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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 순교의 의미와 순교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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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8-05 ㅣ No.1328

순교의 의미와 순교정신



우리는 2012년 10월부터 2013년 11월 그리스도 왕 대축일까지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하는 ‘신앙의 해’를 의미 있게 지냈다. 우리는 매 주일 미사 때마다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이 신앙고백은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한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여러 번 신앙고백을 요구하셨다. 특히 베드로에게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15 이하) 하고 세 번이나 다짐을 받고서야 당신 교회를 맡기셨다(마태 16,18 이하 참조).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나타내는 최고의 방법은 자기 생명을 바쳐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박해가 심했던 초기 교회의 사도들과 신자들은 순교로써 믿음을 고백하였으며, 따라서 우리 교회는 수많은 신앙의 증거자, 곧 순교자들을 가지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렇게 볼 때 교회가 시작되면서 박해는 따라왔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교회사를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박해를 통해 순교가 이어지는데, 그러면 순교는 무엇이고 순교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가 궁금해진다. 더 나아가서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순교정신 곧 순교자적 삶은 어떤 삶일까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 천주교회 역사에서 일어났던 상황들을 보면서, 교회의 여러 학자들이 기술하고 말한 내용들을 간추려 정리하며 순교정신을 되새기려 한다.


1. 박해와 순교의 상관관계

아시다시피 한국 천주교의 태동은 1779년 젊은 유학자들이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서양서적을 탐구하면서 시작되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서 그 빛을 보게 되었다(북경 구베아 주교의 편지 참조). 당시에는 유학이 정신적 문화적 사상적 지주로 자리 잡고 있어 당시의 천주교 교리와는 차이가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조상 제사 금령’이 그것이다.

조선보다 약 200년 앞서 받아들였던 중국의 천주교는 마태오 리치 신부를 비롯한 예수회 회원들의 노력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에 배치되지 않는 한에서 중국 고유의 문화 자산을 수용하는 적응 입장을 채택함으로써 포교에 전념하였다. 그런데 예수회보다 반세기 뒤에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펼치기 시작한 파리외방전교회 등은 조상제사와 공자 공경이 미신적 우상 숭배 행위로서 천주교 신앙 교리에 어긋난다고 주장하여 예수회원들의 적응주의 선교 방식을 반대하였다. 꽤나 오랫동안 논쟁을 벌인 뒤에 교황의 교서반포를 통하여 예수회의 주장이 금지되고 중국에서 해산된 후에야 논란이 종식되었다.

일찍부터 유교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조선의 상황, 즉 충효가 근간을 이루는 사회에서 조상제사가 교리에 위배되는 천주교인들의 모임과 신자들의 활동은 차츰 주변의 시선을 끌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1791년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가 순교를 하면서 시작된 박해는 1세기가 넘게 계속되면서 1만 명 이상(학자에 따라서 2만 명 이상으로 보기도 한다) 순교를 하게 된다. 또한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일어났던 박해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희생된 순교자들을 포함하면, 엄청난 순교자들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면서 신앙을 지켰다.


2. 순교의 의미

그러면 순교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순교(殉敎)란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죽음을 당하는 일을 뜻한다. 조선 후기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순교에 해당되는 용어로 ‘치명(致命)’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이는 한국 교회의 고유 용어로 1960년대까지도 사용되고 있었다. 이 단어는 원래 군자나 사대부와 같은 예(禮)를 알고 실천하는 계층이 특정한 가치를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자기희생적인 행동을 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고상한 행동으로 찬미되고 있었다. 조선 후기 대부분의 순교자들은 신분이 높지 않은 일반 백성들이었다. 이들이 ‘치명’이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고귀한 가치를 실천하는 주체가 되는, 신분의 높고 낮음이 없다는 평등사상을 이해하게 된다.

가톨릭 대사전에서, 순교는 다음의 세 요소를 포함한다.

