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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60: 루이 부이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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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28 ㅣ No.416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60) 루이 부이에 (하)

전례와 성사는 영성생활 발전의 초석



지금 우리는 루이 부이에를 영성신학자로 살펴보고 있지만, 사실 부이에가 교의신학자 및 전례신학자로도 활동하면서 성사론(聖事論)과 전례(典禮)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저술 활동을 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배경 때문이었는지, 우리는 부이에가 자신의 영성신학을 전개하는 데 성사론과 전례적 관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관점은 다른 영성신학자들보다 더욱 두드러지면서 부이에의 영성신학에서 고유한 특징을 형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시작은 성경에서부터

먼저 부이에는 그리스도교인이 영성생활을 올바로 실천하기 위한 기준점을 성경을 통해서 발견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개신교와 다를 바가 없다고 하였다. 다만 개신교와 차이가 있다면 성경을 올바로 알아듣는 현장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번에 부이에가 영성생활에 있어서 가톨릭교회와 개신교가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관점이 개신교의 개인적인 측면이 강조된 점과 가톨릭교회의 이웃 사랑을 통한 공동체적인 측면이 강조된 점에 있다고 언급하였다.

같은 관점에서 부이에는 성경을 개별적으로 해석하는 개신교의 방법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성경의 올바른 해석을 위해 해석되는 장소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우리의 개인적인 해석으로 새로운 생명이 불어넣어지는 죽은 글자처럼 성경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것을 말씀하신 분의 현존으로 여전히 생명이 부여되는 곳에서, 즉 성경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신 성령이 끊임없이 활동하시는 곳에서 성경을 사용해야 한다.” 여기서 성령이 끊임없이 활동하시는 곳은 바로 전례가 거행되는 곳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전례적인 모임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하느님 자신에 의해 함께 모이도록 불린 하느님 백성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가톨릭교회는 모든 유형의 전례 예식 안에서 말씀의 전례를 거행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접하고 가르침을 들었다. 특히 부이에에 따르면, “미리 준비되고 조명된 신약의 체험 속에서 심화된 구약의 교훈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형성되고 완성되는 전례 예식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할지를 보여준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 전례의 독서와 복음에서 구약성경의 말씀과 신약성경의 말씀을 선택하여 봉독하고 그 의미를 되새겼다. 그런데 이렇게 전례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그저 무작위로 선택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부이에에 따르면, “교회가 전례를 통해 전해 주는 체계화된 성경의 점진적인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 백성의 전 역사를 우리 각자가 내적으로 다시 살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 말씀 중심의 전례 예식을 통해 그리스도교인은 영적 자양분을 공급받고 영성생활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개신교와 달리 공동체적인 측면의 중요성 때문에 전례 예식을 중심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접하라고 언급한 부이에는 그러한 전제 조건이 잘 충족되면 다시 전례 안에서 접한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개개인에 더 적합한 가르침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고 본다. 즉, 부이에에 따르면, “하느님 백성의 전례 생활은 성경 전체가 집중되고 이해의 출발점이 되는 그리스도의 심오한 진리에 대해 객관적으로 우리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주관적인 방법도 제시해 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처음부터 개인적인 관점에서만 하느님의 말씀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공동체적인 측면이 마련된 후에 개개인에게 다가오는 하느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진정한 의미를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또한 부이에는 전례 예식 중에서도 특히 미사 전례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접하면서 그 의미에 다가가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사실 교회가 전례와 특히 미사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방법은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대로 소화하기 위하여 성경에 대한 모든 영적 독서가 어떻게 수행되어야 하며 어떻게 적절히 묵상 되어야 하는지 실천적으로 가르쳐 준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인이 전례주년에 맞추어 짜인 독서와 복음 말씀을 잘 읽고 묵상한다면 영적인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전례생활은 영성생활의 발전에 꼭 필요한 요소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신비로 나아가기

그런데 그리스도교인은 전례 예식을 통해 하느님 말씀을 접하면서 깨달은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고 살아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부이에에 따르면, “우리가 이 신비에 실제적으로 참여하고, 선포된 신비를 믿음 안에서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성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가톨릭교회에서 미사 전례는 성사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에, 성사생활을 함께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부이에는 “본래의 모습을 지닌 성경의 말씀은 이와 반대로 자연스럽게 성사적인 실재성을 지향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 성사들을 통해 말씀의 대상인 하느님의 신비가 영광의 희망이신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서 교회 안에서 전달되는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부이에에 따르면, 사실 “성사들이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통한 그리스도의 실재성과 그리스도 부활의 충만함에 참여하도록 그리스도의 죽음과 새로운 생명 안으로 뛰어들어야 할 우리 자신들의 실재성 사이에 있는 만남의 장소”이기 때문에 “미사에서 복음의 말씀으로 선포된 하느님의 신비로부터 축성의 말에 의해 현존하게 된 하느님의 신비로 자연스러운 이동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미사 전례에서 거행되는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것은 더욱이 우리 구원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영적 여정의 한 방법이다.

물론 부이에에 따르면, “성체성사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현존과 그리스도의 신비를 온전히 우리 안으로 옮기고, 영광의 희망이신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서 그리스도의 모든 신비가 우리 안에서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준비의 기도와 제물의 봉헌 및 성체 배령은 특히 그리스도교인이 성사생활을 통해 영성생활을 실천하는 직접적인 방법이다.

부이에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기도는 … 하느님의 뜻을 믿고 순종하며 우리를 불러 주신 당신의 이름을 알아듣는 것, 곧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그 사랑에 우리를 내맡기는 것이다.” 다음으로 “성찬례에서 바치는 빵과 포도주는 이것을 먹고 살아가는 우리 생활의 봉헌에서 구체화되고, 이 생활 속에서 우리의 삶이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되어 온전히 하느님께 속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체 배령은 성부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봉헌에서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성부의 아드님이 되신 바로 그 실재성 안에서 우리를 일치의 절정에 이르게 한다.”


영성생활 어렵지 않게

이렇게 부이에는 가톨릭교회의 영성생활은 전례생활과 성사생활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접하는 것이 아주 중요할 뿐만 아니라 영적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영성생활이 아주 특별하거나 어려운 실천을 수반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일상적인 전례생활과 성사생활에 소박하게 참여하는 것을 통해서도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영성생활은 성직자, 수도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평신도 그리스도교인도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부이에는 가르치고 싶었다.

[평화신문, 2014년 9월 28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영성신학 교수,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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