monachisme, hier et aujourd’hui)과 1969년에 「수도의 삶과 관상의 삶」(Vie religieuse et vie contemplative)을 출간하였다.


활동하는 학자

르클레르크는 학자로만 머무르지 않고, 1960~1980년대에 자신의 연구 분야와 관련된 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먼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베네딕도회와 시토회가 전 세계에 수도원을 설립할 때, 르클레르크는 ‘수도원 연맹’(AIM: Alliance Inter Monastres)을 도와서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강의와 수도원 설립에 관한 조언을 하였다. 또 타종교와 수도생활에 관한 대화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수도원 타종교 대화’(DIM: Dialogue Interreligieux Monastique)라는 기구를 창설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1980년대 중반에 르클레르크는 정교회 신학자 존 메이엔도르프(John Meyendorff, 1926~1992)와 함께 공동 편집자가 되어 그리스도교 영성역사에 관한 작품을 기획하여 1985년에 「그리스도교 영성 제1권: 초세기에서 12세기까지」(Christian Spirituality I. Origins to the Twelfth Century)를 편찬하여 발간하였다.

르클레르크는 1990년 로마에서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탄생 9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여한 이후 은퇴해 자신이 입회하였던 생-모리스 수도원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93년 10월 27일에 마침내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평신도 신학자 버나드 맥긴(Bernard Mc-Ginn)은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수도자로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과 함께 장 르클레르크를 꼽았다. 머튼은 영어권에서 활동한 영성작가라서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면, 르클레르크는 불어권에서 활동한 영성신학자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소개될 기회가 적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가 장 르클레르크가 우리에게 잘 알려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전영준 신부 :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1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영성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 퇴계원본당(1999~2002)과 가양동본당(2204~2008) 주임을 역임했으며, 2008년부터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영성신학 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사도직) 총무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성경에서 시작하는 영성생활」(가톨릭대학교 출판부) 등이 있다.

[평화신문, 2014년 8월 10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영성신학 교수,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2,48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