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1일 (토)
(백)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모두를 위한 경제, 공유 경제: 경제 문제에서 소유권 논쟁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9-21 ㅣ No.1589

[경향 돋보기 - 모두를 위한 경제, 공유 경제] 경제 문제에서 소유권 논쟁

 

 

경제의 개념과 교회 경제사상의 변화

 

경제는 사람들이 생활에 필요한 것을 생산하고 교환하며 소비하는 일이다. 경제(economy)라는 용어는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에 어원을 둔다. ‘오이코스’는 가족 경제를 지칭하는 것으로 ‘가족 농장의 관리’를 뜻한다. 그 뒤 국가가 경제 단위로 등장하는 중상주의 시대에 ‘오이코스’와 대비되는 용어가 나온다. ‘국가 경제의 관리’를 뜻하는 ‘정치 경제’(Political economy)다. 경제학의 대가 애덤 스미스는 이 말을 “국민과 국가를 모두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했다(「국부론」, 제4편).

 

우리가 사용하는 ‘경제’는 본디 ‘정치 경제’와 같은 것이다. 유학자 왕통이 말한 경세제민(經世濟民), 곧 ‘세상을 다스려 백성을 고난에서 구제한다.’는 뜻이다.

 

가톨릭교회도 경제의 목적은 사람이며, 경제는 사람의 전인적 발전을 위한 수단이라 가르치고 있으니, 경제가 ‘살림을 위한 정치’라는 기본 생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이라 여겨진다. 물론 자유주의 경제학은 경제가 정치와 독립된 영역이라는 견해를 고수한다. 그 이론에 따르면, 국가가 시장을 규제하지 않는 ‘시장의 자유’가 국가의 부를 이룩하는 방법이다.

 

교회는 산업화 이전까지 경제를 온전히 세속적인 일이라 여겼다. 부자를 비판하는 성경에 근거하여,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는 이는 경제로부터 멀리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세에 변화가 있었다. 6-11세기에 이르는 600년 동안 서양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이 변화 가운데 하나는 흑사병과 전쟁, 영주와 고리대금업의 횡포, 도시 발달과 토지 수급의 불균형 등으로 빈민이 창궐했다는 점이다. 가톨릭교회는 빈민을 구제하고자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순례자 숙박 수도원과 구빈원, 장애인의 집, 높은 이자를 주는 저축 은행 등을 설립했다. 현대 국가에서 운영하는 대부분의 복지 활동은 교회의 활동에 뿌리를 둔다. 그럼에도 교회는 여전히 가난과 부는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된 것으로 여겼다.

 

그 뒤 교회에서는 또 한 번 인식의 전환이 일어났다. 빈곤은 사회 구조로 말미암아 양산되고, 빈민을 구제하려면 사회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자각이 일었다. 이런 인식 전환의 직접적 계기는 산업 혁명이라는 사회적 변화였다.

 

개혁 교회에서는 일찍부터 산업화 경향을 신학 사상과 결부시켰다. 근면과 신중한 노동을 마틴 루터는 의로운 사람의 징표로, 장 칼뱅은 예정된 구원의 징표로 받아들였다. 현실과 거리를 둔 저승에 관련된 신앙은 갈수록 자리를 비워 갔다.

 

오늘날 교회는 경제를 ‘모든 사람이 존엄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물질적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사회적 문제’로 인식한다. 세계 인권선언에서 공표한 ‘사회권’에 해당하는 사안들이다. 노동할 권리, 정당하고 유리한 보수를 받을 권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 여가를 누릴 권리, 의식주와 의료 등 생활에 필요한 사회 서비스를 누릴 권리, 생계가 어려워진 모든 사람이 사회나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교육받을 권리, 학문·문예·예술의 창작물에서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 등이다.

 

 

소유권에 대한 논쟁

 

모든 국민을 살리는 경제에서 재화를 배분하는 방식은 늘 논쟁이 되어왔다. 재화, 곧 천연자원과 거기에서 얻는 소비 재화와 생산 재화를 어떤 방식으로 나누어 사용할 것인지의 문제는 ‘재화의 소유 방식’에 초점을 둔다. 대체로 ‘사유 재산제’와 ‘공유 재산제’에 대한 논의로 전개된다.

