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강론자료

2016-03-29.....부활팔일축제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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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3-29 ㅣ No.2022

 

부활 제1주간 화요일

사도행전 2,36-41                     요한 20,11-18

2016. 3. 29. 이태원.

주제 : 보는 것과 듣는 것

사람은 자기의 삶에서 경험한 것을 매우 중요한 삶의 근거나, 혹은 진리의 근거로 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동양에서 사용하는 말에도 한번 보는 것을 100번을 듣는 것과 비교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사람이 경험으로 계산하는 보는 것이 정말로 이러한 의미를 지녀야만 하는 것일까요? 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경험하는 것의 근원이라고 말하는 듣는 것과의 상관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일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오늘은 부활시기의 팔부축일에서 사흘째 되는 날입니다. 지금처럼 하루 이틀을 세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지내는 시기가 어느 때인지는 구별할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그런 시기에 따라 내가 갖는 삶의 자세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먼저들은 독서의 말씀은 베드로사도의 설교내용입니다. 그 시기가 부활직후는 아니고, 성령강림이 있고 난 다음의 일이지만, 우리가 읽는 전례말씀에서 그 선포된 시기는 내용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듣는 사람이 그 시기를 생각하여 구별하고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 새겨들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베드로사도의 말씀은 부활하셨다는 내용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유대인들에게 주님과 메시아가 되신 분이라고 선언합니다. 그 말의 의미를 우리는 그저 지식의 하나정도로만 이해하지만, 유대인들에게 다가온 의미는 달랐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3천명이 세례를 받았다는 마치도 상상에 가까운 소식을 전합니다만,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이렇게 변화를 가져온 부활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저도 말로 설명하는 사람이니, 말하는 내용에 한계가 있어 답답합니다만, 그렇다고 그러 감정을 벗어날 다른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막달라여인 마리아는 예수님의 모습을 자기 눈으로 봅니다. 하지만 눈으로 본 모습으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것보다는 다음 순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통해서 예수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만, 사도들을 만났을 때에는 자신은 봤다고 선언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일의 의미를 다르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겠지만, 우리는 귀로 듣는 신앙에 관련된 내용을 과연 어떻게 대하는 사람들이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눈으로 봐야 믿는 것일까요? 귀로 듣기만 해서는 무엇이 부족한 것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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