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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58: 루이 부이에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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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09 ㅣ No.414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58) 루이 부이에 (상)

모든 교파의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보편적 영성 일깨워



20세기를 빛낸 또 한 명의 영성신학자를 추천하기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오늘날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인물은 영적 묵상집과 에세이가 한국에 많이 소개된 영성작가인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과 헨리 나웬(Henri Nouwen, 1932~1996) 혹은 안셀름 그륀(Anselm Grn, 1945~) 등일 것이다. 필자는 영성신학을 본격적으로 접한 지 10여 년밖에 되지 않는 한국 가톨릭교회에 그나마 한 권의 책이라도 번역되어 소개된 몇몇 영성신학자 가운데 한 명인 루이 부이에(Louis Bouyer, 1913~2004)를 소개하고자 한다. 독특한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부이에는 20세기에 유럽권에서뿐만 아니라, 영미권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였고, 많은 저서도 남긴 신학자이기에 우리가 살펴볼 충분한 의미가 있는 인물이다.


개신교 목회자 꿈꿔

루이 부이에는 1913년 2월 17일에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소시민계층에 속했는데, 특히 부모님은 프랑스 루터교 신조에 가까운 프랑스 개혁교회 소속 개신교 신자였다. 부이에는 장래 희망으로 교회 목회자를 꿈꾸면서 프랑스 개혁교회나 감리교회와 접촉하기도 하였으나, 최종적으로는 루터교회와 연결의 끈을 만들었다. 부이에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에 프랑스 개신교 신앙 안에 다양한 주장들에 대한 일치 운동을 전개하는 데에 관심을 가졌다. 그런 까닭에 파리에 소재한 개신교 신학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할 무렵에는 파리에 있는 영국 성공회와 정교회와도 접촉하려고 시도하였다.

부이에는 파리에서 시작한 공부를 프랑스 북동부 지역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에 있는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신학대학에서 끝마칠 수 있었다. 그는 루터교 신학을 중심으로 공부하고 학사학위를 취득했지만, 그의 학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영국 성공회 사제였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 1801~1890)이었다. 아마도 이 주제가 훗날 부이에의 장래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는 영향 중에 하나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그리고 부이에는 1936년에 스트라스부르에서 루터교 목회자로 안수받았다.

부이에는 계속해서 신학석사 과정을 공부하였고, 아타나시오 성인의 신학을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을 작성하였다. 훗날 사람들은 부이에가 아타나시오 성인의 사상을 공부하면서 가톨릭교회 신조를 잘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1938년에 부이에는 자신의 첫 번째 신학 저서인 「네 번째 복음서」(Le quatrime vangile)를 출판하였다. 이 책에서 부이에는 요한복음서의 교회론과 성사론에 대한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 1902~1999)의 기본적인 사상을 받아들였다. 스트라스부르 출생인 쿨만은 루터교 전통을 따르는 신학자였지만, 교회일치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인물로서 루터교와 가톨릭교회가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 공부를 끝마친 부이에는 파리 소재 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하는데, 스트라스부르 시절부터 파리 시절까지 그는 러시아 출신 이민자들을 만나는 기회를 가지면서 정교회에도 개방된 자세를 갖게 되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부이에는 가톨릭교회에 가까이 다가갈 기회도 갖게 되었다.

루이 부이에는 루터교 목회자였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했는데, 그의 개종에는 성공회 사제였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복자 헨리 뉴먼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사진은 지난 2010년 9월 헨리 뉴먼 추기경의 시복식 장면. [CNS 자료사진]