첫째로 실제 죽음을 당해야 하고, 둘째로 그 죽음이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를 증오하는 자에 의해 초래되어야 하며, 셋째로 그 죽음을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를 옹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순교는 인간의 가장 소중한 생명을 바침으로써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행위이며,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존재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교의 목표는 최고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으며, 그 가치는 최고의 존재자를 긍정하는 일이다. 또한 한 인간이 다른 인격을 긍정하는 것은 사랑이므로 순교는 사랑의 행위이다.

어원적으로도 순교자(Martyr)는 그리스어 ‘Martus’에서 기인한 것으로 ‘증인’, ‘증거자’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넓은 의미로서의 순교는 단순히 어떤 진리를 위해 죽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순교는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삶과 온전히 일치하고 본받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증거와 구원사업에 완전히 참여하는 것이다. 그 결과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게 된다.

일찍이 오리게네스 교부는 신자들이 일상생활 가운데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자기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는 양심의 일상적인 순교라고 보았다. 병인박해 시기에 가까스로 죽음을 피하고 탈출했던 깔레 강 신부와 베르뇌 주교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사람이 세상에서 공을 세워 영혼을 구원하기를 원한다면 불가불 부지런히 천당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길에 둘이 있으니, 하나는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즉 별일로 영혼을 구원함이니, 별일은 광야에서 은수하며 혹은 굴 속에서 지키며 또 혹은 몸을 괴롭히고 채찍질하는 것이다. 또 하나도 실행하기 어려운 길이니, 예사로운 일을 잘함이다. 예사로운 일이란 자고 깨고 마시고 먹고 일하고 쉬는 따위의 집 안과 집 밖에서 누구나 일상 하는 일들이다. 이런 일이 비록 예사로운 일이지만,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주님도 세상에 계실 때에 겸비(謙卑)와 인내로써 행실을 잘 닦아 은수(隱修)와 편태(鞭笞) 일을 하신 일이 없으시고 오직 평상시의 일로 하셨으니 어찌 귀히 여기지 않을 것이냐.


3. 순교정신과 순교영성

엄밀한 의미의, 협의의 순교는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 증거하는 행위, 즉 피의 순교를 말한다. 그러나 현대의 상황은 대부분 피의 증거를 요구하는 박해의 시대는 지나갔다. 첫 3세기의 잔혹한 박해가 끝난 후 교부들과 신도들은 순교의 의미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였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후 한국 교회는 순교 선조들의 희생 위에 견실한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순교자의 피는 신앙의 씨앗이다. 즉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신앙을 지켜나갈 수 있는 뿌리는 바로 선조들이 행한 위주치명(爲主致命) 안에 담겨 있다. 수많은 순교 중 가장 위대한 순교는 바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다. 하느님 뜻을 밝혀주며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완수했기 때문이다. 순교자의 죽음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삶, 곧 영원의 시작이다.

그러나 날로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올바른 가치관의 부재와 혼돈 속에서 ‘땀’으로써 그리스도의 진리와 삶을 증거해야 할 소명은 더욱 커졌다. 따라서 순교 성인들의 순교정신과 투철한 신앙심을 자신의 삶의 거울로 삼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땀의 순교는 오늘날 더욱 필요하게 되었다.

순교영성이란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세상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시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정신을 지니고 사는 것을 말한다. 교회 안에 여러 가지 영성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순교영성을 으뜸으로 친다. 순교영성을 갖기 위해서는 순교자들과 같은 믿음과 순교자들이 지녔던 삼덕(신덕, 망덕, 애덕)을 실천해야 한다. 순교영성을 늘 지니고 산다면 신앙생활은 어렵지 않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순교정신과 순교영성의 구현은 결코 소홀하게 될 수도 없고 그 가치가 축소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그 시대, 그 지역 사회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복음의 가치를 구현하는 데도 순교정신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삶의 자세일 것이다.

[쌍백합 43호, 2013년 겨울, 제춘홍 베드로마리아 수사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성손선지베드로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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