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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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56: 장 르클레르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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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8-17 ㅣ No.411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56) 장 르클레르크 (중)
 
신학은 신앙에 수반하는 ‘거룩한 학문’



장 르클레르크는 영성신학 분야 안에서도 특히 수도신학에 대해서 심혈을 기울여 집대성하는 업적을 남긴 신학자다. 사진은 독일 남부 에탈에 있는 베네딕토 수도원 성당 전경. [CNS]


신앙인이든 아니든 일반인이 ‘신학’(神學, Theology)이라는 학문 분야를 접하게 되면 하느님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단편적인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신학은 주제별로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분류된 한 분야 안에서도 더 자세히 세분될 수 있다. 필자가 영성신학자로 소개하고 있는 장 르클레르크는 영성신학 분야 안에서도 특히 수도신학에 대해서 심혈을 기울여 집대성하는 업적을 남긴 신학자이다. 르클레르크가 이러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질송의 제안을 받고 중세 수도원운동에 대한 주제를 연구한 것과 큰 연관이 있다.


‘신학’이라는 학문

고대는 아직 신학이 다양한 분야로 구분되지 않은 때였다. 그 당시 교회학자, 즉 교부들은 교회의 선교사명에 부응하면서 기본적인 교리교육을 정립하는 데 매진하였다. 그 중에서도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해석하는 일을 즐겨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꼭 믿어야 할 신앙 원리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그런 까닭에 교부들의 신학 활동은 오늘날 성서신학과 유사함을 지니면서도 확연히 구분되는 차이점이 있다. 다시 말해서 교부들은 성경을 연구할 때 지적 능력을 가지고 사변적으로만 연구하지 않고, 묵상 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성경말씀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함께 기울였다.

중세 초기 유럽 상황이 여러 모로 어려운 가운데 더 이상 출중한 신학자들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교부 시대는 일단락되었지만, 고대 교부들이 실천하던 신학 방법론은 수도원 안에서 수도자들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고대와 비교하여 큰 차이가 없어서 특별한 이름을 부여하여 고대와 중세 초기의 신학을 구분하지 않다가 중세 중기에 들어와 새로운 학문 방법론이 나타나면서 함께 새로운 구분이 생겨나고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중세 중기 유럽 사회가 안정되자 그 동안 수도원에서 유지해 왔던 학문적 열정과 학교 제도를 일반 사회에서도 실천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유럽 사회에는 대학들이 설립되고 기원전 그리스 철학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지성적인 탐구의 분위기가 모든 학문 분야에 퍼져 나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교회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교회 학자들도 그리스 철학을 연구하여 철학적 방법으로 하느님을 설명하고자 시도하면서 스콜라 철학과 스콜라 신학이 출현하게 되었다. 신학자들은 스콜라 신학을 통해서 계시된 하느님의 진리를 인간의 지성으로 헤아려 보고자 세상 학문의 방법론을 적용하여 연구하였고, “나는 이해하기 위하여 믿는다”라는 공리(公理)를 만들었다. 심지어 스콜라 신학자들은 성경말씀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영적 묵상보다는 지성적 사색을 더 선호하였다. 이렇게 중세 중기를 기점으로 체계를 갖추게 된 스콜라 신학은 인간 지성으로 계시된 진리를 이해하려고 하는 오늘날 교의신학의 기초가 되었다.

교회 안에서 스콜라 신학이 자신의 성격을 분명히 하자, 베네딕토회와 시토회를 비롯하여 중세 중기까지 설립된 몇몇 수도회에서 보전하였던 교부들의 성경연구 방법론이 상대적으로 다른 입장에서 분명하게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수도자들은 실천적인 영성이 제외된 학문탐구의 대상으로서의 신학만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즉, 수도자들은 스콜라 신학자들이 소위 객관적이라는 학문 방법론의 권위에 의탁하여 성경말씀의 의미를 조회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 성경말씀 안에서 활동하시는 신적 계시의 능력에 의지하여 하느님의 신비를 이해하고자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나는 체험하기 위하여 믿는다”라는 공리를 만들었다. 수도자들이 교부신학을 근간으로 하여 자신들만의 고유한 신학 방법론을 발전시킨 시점이 공교롭게도 중세 중기에 정점을 이루었다.

오늘날 신학자들은 중세 수도자들의 이러한 활동들을 탐구하면서 그 당시 분위기와 주장을 ‘수도원운동’이나 ‘수도신학’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연구하였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수도신학이 수도자들의 수도원 생활을 단순히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도신학은 수도자들이 성경말씀을 어떤 자세로 바라보고 묵상하며 기도하였는지에 관한 전 과정을 객관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그들의 영적 여정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규명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도원운동의 중심에는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르클레르크의 중세 수도원운동 연구

장 르클레르크는 이러한 중세 수도원운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신앙인이 영적 발전을 도모하고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며 구원에 다다를 수 있도록 하는 ‘신학’을 마련하고자 새로운 개념을 소개하였다. 즉 르클레르크에 따르면, 신학은 다른 여타 학문과 같은 단순한 하나의 ‘학문’이 아니라, ‘거룩한 학문’이고 ‘경건한 교리’이며 ‘지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을 가르치는 것은 교회가 자신의 분명한 직무를 통하여 인류의 구원을 위해 훈련하는 일이며, 신학자는 그리스도인을 향한 자신의 의무를 생각하여 오로지 단순한 개인의 만족만을 위해 공부하거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적으로 유용한 직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르클레르크에 따르면, 신학은 ‘초월성’내지 ‘탁월함’으로 특징지어지기 때문에 철학적인 원전이나 인간 지성의 생산물보다는 그리스도가 계시해 준 것이나 교회 전승에 의해 보존된 것을 그 출발점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신학은 신앙의 신조에 관한 지성을 찾기에, 하느님 자신의 빛으로 비춰진 신학은 자신의 내적 생활 안에서 하느님 자신과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모든 것을 숙고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학은 실질적으로 하느님에게 일치시킨다.

신학은 이렇게 신앙의 목적에 대한 분명한 증거, 일반 신앙인들의 중요한 증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므로, 신학자는 신앙의 진리에 관해서 지적인 탐구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신학은 신앙에 수반하는 학문이고 이렇게 신앙에 관한 탐구를 동반하기 때문에, 신학은 때로는 부정확하게 정의될 수 있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르클레르크에 따르면, 신학은 우리의 범위 안에서가 아니라 신학 자체의 범위 안에서 학문이라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견해에 따라 14세기 토마스주의자들도 신학은 정확하게 언급된 학문이지만 불완전한 상태에서 우리에게 사로잡혔다고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중세 수도원운동에 대한 르클레르크는 연구는 중세 당시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고대 교부신학이 중세에 수도신학과 스콜라신학으로 분화되어 자리매김하는 과정과 특징을 알아듣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영성신학의 관점에서 보면, 포괄적인 개념에서의 영성신학 안에 세분화된 수도신학이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이 수도신학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유효한 관점을 제공해 줌으로써 수도자들뿐 아니라,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영적 발전을 위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밝혀준다. 그러므로 신학 탐구에는 영성생활이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일반알현 강론 말씀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신학이 지닌 기도의 차원을 사랑이 생생히 일깨울 때, 이성으로 얻은 지식은 넓혀집니다. 진리는 겸손을 가지고 탐구하며, 경이로움과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한 마디로 지식은 진리를 사랑할 때만 성장합니다. 사랑은 지성이 되며, 진정한 신학은 마음의 지혜가 되어, 믿음과 믿는 이들의 삶을 이끌고 받쳐줍니다.”

[평화신문, 2014년 8월 17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영성신학 교수,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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