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부와 가난, 경제 활동과 도덕성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21 ㅣ No.1176

[복음살이] 부(富)와 가난, 경제 활동과 도덕성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우리 사회의 주요 관심은 경제 위기 극복이었기에 당시 이명박 후보는 ‘경제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내세웠고, 그의 도덕성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당선되었습니다. 도덕적으로 하자가 있더라도 나에게 경제적 이익을 줄 수 있다면 대통령으로 뽑아주겠다는 것이 일반적 정서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한국 사회에는 정의, 연대, 나눔, 공동선과 같은 가치에 대한 관심은 퇴색되고 부정한 방법으로라도 경제적 성장과 이익을 성취하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심지어 재벌 총수들이 탈세와 뇌물 등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도 그 기업이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이유로 모른 척하거나 대충 넘어가고 법원에서도 집행유예와 같은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등 경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도덕적 감각은 크게 무뎌져 있었습니다.

올해 2012년 대통령 선거에도 역시 경제가 중요한 이슈가 되어 있지만 내용은 좀 다른 듯합니다. 여야 할 것 없이 ‘경제 민주화’ ‘재벌 개혁’ ‘양극화 극복’ ‘비정규직 해소’ ‘반값 등록금’ 등의 공약이 제시되고 있는 것을 보면 공정한 경쟁과 약자에 대한 배려, 복지 확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 전 세계가 자본의 탐욕과 성장 만능주의의 폐해를 경험하였기에 5년 전처럼 경제 성장을 위해서라면 도덕을 무시해도 좋다는 인식은 어느 정도 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삶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재화의 생산, 분배, 소비를 다루는 경제 문제는 사람들이 매일 매일 살아가는 현실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경제 문제를 대하는 개인의 태도와 선택에는 도덕적인 책임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황금만능주의의 위력으로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의 중심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물질적,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것에 있고, 정신세계와 영혼에 대한 돌봄과 성찰,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과 나눔은 상대적으로 소홀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풍토에서 그리스도 신자들이 앞장서서 복음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를 경제 활동에서도 구현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부와 가난, 그리고 경제 활동의 근본 의미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올바로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부는 하느님이 주시는 복으로 간주

성경에서는 재화나 경제적 부유함, 그 자체는 삶에 필요한 것이며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시는 복으로 간주합니다. “게으른 손바닥은 가난을 지어 내고 부지런한 이의 손은 부를 가져온다”(잠언 10,4). “주님께서 저의 주인에게 복을 내리시어, 그분은 큰 부자가 되셨습니다”(창세 24,35). 다른 한편으로 가난은 반드시 게으름으로 인한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탐욕과 불의로 남의 재화를 취할 때, 또는 자신의 재화를 잘못 사용하였을 때, 이를테면 가난한 이들에게 사기나 고리대금업, 착취 등 큰 불의를 저질렀을 때 하느님은 그 부유한 이들을 단죄합니다. “그들은 빚돈을 빌미로 무죄한 이를 팔아넘기고 신 한 켤레를 빌미로 빈곤한 이를 팔아넘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힘없는 이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다 짓밟고 가난한 이들의 살길을 막는다”(아모 2,6-7).

다른 한편으로, 가난한 이들, 즉 억압받고 약하고 궁핍한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 성경의 전승들은 비록 가난은 악이지만, 가난이라는 조건 안에서 인간이 하느님을 필요로 하는 자신의 신원을 깨닫고 하느님을 향하게 만드는 “인간 상황에 대한 상징”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줍니다(간추린 사회교리 323).

따라서 성경의 가난에 대한 이해는 이중적인 면을 갖게 되는데, 억압과 궁핍으로 인한 가난은 악으로 간주되지만, 종교적 태도로서 가난을 받아들일 때, 즉 자신의 소유나 자신의 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신뢰하고 의탁하는 삶의 양식으로 가난을 인식하고 선택할 때, 가난은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를 지니게 되면 우리는 물질적인 부가 전부가 아님을 인식하고, 재화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며 우리는 그것을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고 이웃과 더불어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간추린 사회교리 324 참조).


합법적인 재화라도 사회에 유익하게 쓰이도록 노력해야

교회는 부와 가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사람들이 재화의 상대성을 인식하고, 달란트의 비유에서처럼 각자 받은 선물과 재화를 잘 관리하고 올바르게 사용하여 자신과 타인에게 도움을 주도록 가르칩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벌어들이는 경제적 재화는 하느님께서 인간과 사회, 그리고 인류의 전체적인 발전을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도록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재화는 정의와 연대성을 바탕으로 모든 이를 위해 공평하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보편적 목적”을 지닙니다(레지오 마리애 2012년 4월호 참조). 설령 합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재화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사용할 때는 자신 만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되며 타인과 사회에 유익하게 쓰이도록 노력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부정한 방법으로 재화를 모으는 행위는 창조주께서 모든 재화에 부여하신 보편적 목적에 위배되므로 부도덕합니다. 신약성경의 디모테오1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라며 돈에 대한 소유욕을 경계했습니다. 바실리오 성인도 “부는 샘에서 솟는 물과 같아서, 샘에서 물을 자주 길을수록 물은 더욱 깨끗해지며 샘을 사용하지 않으면 물은 썩게” 되듯이 부자는 가난한 이에게 창고의 문을 열라고 권고했습니다(간추린 사회교리 328-329).

예수님께서도 구약 성경에 나타난 재화와 부, 가난에 대한 의미를 명확하게 하시며 완성시키십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마태 13,22).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있지 않다”(루카 12,15).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은 도덕적 행위여야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성령의 선물과 마음의 회개를 통하여, 정의와 형제애, 연대와 나눔 안에서 새로운 방식의 사회생활”을 이루는 곳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구원 업적과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재물에 대한 무절제한 욕심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초대받았습니다. 그 초대에 응한 이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정의를 베풀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키시며, 고통 받는 이들을 위로하고, 물질적 가난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가장 연약한 이들이 비참한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방해하는 세력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질서”를 추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325).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경제 활동은 재화를 주신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분의 소명에 응답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도덕적인 행위이어야 합니다. 경제 활동은 모든 인간의 발전과 완성,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향할 때 도덕적입니다. 경제 활동은 경제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함께 성장하고 인간다운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인간이 모든 경제 사회 생활의 주체이며 중심이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사목헌장 63항, 간추린 사회교리 331 참조).

한국 사회는 새로운 정부의 출범과 함께 국가 경제가 나아지고 보다 정의로운 경제 체제를 만들자는 희망과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고 부를 추구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하지만 경제 활동이 인간의 전인적인 완성을 위한 수단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재화는 필요한 모든 이의 발전을 위해 함께 공정하게 나누어지도록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경제 활동에 있어서 물질에 대한 집착과 맹목적인 소비의 노예가 되어 인간의 존엄성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경계하고 재화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뜻을 살펴 우리 사회의 경제활동이 돈이 아니라 사람을 우선시 하는 도덕적인 성격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2년 10월호,
박정우 후고(신부, 서울 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1,51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