가톨릭 신앙 받아들여

결국 1939년에 부이에는 자신의 목회 활동에서 떠나기로 하고 거의 일 년 동안 영국의 옥스퍼드에 머물면서 앞으로 할 일을 숙고하고 난 후, 같은 해 12월 말경에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 위치한 생-방드릴(Saint-Wandrille) 베네딕도 수도원 성당에서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다. 때마침 부이에는 오라토리오회 총장 신부로부터 파리 근교 센에마른(Seine-et-Marne)에 위치한 쥬이 신학원(Collge de Juilly)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것을 제안받고 2년간 그들을 가르치다가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게 되었다. 그 즉시 부이에는 파리 가톨릭 대학교에서 사제수품 준비를 위한 신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이브 콩가르(Yves Congar, 1904~1995)는 부이에를 눈여겨보고, 1943년에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는 총서 시리즈에 부이에의 석사학위 논문 「성 아타나시우스의 신학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강생」(L’Incarnation et l’glise Corps du Christ dans la thologie de saint Athanase)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부이에는 1944년에 드디어 모(Meaux) 교구 주교에게 사제로 서품되었고, 1950년에는 석사학위 논문 주제를 발전시켜 역시 아타나시오 성인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였다. 박사학위를 받은 즉시, 부이에는 파리 가톨릭 대학교에 교수로 임용되어 그리스도교 영성 역사를 주제로 강의를 시작하면서 1962년까지 같은 대학에서 영성신학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을 강의하고 저서를 출판하였다.


「영성생활입문」 등 저술

이 시기에 부이에의 대표적 저서로는 1950년에 「수도원 생활의 감각」(Le sens de la vie monastique), 1952년에 「성경과 복음」(La Bible et l’vangile)과 「뉴먼 그의 생애, 그의 영성」(Newman. Sa vie, sa spiritualit), 1955년에 「교회에서 개신교주의에 대하여」(Du protestantisme l’glise), 1957년에 「지혜의 옥좌」(Le Trne de la Sagesse), 1960년에 「영성생활입문」(Introduction la vie spirituelle), 1961년에 「신약성경과 교부들의 영성」(La spiritualit du Nouveau Testament et des Pres) 등이 있다. 이중에 「영성생활입문」은 지금까지 한국에 번역된 부이에의 유일한 책이다. 또한 영성역사를 주제로 한 「신약성경과 교부들의 영성」 이외에도 부이에는 같은 해인 1961년에 공동 작업으로 출판한 「중세 영성」(La spiritualit du Moyen Age)과 1965년에 저술한 「정교회 영성과 개신교와 성공회 영성」(La spiritualit orthodoxe et la spiritualit protestante et anglicane)을 묶어 세 권으로 구성된 그리스도교 영성 역사 시리즈를 편찬하였다.

이렇게 영성신학을 주제로 강의하던 시기에 또 다른 한편으로 부이에는 전례사목센터(Il Centro di Pastorale Liturgica)와 함께 전례에 관한 주제들을 연구하면서 저서들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또한 부이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준비 단계에서부터 고문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고, 공의회가 끝난 이후에도 전례 개혁을 위한 위원회 고문으로 참가하였다. 1969년에는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국제신학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어 발타사르(H.U. von Balthasar), 라너(K. Rahner), 라칭거(J. Ratzinger)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60년대 이후 그는 미국 인디애나 주에 위치한 노트르담 대학을 비롯해 수도 워싱턴의 가톨릭대학교, 샌프란치스코의 가톨릭대학교 등을 다니며 1990년대까지 강의했다. 하지만 이런 여정이 무리가 되었는지 병을 얻게 되어 부이에는 유럽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부이에는 자신을 가톨릭 신앙으로 받아준 생-방드릴(Saint-Wandrille) 베네딕도 수도원에 손님으로 머물면서 오랫동안 알츠하이머병에 시달리며 고생하였다. 결국 부이에는 2004년 10월 23일 세상을 떠났고, 수도원 공동묘지에 묻히게 되었다.

물론 부이에는 영성신학만을 연구하고 가르친 학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부이에는 다양한 종교적 체험을 바탕으로 교회일치 차원에서 모든 교파의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보편적 영적 여정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했기에, 오늘날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영성신학자 가운데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평화신문, 2014년 9월 7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영성신학 교수,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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