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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62: 루돌프 슈나켄부르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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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0-12 ㅣ No.420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62) 루돌프 슈나켄부르크 (중)

‘윤리적 가르침 실천이 신앙 생활의 중심’ 강조



슈나켄부르크의 저서와 논문 그리고 서평들은 상당히 많다. 앞서 언급한 그의 교수자격논문은 1930~40년대에 신비신학(Mysterintheologie)으로 가톨릭 전례에 큰 반향을 가져왔던 오도 카젤(Odo Casel, 1886~1948)의 영향을 받아 단순히 바오로 세례에 관한 성서적 해석만이 아니라 사도들의 세례신학에 관한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 슈나켄부르크는 그리스도의 현존이 이미 현재의 믿음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자 종말의 완성을 향한 희망이라고 밝힌다. 그에 따르면 바오로 세례신학의 중심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것이기에 단순히 세례에 대한 사상이 아니라 바오로의 윤리나 신비 그리고 종말론과 함께 종합적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렇기에 세례는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현실에서 윤리적 가르침을 통해 실천될 때 의미가 있다.


바오로 서간

슈나켄부르크는 바오로 서간에서 구원론적 역사의 관점을 강조하고 이것이 바오로 서간 전체에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슈나켄부르크는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들이 직접적으로 바오로에게 속한, 곧 바오로 친서라고 봤다. 하지만 현대 학자들은 이 서간들을 차명 서간, 즉 바오로의 이름을 빌려 다른 이들에 의해 쓰인 서간들로 생각한다.

1959년 슈나켄부르크는 「하느님의 다스림과 하느님 나라」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에서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명확한 관점을 유지한다. 슈나켄부르크는 이 책에서 하느님 나라와 교회를 동일시하려는 시도에 반대하며 하느님 나라가 가지는 종말론적인 긴장관계(이미와 아직 아닌) 안에서 현재적 의미와 종말론적 의미를 구분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은 하느님 나라가 지니는 종말론적 특징으로, 이것은 한 마디로 예수의 선포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다스림’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결국 예수에 의해 선포된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다스림’과 관련된 표현으로 이해된다. 당시 많은 해석이 성장을 나타내는 비유(자라는 씨의 비유, 누룩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세상 안에서 끊임없이 성장해 가는 교회를 나타내는 것으로 봤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슈나켄부르크의 성경 해석은 후대에 많은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신학자들은 하느님 나라가 하느님의 현존과 다스림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 외에도 그는 구원의 완성을 지향하고 윤리적인 가르침을 통해 실천을 요구하는 특징들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하느님 나라의 다양한 측면을 조명했다. 또한 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선포가 초대 교회 안에서 그토록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답을 찾고자 노력했다. 슈나켄부르크에 의하면 예수의 선포는 예언자적인 행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됐고 그렇기에 초대 교회에서는 하느님 나라가 곧 오리라는 종말론적 기대와 희망이 생겨났을 것이라고 이해한다.


요한복음

슈나켄부르크의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것은 요한복음 연구였다. 이미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서도 요한복음을 다루었던 것처럼 슈나켄부르크는 일생 동안 요한의 문헌을 연구했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독일 프라이브루그대 신약 교수였던 알프레드 비켄하우저(Alfred Wikenhauser, 1883~1960)에 의해 시작된 ‘헤르더 신학 주석’ 시리즈의 첫 번째 주석서로 슈나켄부르크의 「요한서간」이 1953년 출간됐다. 지금도 ‘헤르더 신학 주석’은 가톨릭 성서학계에서 펴내는 명망 있는 주석서로 꼽힌다.

