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강론자료

2016-04-10.....부활 제3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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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4-09 ㅣ No.2030

부활 제3주일 (다해)

사도행전 5,27-32.40-41         묵시록 5,11-14       요한 21,1-19

2016. 4. 10. 이태원

주제 : 신앙인이 드러내야 할 모습

세상에 사는 그 어떤 사람도, 인생이 쉽고 만만하며 원하는 일을 아무 때나 원하는 때에 이룰 수 있다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들의 삶에 다가오는 일들이 정말로 쉽지 않고 만만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말해야 할까요? 아니면 사람이 잘못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소리일까요?

 

세상에 사는 그 어떤 사람도 자기의 현실삶이 힘들기를 바랄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그런 문제를 만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자세로 세상에서 살아야 하겠습니까?

 

유대교의 신앙이었습니다만, 그 신앙을 관리하고 책임진다는 대사제가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는 사도들의 행동을 억압한 얘기를 독서말씀으로 들으면서, 그리스도교신앙인으로 사는 우리는 그러한 일들을 만나면 어떻게 행동하는 사람이어야 하겠습니까? 힘겨운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오늘독서에서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는 것처럼, 차분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을 때, 내게 다가올 미래를 미리 가정하여 삶의 태도를 결정해야 다급한 순간에 우리는 올바른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부활 제3주일입니다.

부활대축일을 지낸지도 벌써 두 주간이 지났습니다. 전례에서 이렇게 시간을 지냈음을 셈하며 기억합니다만, 우리가 부활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설명해도 우리가 받아들이는 일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향하여 너는 부활을 믿는 사람이냐?’하고 물으면, 가부간에 그 대답은 간단할 테지만, ‘너는 세상의 삶에서 네가 믿는다는 부활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행동으로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겠습니까?

 

자기들에게 다가온 곤경을 대하면서, 베드로와 사도들은 굳건한 자세와 태도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변화된 것을 전하는 사도행전을 쓴 루카복음사가의 표현은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사람이 현실에서 체험할 수 없는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뜻을 강조하는 일보다는, 우리를 떠나셨던 분이 다시 우리에게 오신 것을 고백하는 표현으로 알아듣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처럼, 신앙을 증언하는 일에 박해를 당하고 제지당해도 자신감이 있게 자기목소리를 내는 것은 세상의 마음과 다짐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느님의 보호와 도우심, 그리고 준비된 나의 태도가 어우러져야 가능한 일입니다. 사도들이 겪은 이러한 태도를 보면서, 나는 신앙생활을 어떠한 자세로 있는지를 돌이켜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내가 언제나 하느님의 축복을 얻어야 하고, 내가 하는 일은 무조건 잘되어야 하며, 삶의 결과는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고 말하기 쉽습니다. 누구나 가질법한 바람은 간절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남에게는 권할 수 없는 잘못된 태도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면, 그 신앙의 좋은 결실은 우리를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잘못된 태도로 우리가 신앙을 받아들였다면 우리의 삶은 스승님을 은전30개에 팔아넘긴 유다처럼 될 수도 있고, 우리 신앙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신앙의 배교자들이 보였던 삶의 모습을 보이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오늘날 우리의 삶과 연결한다면, 세상의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핑계와 사정을 앞세워 신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성당에는 내가 죽을 때만 나오면 된다고 합리화하거나 내가 필요할 때만 신앙의 자세를 드러내도 된다고 말할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세례를 받아 신앙인으로 살겠다고 말하면 세상일에 대하여 내뜻대로 다 이루는 만사형통(萬事亨通)의 열쇠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세례를 받기만 하면 바로 그 순간부터 모든 걱정이 사라진 일방통행의 아주 좋은 권리를 얻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결과에 상응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하느님의 은총을 얘기하면서, 상응하는 노력을 얘기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실 무한하신 자비를 막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그것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힘을 넘는 하느님의 선물을 기대한다면, 기대하는 것만큼의 행동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내가 삶에서 드러내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복음에서 들은 것처럼,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곁에 계신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 언제오시겠습니까? 하느님은 빛나는 모습과 놀라운 천둥소리를 내면서 내 삶에 거창하게 찾아오실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어떤 눈으로 그 모습을 찾거나 알아볼 생각인지도 관심을 가져야 할 일입니다.

 

부활제3주일을 지내는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얼마나 가까이 모시고 있는지 돌이켜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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