 

‘소유’(property)란 소유주가 배타적으로 자산을 이용하고 처분할 수 있는 국가가 인정하는 법적 권한이다. 소유권의 형태와 소유의 대상은 시대에 따라 변천해 왔다. 이를테면 지난날에는 노예나 아내와 같이 사람도 소유의 대상이었지만 오늘날 사람은 소유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또 점차로 산업이 발달하면서 토지는 물론 건물과 같은 부동산이나 금융, 지식 등의 무형 자산까지도 소유의 대상에 포함되었다.

 

일반적으로 고대의 법전에는 소유란 개념이 없어서, 원시 사회를 ‘원시 공산주의’ 사회라고 말한다. 단, 히브리 민족의 모세법,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B.C.1750), 이후 아시리아 법전 등에서 절도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처벌한 증거가 있어서 이 민족들은 이미 개인 소유를 인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개인 소유의 권한은 조상으로부터의 상속을 인정하는 관습법에 따른 것이거나, 주인이 없는 것들에 대한 최초의 점유(possession)라는 명목으로 주어졌다.

 

법적 의미의 소유권은 국가라는 공적 권력의 등장과 함께 생겨난다. 그 개념은 로마 제국 시대, 곧 완벽한 법적 규정과 절차를 세운 인류 최초의 국가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로마에서 소유권을 분배하는 방식이 불공정해서 사유 재산제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이 비판은 재화의 공동 사용을 이상 사회로 이해하는 플라톤 같은 사람들과 그리스도교편에서 제기되었다.

 

암브로시오, 바실리오, 요한 크리소스토모, 아우구스티노와 같은 교부들은 사유 재산제를 원죄의 결과로 여겨 불의이고 탐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단죄했다. 그들은 초대 교회 공동체가 보여 준 공유제가 창조 질서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이상적 제도라고 여겼다.

 

사유제와 공유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쟁은 산업화 초기에 ‘생산 수단’을 두고 일어났다. 자유주의 경제학에서는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권을 경제 성장과 불가분의 관계 안에서 이해한다.

 

그 반면, 사회주의자들은 생산 수단의 사유제를 비판하고 국유화를 주장했다. 이들은 생산 수단의 소유주인 자본가들의 탐욕으로 다수의 노동자가 빈곤할 수밖에 없음을 지적했다. 국가가 생산 수단을 소유해야 모든 사람이 공정하게 분배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는 사적 소유제가 공적 소유제에 승리한 듯 보이게 했으며, 사유제와 공유제에 대한 뜨거운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듯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사유권은 정당하다고 여겨졌고 민간 기업의 대세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최근 소득 불균형과 대기업의 횡포 등 공적 규제가 없는 사유제의 불공정성에 직면하여 사유제와 공유제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소유권에 대한 윤리적 기초

 

재화 사용에 대한 윤리적 사상을 처음 체계화한 사람은 토마스 아퀴나스다. 그는 자연법에 기초하여 전통적이고 신학적인 관념을 뛰어 넘어 근대적 소유권 개념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신학대전』에서 재화를 소유할 권한의 근거와 재화의 의무에 대해 논했다(II-II, Q66). 여기에서 그는 이 세상의 재화가 모든 사람에게 공동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공동 재화론’을 제시했다. 논거는 창조 신학과 ‘존재론적 목적론’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체계적 결합이다.

 

모든 재화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세상의 재화를 위탁하신다(창세 1,28 참조). 궁극적으로 창조주의 소유 권한에 속한 이 세상의 재화는 모든 사람이 사용하도록 제공되었으며, 모든 사람이 인격적으로 살도록 봉사해야 하는 존재론적 목적을 갖는다. 재화의 공동체성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재화의 자연적 특성에서 부여된 것이다. 자연법에 근거한 ‘재화의 보편적 목적’을 설명한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공동 재화론이 실현될 수 있는 방법으로 ‘사유 재산권’과 ‘공동 사용권’(재화의 사회적 의무)을 제시했다. 만인에게 속한 재화를 두고 그 누구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으며, 또 하나의 재화를 두고 여러 사람이 사용권을 주장할 수도 있다.