이후 슈나켄부르크는 같은 시리즈에 「요한복음」 주석서를 썼다. 이 요한복음 주석서는 총 4권으로 구성돼 있으며 1500쪽이 넘는 분량의 방대한 주석서다. 영미권을 대표하는 가톨릭 성서학자 레이몬드 브라운(Raymond. E. Brown, 1928~1998)이 펴낸 「요한복음」과 함께 여전히 가치 있는, 전통적인 주석서로 평가받고 있다. 처음 세 권은 각각 1965년, 1971년과 1975년에 출판됐고 1984년 부록으로 내용을 보완하는 제4권이 출간됐다. 이 책은 여러 나라말로 번역됐을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주석서에서 그는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의 영향을 받은 개신교의 해석에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하며 요한복음의 신학적 일관성을 나타내는 이론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러한 비판적 시각은 1966~67년에 ‘신약성경 연구학회’에서 펴내는 ‘신약성경 연구’(NTS; New Testament Studies)라는 잡지에 실은 글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글에서 슈나켄부르크는 불트만의 주장이 갖는 취약점을 지적하고 역사비평 방법론에 따른 해석을 통해 요한복음에 대한 해석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주석서를 시작하는 머리말에서 “지난 100년간의 신학적 작업들과 지난 10년간의 학문적인 연구가 없었다면, 이 주석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자신의 주석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초기 교회 공동체 신앙고백이 담긴 이 문헌을 해설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워낙 방대한 주석서라 그 내용을 지면에 담는 것은 지루할 뿐더러 불가능해 보이지만, 슈나켄부르크가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주제에 대해서 잠시 살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슈나켄부르크가 자신의 주석서에서 강조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예수께서 사랑한 제자’에 관한 것이다. 제3권의 마지막에 다시 한 번 그 내용을 정리해서 담을 만큼 그에게 이 주제는 요한복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랑받던 제자에 관한 문제는 요한복음이 어떻게 생겨나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손에 지금의 형태로 주어졌는지에 대한 복잡한 논쟁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분위기는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사랑받는 제자가 역사적이지 않은 상징적인 인물이거나 만들어진 인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슈나켄부르크는 이 제자를 역사적인, 즉 실존했던 인물이라고 주장했고 이러한 의견은 후대에도 받아들여졌다.

슈나켄부르크에 따르면 ‘예수께서 사랑한 제자’는 요한복음 저자로 생각되는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이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사랑받던 제자의 죽음에 대한 언급이다(요한 21,23). 그에게 죽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복음서에 포함돼 있다는 것은 이 인물이 역사적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근거가 됐다. 물론 요한복음 마지막 장인 21장은 후대에 보충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신학적으로 동떨어져 있거나 전혀 다른 내용이 아니라 요한복음 전체의 내용과 잘 어울린다는 슈나켄부르크의 주장은 현대의 학자들 의견과 상당히 가깝다. 이 논쟁은 여전히 학계에서 지속되고 있지만, 슈나켄부르크의 주장은 현대의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 외 저술들

슈나켄부르크는 1982년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주석서를 출간했다. 에페소서의 중심 주제는 교회다. 그렇기에 많은 학자들은 에페소서에서 초기 교회의 조직이나 직무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사람들은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주셨습니다”라는 에페소서 4장 11절을 통해 초대 교회의 조직을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슈바이처). 하지만 슈나켄부르크는 이 구절이 교회의 조직화된 직무를 나타내는 것이기보다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교회의 전통적인 권한과 기능을 나타내는 것이라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바오로 서간에서 보이는 특징과도 부합하기에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이 견해가 받아들여지고 있다.

은퇴 후 그가 처음으로 출간한 책은 「산상설교」(1984)다. 그가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신약성경 윤리에 관한 것이었다. 1986년과 88년에 나온 「신약성경의 윤리적 선포」(Die sittliche Botschaft des Neuen Testaments)는 현실의 신앙인들에게 전해주는 신약성경의 윤리적 가르침을 심도 있게 다뤘다.

그는 세례를 통한 신앙생활은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윤리적 덕목을 실천하는 것에 중심이 있다고 밝힌다. 물론 성경은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이 요구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의 이러한 관점은 믿음과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실천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기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세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다.

[평화신문, 2014년 10월 12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성서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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