 

혼돈을 막으려고 배타적인 소유의 권한을 인정해야 했다. 사유 재산권은 모든 사람이 공적 재화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그 권한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적 소유의 인정만으로 재화의 공동체적 특성이 온전히 실현될 수 없다. 사적 소유는 재화의 독점과 소유자의 임의적인 사용을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탐욕에서 오는 폐단을 막는 또 다른 재화 사용의 방법으로써 ‘재화의 공동 사용권’이 제시되었다.

 

‘재화의 보편적 목적’이라는 자연법에 근거해, 레오 13세 교황은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1891)에서 노동자의 사유 재산권을 옹호했다. 산업 노동자의 빈곤을 해결하려는 제안이었다. 비오 11세 교황은 「40주년」(Quadragesimo anno, 1931)에서 생산 수단의 국유화를 비판했다. 당시 전 세계에 팽배한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에 대한 강한 비판이었다.

 

비오 11세 교황은 사유 재산권 철폐를 보조성의 원리에 입각하여 국가의 공권력 남용으로 판단했다. 요한 23세 교황은 「어머니요 스승」(Mater et magistra, 1961)에서 사유 재산권을 고수하면서도, 사사로이 사람들에게 맡겨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재화를 국유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기업이 공동선의 요구와 배치되게 경영되는 현실을 염려한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또한 「노동하는 인간」(Laborem Exercens, 1981)에서 노동에 대립되는 자본의 형태이거나 노동을 착취하고 거스르는 수단이 된다면, 생산 수단의 ‘사회화’를 배제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교회가 생산 수단의 국유화를 반대하거나, 다른 한편으로 가능성을 열어 놓는 유연성을 보이는 까닭은, 구체적인 현실의 조건을 고려하여 재화의 보편적 목적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교회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필요가 공정하게 충족되고 있는가이다. 특정한 경제 질서는 특정한 시대와 사회적 조건에 따라 형성되기 때문에, 역사적 사회적 조건에 따른 다양한 소유권의 형태를 인정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뒤 ‘재화의 보편적 목적’은 국제적으로 확대 적용된다. 요한 23세 교황은 「어머니요 스승」에서 재화는 인류 전체를 위해 정의와 사랑의 원리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사용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도 특정 국가가 천연자원뿐만 아니라 기술과 전문적 역량 같은 비물질적 재산도 독점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했다.

 

 

소유권, 어떻게 실행되어야 하는가?

 

재화의 사적 소유권과 공동 사용권의 구체적 실행은 사람의 이성이 법적으로 결정한다. 사유제는 근대 민주주의의 주요한 기반이 되었다. 1789년 8월 프랑스 입법 의회는 소유를 ‘인간의 자연적이며 불가침적 권리’ 가운데 하나로 규정했다. 그런데 소유는 늘 양면성을 갖는다.

 

재화의 소유자는 다른 누구에게 종속되지 않고 자신의 재화를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원하는 바를 실천할 수 있다. 한편, 소유한 재화는 남용될 위험이 있고 소유자의 자만심과 권력 지향성을 충족시킨다. 재화의 이런 양면성으로 말미암아 사유제와 공유제는 늘 긴장 관계에 놓인다.

 

사유제의 남용을 막으려면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재화, 곧 물이나 공기, 전기 등이 사적 소유의 대상이 되면 안 된다. 조세로 국민을 위한 사회 복지와 사회 기반 시설을 확충할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유제의 뜻, 곧 공(公)과 공(共)의 차이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전자라면 국가 소유라는 뜻이고, 후자라면 함께 누린다는 뜻이다. 공(共)을 공(公)으로 이해하면 국가 권력이 공동 재산을 임의대로 사용하는 것을 막지 못하여, 사대강 사업과 같은 비극이 발생한다.

 

‘대지의 따뜻함, 부드러운 공기,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땅을 팔라고 위협하는 백인들에게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들려준 답이다.

 

* 심현주 율리아나 -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책임 연구원이며, 가톨릭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교에서 가톨릭 신학과 사회 윤리를 전공하였다.

 

[경향잡지, 2018년 9월호, 심현주 율리아나]



1,454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